만 4년 넘긴 가축질병치료보험, 효과는 있는데 가입은 부족하다
수의사 진료 늘며 폐사·약품비 감소…본사업 가려면 가입률 제고가 당면과제
가축질병치료보험 시범사업이 만4년을 넘겼다. 일부 시범사업 지역에서는 2년전보다 참여 농가가 늘었지만, 전반적인 가입률은 여전히 낮다. 본사업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시범사업 참여를 늘리는 것이 최대 과제다.
치료보험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수의사 방문이 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면서 폐사·약품비가 감소하는 경제적 성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가축재해보험이 단독으로는 자가치료나 환축 방치를 야기할 수 있는만큼 치료보험과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수의사회는 21일 대전역 한국철도공사에서 가축질병치료보험 시범사업 참여지역 간담회를 개최했다. 한국소임상수의사회 제안으로 마련된 이번 간담회에는 12개 시범사업 지역 동물병원, 농림축산식품부, NH농협손해보험이 참여했다.
소 890농가 4만4천마리가 치료보험 가입
가입률 평균, 아직 한자릿수
가축질병치료보험(이하 치료보험)은 소 사육농가의 질병치료비를 보장한다. 사람으로 치면 실손보험에 가깝다. 농장이 수의사에게 치료비를 지불한 뒤, 보험사로부터 자기부담금을 뺀 보험금을 수령하는 방식이다.
2018년 도입된 치료보험 시범사업은 단계적으로 확대됐다. 2018년 청주·함평을 시작으로 이제는 강진·제주·합천·보은·횡성·경산·상주·창원·함안·서귀포·울산(울주·북구)·김제 등 15개 시군에 이른다.
이날 간담회에 따르면, 2022년말 기준 치료보험에 가입된 소 사육농가는 890곳이다. 소 44,137마리가 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중 92%가 한우다.
2020년말과 비교하면 가입농가는 200여개, 가입두수는 1만2천여마리가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입률은 낮다. 시범사업 지역에서 기르는 소 전체 사육두수에 비하면 가입률은 8.3%에 그친다. 2년전(7.1%)보다는 늘었지만 여전히 한자릿수다.
시범사업 지역별로도 편차가 크다. 보은·청주·강진·함평·함안·합천·제주 등 7개 시군은 10~20%대 가입률을 보이는 반면, 나머지 시군은 거의 가입건수가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농장이 당장 내야할 돈의 액수가 크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가축질병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보험료의 절반을 농가가 내야 한다. 나머지 절반은 국가가 지원한다. 여기에 지자체나 축협 차원의 추가 지원이 더해져 농가 자부담 비율을 20%내외로 낮추지 않는다면, 가입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수의사 정기방문, 조기치료, 폐사감소의 선순환
가입률은 아직 낮지만 치료보험의 효과에는 긍정적인 평이 이어졌다. 시범사업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지역에서 참여한 원장들은 치료보험이 농가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보험가입농장에는 수의사들의 방문횟수가 늘고, 그만큼 초기에 문제를 파악해 치료하니 폐사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주의 고정봉 웰빙동물병원장은 “치료보험에 가입한 고객농장은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초기에 질병을 적극적으로 치료한다”며 “치료를 계속하니 폐사가 줄어든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제동물을 출하할 때까지 잘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치료보험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응급진료도 보험가입 고객에게는 더 적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덧붙였다. 고 원장은 “그 전에는 주말이나 밤에 농가들도 수의사를 부르기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보험이 있으니 와 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 합천의 이효권 합천축협동물병원장은 “조합에서 관리하는 치료보험 가입농가들은 폐사율이 20~30%가량 감소했다. 진료건수는 늘었지만, 농가의 약품 구매비용도 많이 줄었다”면서 “치료보험 사업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합천의 치료보험 가입두수는 20년말 6,080두에서 22년말 9,501두로 56%나 증가했다. 지역 가입률도 24.8%로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파주 유우진료소 이창원 원장도 수의사 방문이 늘어난다는 점을 치료보험의 장점으로 꼽았다. 파주는 치료보험 시범사업 지역은 아니지만, 유우진료소 수의사가 농가를 정기 방문하며 관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창원 원장은 “수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진료를 늘리면 농가와의 유대도 강화될 것”이라며 “치료보험 덕분에 수의사가 자주 오게 됐다는 점을 알리면 농가들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소들의 폐사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료보험-재해보험 통합 필요성 제시
이날 간담회에서는 가축재해보험(이하 재해보험)도 도마에 올랐다. 치료보험과 연계하거나 아예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료보험은 소의 치료를, 재해보험은 소의 폐사(법정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폐사는 제외)를 보장한다. 소의 질병에 대한 보험이 둘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재해보험만 단독으로 가입할 경우 농가의 치료의지가 저해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에 문제가 있어도 빨리 수의사를 부르지 않고, 자가치료나 며칠 해보다가 호전되지 않으면 도태시켜 재해보험 보상금을 받는 식이라는 얘기다.
김용선 소임상수의사회장은 “재해보험 때문에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소들도 방치해서 죽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동물학대가 어디 있느냐”고 성토했다.
치료보험 가입농가에서 수의사 진료가 활발해지고 폐사가 줄면, 농가는 좋지만 보험사로서는 손해(보험금 지급)만 늘어나게 된다. 치료보험만 보면 그렇지만, 재해보험까지 들었다면 폐사가 줄면서 재해보험의 손해율은 감소할 수 있다.
때문에 치료보험과 재해보험을 연계하면 농가는 물론 보험사도 선순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험료를 많이 높이지 않으면서 질병보장범위를 늘리는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충북 청주의 임영철 하나동물병원장은 “재해보험과 치료보험을 통합해야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며 “가축의 폐사는 치료의 연장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NH농협손보 김수련 과장도 “재해보험과 치료보험을 함께 가입하는 농가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같은 목적물(소)에 대한 보험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행정 부담, 수가 고정, 젖소 보장범위 협소 등 문제점 지적도
이날 간담회에서는 시범사업 과정에서 도출된 문제점도 여럿 공유됐다.
가입농가가 보험금을 타기까지 소요되는 행정실무가 수의사에게 전가되다 보니 동물병원의 행정부담이 크다.
전남 강진의 강성철 다산동물병원장은 “수의사에게 주어지는 행정업무가 너무 많다. 보험에 대해서도 수의사에게 묻고, 관련 절차도 수의사에게 맡긴다”며 “진료 이외의 업무가 가중되는 것이 문제”라고 토로했다.
2018년 도입 이후 물가가 올랐지만 보험수가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도 불만이다. 시범사업이 오래 진행된 지역에서는 입소문으로 부정수급 방법론이 퍼져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젖소에서는 질병보장 범위가 좁고 기존의 정기계약진료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높지 않아 농가가 외면한다는 한계도 있다.
농가가 수의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야간·주말 진료 수요에 대응하고, 농가-보험사 간의 연결서비스를 높이려면 시군 단위로 대동물진료 사무를 통합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지역별 거점동물병원’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가입률 증진이 당면 과제다. 현재 수준으로는 시범사업 종료 후 전국단위 본사업 도입도 불투명하다. 수백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본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시범사업의 성과가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제껏 진행된 치료보험 시범사업의 경과 점검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소임상수의사회를 주축으로 특위를 만들어 치료보험 발전방향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