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위기, 고밀도·밀원부족·이상기후 삼중고..약품 살포 관납 개편도 촉구
예방수의학회, 2023 정기학술대회서 꿀벌 문제 조명
겨울철 꿀벌실종현상은 지난 겨울에도 발생했다. 고밀도, 밀원부족, 이상기후의 삼중고로 허약해진 꿀벌들은 응애 문제에도 시달린다. 관납으로 살포된 약품의 오남용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한국예방수의학회는 7일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에서 2023년도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후 변화와 예방수의학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첫 세션은 꿀벌 문제를 조명했다.
꿀벌, 공익적 가치 높지만..
고밀도·밀원부족·이상기후 삼중고
응애와 바이러스성 질병 위협도
양봉산업은 꿀 생산 외에도 농작물의 화분 수정을 매개하고 생태계 다양성에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날 발표에 나선 한국양봉농협 김용래 조합장(사진)은 “국내 양봉산업의 공익적 가치는 6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수박, 참외, 딸기 등 다양한 과일을 기르는데도 꿀벌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내 양봉산업은 위험에 처해있다. 김용래 조합장은 고밀도, 밀원부족, 이상기후의 삼중고를 지목했다.
밀원(꿀벌이 꿀을 가져오는 원천 식물)은 갈수록 부족해지는데 양봉농가는 너무 많다. 김 조합장은 “국내 꿀벌밀도는 제곱킬로미터당 26.7봉군으로 세계 1위”라며 “타 가축에 비해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고 별다른 규제도 없다”고 지목했다.
밀원은 점점 줄고 있다. 1970~80년대에 40만ha가 넘었던 밀원 면적은 2020년 기준 15만ha로 크게 감소했다는 것이다.
밀원에서 꿀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기간(유밀기)이 4~6월에 한정된다는 점도 문제다.
김 조합장은 “소나무 위주로 진행된 산림녹화사업으로 인해 자생하던 밀원이 사라졌다”며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무밀기라 설탕을 주는데, 그러다 보니 꿀벌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월동 과정에서 꿀벌이 크게 감소하는 꿀벌실종현상은 지난 겨울에도 발생했다. 한국양봉농협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조합원 사육봉군의 63%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미국 연구에서 월동 중 22% 이내의 봉군소실은 정상적인 현상으로 분류했지만, 30% 이상 소실되면 비정상적인 대량소실로 볼 수 있다.
김 조합장은 “꿀벌실종의 가장 큰 이유는 이상기후”라며 “갖가지 해충이 들끓다 보니 농약을 엄청 쓴다. 헬기로,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니 꿀벌들이 버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상기후로 인해 개화시기의 지역별 편차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예전에는 남쪽부터 북쪽으로 순차적으로 개화하는 것에 맞춰 벌통을 옮겨가며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먹이를 공급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전국적으로 개화시기가 겹치면서 꿀벌의 먹이가 실질적으로 줄어든 셈이라는 것이다.
응애 문제는 대다수의 양봉농가가 겪고 있다. 조윤상 연구관에 따르면, 검역본부가 2019년 벌인 조사에서 바로아응애, 가시응애 중 하나라도 검출된 곳은 95%에 달했다.
채집된 응애에서 다양한 병원체도 검출된다. 날개불구벌바이러스가 가장 많고 이스라엘급성벌마비바이러스, 미국부저병, 만성벌마비바이러스, 낭충봉아부패병 등도 다량 검출됐다.
한상미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장은 “사각지대에 놓인 양봉산업에 수의사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병해충 문제뿐만 아니라 양봉산물을 축산물의 일원으로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납약 무료 배포가 문제 키워
수의사에 의한 관리 강화해야
관납 문제도 지목됐다. 꿀벌응애를 잡겠다며 약품을 살포하다 보니 오히려 내성이 유발되고 응애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조합장은 “봄이 되면 (응애약품을) 무료로 나눠준다. 응애 문제가 어떤지 상관없이 무료로 주니까 쓴다. 그러다 보니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검증되지 않은 영양제나 면역증강제의 허위과대광고도 문제로 지목했다.
김 조합장은 양봉질병에 대한 대응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남용을 조장하는 관납 약품공급에서 벗어나 수의사에 의한 진단·처방·투약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꿀벌질병을 진단·처방하고, 이를 위해 수의대에서도 관련 교육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