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 없는 실험 결과 의미없어…동물복지는 연구의 기본
강병철,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교수 국회토론회에서 발표
동물실험 정책의 현주소를 주제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자로 참석한 강병철 교수는 동물실험의 효과, 역사, 현 제도의 문제점, 과도한 규제 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특히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실험 결과도 신뢰할 수 없다”며 동물복지는 동물실험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철 교수(서울대학교 의생명연구원, 사진)에 따르면, 동물실험이 인류에 공헌한 사례는 꽤 많았다. 스트렙토마이신 개발, 페니실린 발견부터 수정란 분리법 동물실험 성공으로 불임시술이 가능해진 것까지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국내에서도 서울대 의대에서 ‘개에서 개’로 간이식을 최초로 성공한 뒤에 실제 사람의 간이식 수술이 성공한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실험동물학회, 한국동물실험대체법학회, 한국실험동물수의사회 등 다양한 학회가 동물실험의 과학성, 안전성, 윤리성 확보와 동물대체시험법 개발을 위해 노력 중이다.
강병철 교수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서는 늦었지만, 국내에서도 동물대체시험법 연구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 연구자들의 노력은 물론 희생된 동물들이 있었기에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고 전했다.
동물실험 관련 이슈…왜 지속 발생할까?
동물실험 분야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관련 법과 제도가 강화됐으며, 언론과 시민의 관심과 감시도 강해졌다. 그런데 왜 여전히 동물실험 관련 이슈가 지속 발생하는 것일까. 당장 최근에도 서울대 수의대에서 ‘메이’ 논란이 발생했고, 이 사건은 이날 ‘동물실험 정책의 현주소’ 토론회 개최로 이어졌다.
강병철 교수는 이에 대해 과학자의 의식 측면,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 활동 측면 등 다양한 접근을 보였다.
강 교수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자신의 실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가지고 모든 관련 법·가이드라인을 다 지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흔히 동물보호법과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만 동물실험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강병철 교수는 “관련 법과 가이드라인을 합치면 20여개에 이르고, 농식품부, 식약처, 산자부, 과기부 등 관련 부처도 많다”며 “규정이 매우 많고 복잡한데 이걸 잘 지키지 않으면 연구자가 범법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많은 동물실험 관련 법과 가이드라인이 과도한 규제가 되지 않도록 ‘self-check 리스트’ 등 간편한 가이드라인으로의 보완이 필요하다.
검역본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1년 동안 362개 기관에서 총 372만 7,163마리의 실험동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설치기관은 385개소였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는 최대 15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기관당 1년에 평균 1만 마리 이상의 동물이 실험에 동원되는 상황에서 IACUC가 모든 실험계획서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승인 후 점검(PAM) 역시 현실적으로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강병철 교수는 “동물시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방성을 가져야 하는데, 소수 책임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시설이 많다”며 “외부 감독을 통해 관리·심사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AAALAC International(국제실험동물관리평가인증협회) 인증이 좋은 외부 감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20여개 기관이 AAALAC 인증을 취득했다.
“믿을 만한 실험 결과, 과연 얼마나 될까? 동물복지·동물관리 제대로 되어야 동물실험도 의미 있어”
400개 가까운 국내 동물실험 시설 중 300여개 기관은 수의사가 단 1명도 근무하지 않는다. 좋은 시설의 경우 시설당 2~5명의 수의사가 근무하는 것과 천지 차이다.
수의사가 없는 곳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마취제 구입조차 쉽지 않다. 실험동물의 기본적인 복지가 지켜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책임수의사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강병철 교수는 “동물을 제대로 관리하고, 동물복지를 지켜야지 실험 데이터도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동물복지가 동물실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실제 강병철 교수는 같은 실험을 했음에도 온도의 변화, 마우스의 사육밀도에 따라 실험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있음을 예를 들어 설명해 참가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시설에서는 연구자 혼자 동물 주문, 관리, 실험, 환경 관리, 폐기물 처리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동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며, 그런 시설에서 나온 데이터 역시 의미 없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대규모 동물실험 시설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동물실험 가능 시설인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ABMRC)가 국내에 들어섰을 때 일부 동물단체가 ‘동물실험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오히려 이런 최첨단 시설이 동물관리·동물복지 측면에서 수준이 높고, 실험 결과도 더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연구자, 실험동물기관, IACUC의 협력도 강조했다. 이 삼각편대가 서로 견제하면서 협력해야 3R 원칙을 포함한 동물복지와 함께 더 나은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강병철 교수는 마지막으로 “동물복지와 윤리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실험이 이뤄질 수 없다. 복지는 기본”이라며 “동물복지를 지키지 않은 연구는 의미 없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