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아공 크루거 국립공원을 가다/이성빈 수의사 [1부]
2018. 06. 11. ~ 06.22. Student Elective Externship Program 실습 후기
본 기고문은 ‘2018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실습 후기 공모전’ 응모된 글이지만, 기고자가 이미 수의대를 졸업한 수의사여서 안타깝게도 제외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실습경험을 공유한다’는 공모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만큼, 일반 기고 형식으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주>
<실습 지원 동기>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픈 개, 고양이를 봐주시는 수의사 선생님들의 노고와 헌신에 감동해 수의사의 꿈을 키웠다. 그렇게 강원대 수의대에 입학했고, 김종택 교수님의 야생동물의학 수업과 실습을 진행하면서 야생동물과 동물원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록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동물들은 아니지만 고라니, 너구리, 수리부엉이 등의 야생동물이 정말 귀엽고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그래서 본과 4학년 여름방학, 수의사 국가시험과 졸업을 준비할 시간도 쪼개면서까지 동기 2명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 나이트 사파리 동물원으로 2주간 실습을 떠났다. 태국은 정말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나라라 동물원에서 다양한 종류의 새로운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태국 수의대 친구들도 사귀고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매 방학 때마다 해외에서 더 많은 실습을 경험해보고 싶었지만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학생 신분이라 제약이 많았던 게 아쉽기만 하다.
졸업 후 3년간 공중방역수의사 생활을 하면서 적금을 모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번엔 동물원에서만 보던 동물들을 야생에서 직접 보자!
‘그렇다면 어디가 제일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불현듯 아프리카가 떠올랐다. 사자, 코끼리, 기린, 코뿔소… 이때가 아니면 언제 경험해보나 싶었다.
공중방역수의사 전역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수의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곳, 아프리카 실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규모가 큰 곳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열심히 찾아보고 준비한 결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Student Elective Externship Program으로 2주간의 실습을 하게 됐다.
3년간 공중방역수의사 생활을 하며 모은 적금으로 두 달여간 유럽 8개국을 여행한 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크루거 국립공원 소개>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National Park)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국립공원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물론 전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야생동물 보호지역이다. 크기는 대략 2만㎢로, 우리나라 국토의 약 5분의 1 면적에 해당하는 방대한 넓이를 자랑한다.
서식환경이 뛰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각지와 해외에서 옮겨 온 야생동물을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하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1898년 개장하였으니 아프리카 최초의 국립공원이면서 세계 최고의 사파리 관광지 중 하나다.
세상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파리 관광지인 만큼, 시설과 시스템이 굉장히 훌륭하다. 보통 사파리라고 하면 위험하고 거친 흙길을 달리는 트럭을 상상하곤 하는데, 아스팔트 도로가 체계적으로 잘 뚫려 있어서 동물 관리가 용이하고 관광이 편리하다.
크루거 국립공원은 밀렵을 방지하고자 입장 시간에 제한이 있는데 계절별로 조금씩 다르다. 실습을 진행한 6월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 30분 사이에만 직원과 관광객들이 입장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일체 허용되지 않으며 밤 중에는 공원 내부에서는 차조차 운행할 수 없으니 유의해야 한다. 총기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입장 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트렁크 및 차량 내부를 검사받아야 한다.
실습을 진행하는 Kruger National Park Veterinary Wildlife Services(VWS) 동물병원은 스쿠쿠자 캠프(Skukuza camp)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진료 수의사들과 직원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VWS동물병원 바로 옆 수의사 캠프(Vet Camp)에서 머물게 된다.
크루거 국립공원VWS의 총괄 원장은 Dr. Peter Buss 수의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야생동물에 관한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여러가지 교재도 출판한 권위있는 분이다. 그 밑으로 Operation 팀, Vet Services 팀이 분류되어 있고, 여러 명의 수의사와 직원들이 함께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크루거 국립공원의 자연 환경과 생태계 시스템은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다. 때문에 VWS의 업무 방식도 우리나라 야생동물 구조센터와는 상당히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수리부엉이, 매 등의 조류와 고라니, 너구리 등의 포유류를 주로 다룬다. 하지만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임팔라, 아프리카 코끼리 등의 초식동물은 개체수가 매우 많아 연구 외에 특별한 관리는 하지 않는다. 주로 멸종위기에 속한 야생동물의 수의보존학에 초점을 두어 집중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편이다.
전체적인 생태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멸종위기종들을 보호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실습 지원 방법>
IVSA를 통해 지원해보고 싶었지만 본인은 대학교를 졸업한지 3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직접 신청을 시도했다. 아직 수의대를 다니고 있는 학생 신분으로서 크루거 국립공원에 관심이 있다면 IVSA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 신청하는 경우, Kruger National Park Veterinary Services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Admin Officer에게 메일을 보내 접촉할 수 있다. Admin Officer가 프로그램 지원 서류 양식을 보내주면 해당 서류를 잘 작성하고 본인의 간단한 이력서, 학장 추천서와 함께 신청하면 된다.
프로그램 지원 서류를 보면 실습을 받을 장소로 Kruger National Park와 Southern Parks를 선택할 수 있다. 본인이 희망하는 실습 날짜를 1~3지망까지 작성해 보낼 수 있다.
Student Elective Externship Program은 여름 극성수기를 피해 4월부터 9월까지 겨울 기간 동안만 진행된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실습 기회를 주고자 학생 당 실습 기간은 최대 2주까지만 허용된다.
자국의 수의과대학 본과 4학년들을 우선 배치하고 남은 자리에 외국 수의과대학 학생들을 넣어주는 시스템인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의과대학은 프리토리아 공립 대학교가 유일하다 보니 겨울 방학 시즌이 아니면 딱히 경쟁이 심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본인은 6월에 실습을 진행하였고, 외국 수의대 학생들이 신청을 많이 할 것 같아 미리 1월부터 연락을 주고받고 2월에 신청 서류를 전송했다.
나와 같은 실습 프로그램에 지원한 수의대 친구는 딱 한 명 있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대학교에서 온 Jennifer였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온 건 아니었지만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온 Katharina도 있었다. Katharina는 최대 2주까지만 신청할 수 있는 우리의 프로그램이 너무 짧다고 느껴 킴벌리(Kimberley) 포획 팀으로 따로 신청을 넣어 세 달 동안 일하고 있는 친구였다.
다들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 멋진 수의학도 친구들이었다. 함께 실습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금방 친해져서 실습이 끝나고 헤어질 때에는 정말 아쉬웠다.
<실습 전 준비할 것들>
우선 크루거 국립공원은 겨울에도 모기가 있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북쪽은 말라리아 발생 지역에 해당된다. 때문에 실습 전 반드시 말라리아 예방약을 병원에서 처방 받아야 한다. 남미와는 다르게 황열병(Yellow Fever) 예방은 필요가 없으므로 말라리아만 대비하면 된다. 모기 기피제 등을 챙겨가면 좋다.
실습은 겨울 시즌에만 진행되지만 우리나라의 겨울과 달리 낮에는 햇빛이 따가운 초여름 날씨이기 때문에 선크림, 선글라스를 꼭 챙겨가야 한다.
스크럽은 야생동물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녹색, 갈색 종류를 챙겨가는 것이 좋고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종류면 좋다. 그리고 밤에는 제법 쌀쌀하기 때문에 겉옷도 챙겨야 한다.
실습 중에 야생동물 사체 부검을 자주 하게 될 것이다. 병리학과 해부학을 영어로 간략하게 공부해가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검사를 위해 각종 장기 외에도 주요 림프절을 모두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주요 림프절들의 영어 이름과 위치를 기억해두고 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본인은 림프절들이 어디 있는지, 영어 이름이 뭔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실습 초반에 애를 먹었다. 공부를 좀 하고 올 걸 후회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실습 내용을 담은 2부(보러가기)로 이어집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