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방문한 청주동물원에는 아침부터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주동물원에 머무는 스라소니 8마리 중 하나인 수컷 ‘가을이’가 중성화수술을 받는 날이었다.
동물원은 종보전을 위한 기관이기도 하다. 최근 대서특필된 에버랜드 자이언트 판다의 번식 성공 소식만큼은 아니더라도, 동물원의 동물이 번식 대신 중성화수술을 하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사연은 이렇다. 앞서 가을이와 교배한 암컷 스라소니가 새끼를 한 마리 낳았는데, 새끼 스라소니가 사시로 태어난 것이다.
청주동물원은 가을이와 교배한 암컷이 근친관계가 있거나 유전적 결함이 있는 번식일 것으로 판단했다. 이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예방적인 중성화수술을 선택했다.
이날 수술은 청주동물원의 김정호·최태규 수의사가 집도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수의마취통증의학을 전공한 필자가 마취를 담당했다.
수술에 들어가기 앞서 마취 관련 이론강의를 진행한 후 실제 스라소니 마취를 실시했다. 전주동물원, 광주 우치동물원,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 등에서도 마취 강의와 스라소니 중성화수술 참관을 위해 참여했다.
전공자에게도 스라소니 마취는 흔치 않은 일이다. 평소 마취하는 고양이의 체중은 3~8kg이지만, 스라소니는 30kg 정도로 훨씬 크다.
책에서도 찾기 어려운 고양이와 스라소니의 해부학적 비교나 약물 관련 반응을 직접 볼 수 있어 뜻 깊은 경험이었다.
이처럼 서로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한 협진으로 동물에게는 더 나은 진료를 제공하고 수의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었다.
강의와 스라소니 마취를 진행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동물원 수의사 분들의 눈빛에는 열정이 가득했다. 필자까지 힘을 받는 느낌이었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에서의 무조건적 번식은 옳지 않다. 동물복지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수의사의 기술적인 측면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동물복지·동물윤리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면 직업의식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국내 토종 동물들도 여럿 청주동물원에서 보호하고 있다. 자연에 나가면 굶어 죽거나 공격에 취약한 동물들은 교육전시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물복지도 고려하면서 시민들의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다.
최태규 수의사는 국내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에든버러에서 동물복지를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곰들을 보호할 수 있는 생추어리 건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
최태규 수의사는 “한국에서는 아직 동물복지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물의 권리’에 가깝게만 여기고 있지만, 사실 동물복지는 자연과학에 가까운 학문으로서 철학과 윤리가 병행되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중성화수술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활동과 함께 진행됐다. 극지연구소와 인천대 전자공학과 진성훈 교수팀은 Epidermal Lynx-Patch 연구를 위해 자리했다. 스라소니에 전자피부기술 (epidermal electronics)을 기반으로 인천대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고감도센서를 붙여 원격으로 심박수와 호흡수를 측정하는 연구다.
진성훈 교수는 “야생동물을 매번 마취하는 것은 수의사와 동물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그래서 유선 대비 원격 데이터 송·수신 모니터링 기술은 더 중요하다”며 “원격 모니터링 기술을 잘 활용한다면 마취횟수나 시간을 줄이고 더 정밀한 건강관리가 가능하며, 나아가 향후 펫테크(PET-TECH) 분야에서 핵심기술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성화수술로 절제된 가을이의 정소는 멸종위기동물 유전자원 보존을 위해 전북대 수의산과학교실 유일정 교수 실험실에서 냉동보존한다. 이른바 동결 동물원(Frozen Zoo)를 구축하는 것으로, 희귀 동식물에서 채집한 생식세포나 세포조직을 극저온에 동결건조해 보관하는 일이다.
중성화수술을 받은 가을이를 비롯한 스라소니 3마리는 신축 동물사가 생긴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옮겨질 계획이다. 청주동물원의 물범도 좀더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바다와 가까운 수족관이 있는 제주 한화아쿠아리움으로 이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