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잘린 채 구조된 어미 대신 야생으로 돌아갈 새끼 삵 태어날까

청주동물원, 서울동물원 협진으로 멸종위기 삵 인공수정 국내 첫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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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에 처한 고양잇과 야생동물 ‘삵’의 종보전을 위한 인공수정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됐다. 청주동물원과 서울동물원 진료진의 첫 협진으로 성사된 이번 인공수정에는 전국 각지의 동물원 진료진과 충북대 수의대생들이 참여했다.

특히 다리가 잘린 채 구조된 암컷 삵 ‘긱스’가 대신 야생으로 돌아갈 새끼를 낳는데 성공할 지 주목된다.

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KAZA) 진료·종보전분과는 10월 27일과 28일 양일간 멸종위기 종보전을 위한 인공번식기술 세미나를 개최했다.

동물원 의료진간 협진으로 삵에게 복강경을 이용한 인공수정을 실시했다.
세미나 첫째 날 A(왼쪽), 둘째 날 오월이(오른쪽)의 인공수정이 진행됐다.

국내 동물원 첫 삵 인공수정 시도..동물원간 본격적 협진도 처음

멀리 떨어진 개체 간 인공수정, 근친교배 위험 줄이고 유전적 다양성 증진 기대

이번 세미나에서 인공수정을 시도한 동물은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삵이다. 서울동물원의 수컷 삵에서 채취한 정자를 청주동물원의 암컷 삵에게 복강경 수술로 인공수정을 시도했다.

세미나 일주일 전 인공수정을 받은 ‘긱스’와 함께 세미나 양일간 ‘A’, ‘오월이’까지 총 3마리의 삵에 인공수정이 진행됐다. 긱스와 A는 서울동물원에서 받은 정자를, 오월이는 청주동물원 내 다른 삵에서 채취한 정자를 활용했다.

국내 동물원이 삵의 인공수정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동물원의 의료진이 인공수정을 위해 협진한 첫 사례다.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는 “동물원끼리 간단한 동물건강검진에 앞서 장비를 빌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협진은 이번 인공수정이 처음”이라며 앞으로도 동물원 간 협진이 늘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인공수정이 근친교배의 위험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나 같은 동물원에 머무는 개체끼리 번식을 반복하는 대신, 개체의 이동 없이도 원거리에 있는 정자를 활용해 인공수정을 시도하면 야생동물의 종보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근친교배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병방역 등의 문제로 국내에 들어올 수 없는 해외 동물들과도 정자만 확보된다면 유전적 다양성을 높일 수 있다.

김정호 수의사가 오월이의 복강경 인공수정을 집도했다.

장애 얻은 어미 삵 대신 야생으로 돌아갈 새끼 태어날까

이번 인공수정은 사로잡힌 야생동물(captive animal)의 유전자를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방향성을 새롭게 제시하는 의미도 있다.

KAZA 진료·종보전분과가 인공번식기술 세미나를 개최한 계기는 ‘긱스’였다. 긱스는 다리가 잘린 채로 충북대 야생동물구조센터에 구조됐다.

장애를 얻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긱스 대신, 긱스가 낳은 새끼들을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인공수정이 계획됐다.

이번 삵 인공수정이 성공하면 태어난 새끼들은 방사훈련을 거쳐 청주 미호천 등 자연 서식지에 방사할 예정이다.

앞서 국내 야생동물의 인공수정 성공사례는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대표적이다. 국립공원공단 진료진이 2018년 세계최초로 인공수정 번식에 성공한데 이어 지난해에도 성공사례를 이어갔다.

삵의 임신기간은 약 2달. 이번 인공수정의 성공 여부는 한 달여 후 혈액·호르몬 검사와 초음파 등을 통해 가늠할 예정이다.

청주동물원은 여러 동물 방사장을 동물복지형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사진 : 청주동물원 SNS)

청주동물원, 환경부 지원사업으로 동물복지형 방사장 리모델링 지속

국내 동물원 중 환경부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서울대공원과 용인 에버랜드, 청주동물원 등 3곳이다.

청주동물원은 환경부 생물자원보전시설 설치사업 지원을 받아 동물복지형 동물원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반달가슴곰 방사장을 확대 리모델링한데 이어 올해 호랑이사, 붉은여우사, 산양사의 방사장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에는 수달, 사자, 하이에나까지 시설 개편을 이어갈 계획이다.

각 개체에 특성에 맞는 행동풍부화 기반 마련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동물원에 머무는 동물의 복지를 끊임없이 고민해 개선하고 있다.

김정호 수의사는 이번 세미나 말미에 고민을 내비쳤다. 인공수정이 종복원에 필요한 기술이지만 개체에게는 고통을 준다는 측면에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김정호 수의사는 “앞으로는 건강검진을 하면서 비침습적으로 정자를 동결하거나, 암컷의 오줌 호르몬 분석을 통한 번식행동변화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라고 전했다.

윤서현 기자 dbstjgus981218@gmail.com

다리 잘린 채 구조된 어미 대신 야생으로 돌아갈 새끼 삵 태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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