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불법 덫` 멸종위기종·천연기념물까지 위협
농작물 피해·밀렵에 불법 덫 여전히 기승..깃 뽑히고 다리 잘려 생명 위협
“밀렵은 사람이 직접적인 악의를 가지고 야생동물을 다치게 하는 행위입니다” 전남야생동물구조센터 현용선 수의사의 지적이다.
불법적으로 설치된 덫에 걸린 야생동물들은 설사 구조된다 할지라도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도 예외는 없다.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에 올해 10월까지 접수된 불법 덫 관련 구조건수는 10건이다. 연간 5건 내외에 그치던 예년에 비해 늘어난 숫자다.
충북, 경북, 전남 등 3개 센터에서만 2013년부터 올해까지 불법 덫으로 인한 구조건수가 111건에 달한다. 충남센터에서는 2010년부터 7년간 덫·올가미로 209건, 쥐끈끈이로 6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전국적으로 13개의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구조건수는 수백여건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덫은 동물을 가리지 않는다. 포유류뿐만 아니라 조류도 걸린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도 예외는 없다.
4개 야생동물구조센터로부터 수집한 덫 피해 목록에는 수달(CITES 1급), 삵(2급), 담비(2급) 등 포유류 멸종위기종과 소쩍새(1급), 수리부엉이(2급), 황조롱이(2급), 참매(2급), 새홀리기(2급) 등 조류 멸종위기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수달, 소쩍새, 황조롱이, 수리부엉이, 참매 등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김문정 재활관리사는 “덫 설치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우연히 발견해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 피해가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 동물까지 구분 없이 발생하고 있어 보호종 관리가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라고는 하지만 덫에 걸린 야생동물들의 예후는 좋지 않다. 날카로운 창애에 걸리면 다리가 골절되거나 심하면 절단되기 일쑤다. 폐사된 채로 발견되거나 구조되더라도 처치효과를 보기 전에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운 좋게 살아도 먹이활동에 필수적인 신체구조를 잃으면 안락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충북야생동물구조센터 배소원 수의사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2차적인 외상이 발생하게 된다”며 “구조되기까지 탈진, 기아 상태가 지속돼 예후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김문정 재활관리사는 “불법 덫의 문제는 동물에게 심각한 고통을 준다는 점”이라며 “신체일부가 걸리면 절단되지 않는 이상 벗어나기 어렵고,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덫’이라고 하면 창애나 올무를 떠올리기 쉽지만 ‘쥐끈끈이’나 ‘파리끈끈이’도 야생조류를 위협한다. 먹이를 찾기 위해 접근했다가 끈끈이에 붙는 식이다. 폐사할 때까지 고통받거나, 구조되더라도 깃이 손상되면서 비행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현용선 수의사는 “소형 조류는 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에 낚여서 붙잡히고, 맹금류는 끈끈이에 붙은 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접근하다가 2차 피해를 받는다”며 “벗어나려고 심하게 발버둥 치다 포획근병증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폐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김문정 재활관리사는 “새끼를 키우면서 활발히 먹이활동을 하거나, 아직 사냥에 미숙한 맹금류가 쉽게 먹이를 확보할 수 있다 보니, 끈끈이에 걸리는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현행 야생생물보호법은 ‘덫, 창애, 올무 또는 그 밖에 야생동물을 포획할 수 있는 도구를 제작·판매·소지 또는 보관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포획을 위해 이러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위 사례처럼 덫을 놓아 멸종위기종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이 같은 행위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농축산물 피해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사과, 배, 포도, 벼, 등 각종 농작물이 매년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다.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주기도 하지만 충분치는 않다.
이완영 국회의원은 10월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는 단위면적당 소득액과 피해율을 고려해 5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해주는데 반해, 농림부는 시군구별로 피해면적이 10헥타르 이상이어야만 헥타르당 220만원을 지원하는데 그치고 있다”며 실효성 있는 보상책 마련을 주문했다.
이처럼 보상이 여의치 않다 보니 농가 스스로 야생동물 잡기에 나서게 된다. 법으로 허용된 ‘유해야생동물 포획사업’이 있지만, 날을 잡아 오는 포획단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서, 농가 스스로 덫을 놓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지적이다.
환경부는 멧돼지, 고라니, 까치 등 주요 농작물 피해유발 동물 16종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해 제한적으로 수렵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지난해 포획된 유해야생동물만 멧돼지 3만3천여두, 고라니 11만 3천여두를 포함해 25만여수에 달한다.
유해야생동물 포획을 위해 사전 허가된 올무나 생포용 덫을 사용할 수도 있다. ‘합법’ 올무나 생포용 덫을 사용할 때는 불법 덫과 구별하는 표지를 부착하고, 유해야생동물이 아닌 다른 동물을 포획하면 안전하게 방사하거나 치료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현장관계자의 공통된 전언이다. 정식 유해야생동물 포획은 대부분 수렵면허자의 총포로 이뤄지며, 덫은 일선 농가나 밀렵꾼이 불법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방 환경청과 지자체, 지역 환경단체들이 주기적으로 불법엽구 수거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설치현장을 적발하지 않는 한 밀렵인을 잡아내긴 어렵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먹이가 부족해 농가 주위로 출몰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을·겨울철을 위주로 불법엽구 수거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야생동물 불법 밀거래나 불법엽구를 목격해 지자체나 지방 환경청에 신고하면 소정의 포상금도 주어진다.
한국야생동물센터협의회 회장 연성찬 경상대 교수는 “불법 엽구의 특성 상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며 엽구 위치를 찾기도 어렵지만, 야생동물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 교수는 “전국 야생동물센터에서는 불법 엽구의 문제점을 홍보하고 등 노력하고 있지만, 불법 엽구 수거가 자원봉사 형태인 경우가 많아 한계가 있다”며 “제도적 지원이나 활동 환경 개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일선 센터 관계자는 “불법 엽구 사용을 엄격히 단속하면서, 동물종에 적합한 생포트랩과 포획 가이드라인을 보급해야 한다”며 “생포 외에도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연구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상준 기자 ysj@dailyv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