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가면서 한 번 정도는 잘 닦여진 유리창에 얼굴을 박아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야생동물들에게 어떤 피해를 얼마나 일으키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유리창은 매년 수많은 새를 불필요한 죽음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도로 방음벽에서 수거한 조류 폐사체의 일부입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투명 유리’를 식별해 내지만, 새들은 식별하지 못한다
미국에서만 연간 3.5억~10억마리 조류들이 ‘유리창 충돌’로 죽는다
유리는 그 특성상 주변 경관을 거울처럼 반사하거나 빛을 100% 통과시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유리는 태양의 상대적인 위치, 외부와 내부 조도, 반사 물체 및 각도 등과 같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뀔 수 있죠. 이 요인들의 조합은 유리를 거울 또는 어두운 통로처럼 보이게 하거나 완전히 보이지 않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투명 유리를 “보지는” 못하지만, 유리에 묻은 먼지나 오물 또는 창문틀과 같은 사물을 통해 유리를 식별해냅니다. 바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죠. 그러나 새들은 사람과는 달리 유리를 인식하지 못하며 기타 인공적인 구조물을 장애물 또는 인공 구조물이라고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대학교 식당 근처에 사는 새들의 경우 경험 때문에 식당 건물의 유리를 인지하는 예도 있기는 하지만, 유리의 본질적 속성인 투명성과 반사성을 절대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1970년대 말부터 조사된 바에 따르면, 직접적인 원인으로 ‘유리창 충돌’이 ‘서식지 파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조류 죽음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만 1년에 약 3억 5천만 마리에서 10억 마리에 가까운 조류들이 유리창 충돌로 죽는다고 합니다. 인구 3천 6백만 명인 캐나다에서는 연간 2천4백5십만 마리가 죽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뭍 생명의 피고 짐은 자연의 섭리인지라, 죽음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죽음에는 죽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와 적정한 비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생물종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죽음도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로드킬이나 유리창 충돌로 인한 죽음은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건강성 정도와는 무관하게 불특정 다수를 제거해버립니다. 어린 동물이나 이주성 조류, 심지어 건강한 성체들까지도 도시화된 인공 구조물에 대한 학습이 전혀 없기에 쉽게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립니다.
도로 주변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도 엄청난 위험 요소입니다.
우리는 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다니기에 그 피해 정도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방음벽 주변을 걷다 보면 실제로 매우 많은 사체를 발견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특히 방음벽은 숲이나 농경지 등의 조류 서식지 인근에 설치하기 때문에 주변에 서식하는 조류에게는 블랙홀과 같은 피해를 일으킵니다.
방음벽은 건물과는 달리 양면 모두가 투명하기에 그 단위 길이당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전체 도로의 4.4%밖에 되지 않지만, 한국도로공사 관리 고속도로(3,841㎞) 중 투명방음벽의 총 연장 길이는 22.9㎞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조류는 왜 유리창에 취약하며 생명을 잃는 것일까요?
첫번째 이유는 바로 속도입니다.
사람들이 걸을 때는 일반적으로 시간당 5㎞ 이하의 속도를 갖습니다. 이 정도 속도로 유리창에 충돌했을 때도 우리는 코피나 나거나 머리가 띵할 정도로 충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조류는 입장이 다릅니다. 연구에 따르면 조류는 보통 시속 36~72㎞의 속도로 비행합니다. 새들은 비행을 위해 몸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뼈에는 많은 빈 공간을 두게끔 진화했습니다. 두개골도 스펀지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죠. 이러한 진화 특징은 비행 중 발생하는 유리창 충돌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또한, 조류 시력은 인간과 비교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엉이와 같은 포식 조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류는 포식자를 감시하기 위해 무척 넓은 시야각을 갖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눈은 보통 머리의 외측 면에 위치하죠. 넓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심도(깊이) 인지력은 매우 떨어져서 자신 부리의 끝 지점 정도의 한계점을 갖는데, 이는 먹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이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마치 사람이 한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상태입니다.
바로 앞에 있는 물체는 인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옆이나 뒤에서 쫓아오는 천적은 뛰어나게 인식한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조류는 자신의 옆쪽을 가장 예리하게 볼 수 있습니다. 조류가 유리에 충돌하는 것은 전방에 대한 인지능력이 떨어지므로 유리가 있는 부분이 열린 공간이라 인식하여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력의 또 다른 개념인 색 감각도 다릅니다.
인간은 색깔을 구분하는 데 있어 세 가지 색각(빨강, 파랑, 초록)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조류는 자외선 대역을 포함한 네 가지 색각을 가지고 있죠. 이러한 것에 의지하여 조류는 인간보다 더 많은 색깔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새들도 종에 따라서 보는 시각에 조금 차이가 있긴 합니다. 어떤 새들은 보라색까지만 인지하는가 하면 참새목과 같은 대부분의 조류는 자외선 파장대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유리에 조류는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인지 못 하는 자외선 패턴을 입히는 것도 충돌을 막는 좋은 방법으로 거론됩니다.
이동성 조류, 즉 철새는 자기장도 인식한답니다.
이러한 자기장은 특히 노란색 조명과 붉은색 조명에 의해 방해를 많이 받죠. 하지만 도심의 야간조명에는 이러한 조명색이 많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조류들의 방향감에 영향을 주고 도심에서 야간충돌이 발생한다는 연구도 보고되었습니다. 야간조명을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변경하면 그나마 자기장 영향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을 찾자면 “야 유리창 청소하지 말자”는 것인데, 쉽지 않겠죠. 그래서 버드세이버라는 제품을 많이들 선호하시기도 합니다. 이는 맹금류 실루엣 스티커인데 그 제품을 부착하더라도 빈 공간이 있으면 여전히 위험합니다.
많은 분들이 맹금류 모양을 새들이 무서워해 접근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새들은 사람들보다 더 시력이 좋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충분한 수량의 스티커를 건물 유리창 외측 면에 붙여야만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 외에도 조류 유리창 충돌문제를 근원적으로 막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자외선 반사 필름이나 타공필름, 하다못해 커튼을 제대로만 쳐두어도 가치가 있습니다. 모기장이나 그물망 등을 달아두어도 좋습니다.
이와 더불어 집에서 간단하게 장치를 만들어 유리창에 부착하는 것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Acopian BirdSavers에서는 낙하산 줄을 이용한 조류 충돌 방지 기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리창 바깥 면에서 10cm 간격으로 로프나 밧줄을 늘어뜨려 조류가 유리창으로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는 기법이죠. 줄 길이는 유리 바닥면에서 5㎝ 정도 떨어뜨리는 방법과 유리 바닥까지 내려 고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 다 사용이 가능합니다. 줄을 늘어뜨리면 바람에 의해 줄이 날리면서 시각적 효과를 배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간혹 줄이 주변 물체와 꼬여 빈 공간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유리창 충돌과 관련한 세계적인 석학인 다니엘 클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줄을 이용할 경우 조류는 92~100% 정도 유리창을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방법을 사용할 경우, 줄은 수축이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물을 머금은 상태에서는 수축 현상이 발생하는 경향이 강한데 밀스펙 파라코드(Mil-Spec paracord)라는 낙하산 줄은 수축발생 현상이 매우 적어 Acopian BirdSavers에서도 추천하는 재질입니다.
집에서 간단하게 예방하는 방법은 또 있습니다.
바로 아크릴 물감을 이용하는 방법이죠. 조류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지켜야 할 규칙 중 하나는 5×10의 규칙입니다. 세로로 5㎝, 가로로 10㎝ 이상 무늬를 띄우면 안 됩니다. 일부 조류 종은 그사이를 빠져나가려는 습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아크릴 물감은 벽호를 그리는데 사용하는 재질이므로 내구성이 강한 특성이 있습니다. 직경 5㎜ 이상의 반점을 유리에 5㎝ 이내의 간격으로 찍어두면 새들이 유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새들의 능력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이용한 자외선 반사 테이프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사실 국립생태원에도 많은 유리창이 존재하는데요, 생태원 주변 조류와의 공생을 위한 고려 끝에 건물 유리창에 이 자외선 반사 필름을 부착하여 무척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보통 타공필름이나 원웨이필름(one way film)으로 알려진 필름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유리의 외부 면에 부착하며, 보통은 시트지 방식으로 부착합니다. 필요에 따라 바깥 면에는 원하는 그림이나 사진을 인쇄하여 디자인을 강조할 수도 있죠. 내측에서 바깥을 볼 때 선팅 필름의 효과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국립생태원의 맹금류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유리창에도 타공필름을 도입하여 유리창 충돌사고를 예방하고 있습니다.
방음벽의 경우에도 5×10의 규칙을 적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외에는 이미 이러한 제품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이긴 하나 저감방안이 도입된 방음벽도 존재하죠. 저감방안 규칙은 수직 무늬의 경우 너비는 최소 6㎜ 이상, 무늬 간 내부 간격은 10㎝ 이하, 수평 무늬의 경우 너비는 최소 3㎜ 이상, 무늬 간 내부 간격은 5㎝ 이하로 제한하면 됩니다.
야생동물의 보호와 관리는 담당하는 환경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조류의 인공 구조물 충돌 연구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계와 야생생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이유 없는 불합리한 죽음일 것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국립생태원이 발간한 야생조류와 유리창 충돌 가이드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