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출신 조충희 수의사 `아프리카돼지열병, 북한서 발병했을 가능성 높다`
방역 인프라 부족, 개인축산, 북중 축산물 밀거래 등 위험요소 다분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에서 축산공무원으로 일했던 조충희 수의사(사진)는 3일 “북측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이미 발병했다고 보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한반도의 축산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조충희 수의사는 이날 돼지와사람 긴급좌담회에서 ASF에 취약한 북한 축산의 특성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의 수의방역기구는 농업성 수의방역국과 중앙수의방역소를 기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로 구축되어 있다. 기본적인 행정 틀은 갖추고 있지만 진단기술이나 설비, 약재 부족으로 실질적인 방역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직접 키우는 돼지들도 위험요소로 꼽힌다.
조충희 수의사는 “작은 아파트 부엌에서도 돼지를 기를만큼 북한 주민 다수가 개인축산에 나서고 있다”며 “장마당(시장)에 나오는 축산물의 대다수가 개인축산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정에서 돼지, 닭 등을 직접 길러 공급이 부족한 축산물을 자체 해결하거나, 식량으로 교환하는 용도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들 개인축산은 물론 사료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협동농장마저 남은음식물(잔반)을 먹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염된 축산물로 인한 ASF 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조충희 수의사는 북한 가정에서 기르던 돼지가 ASF에 감염된다 한들 당국에 신고할 가능성은 극히 적고, 폐사한 돼지는 그대로 자체 도축해 먹거나 장마당에 내다 팔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으로부터의 전파 가능성도 다분하다.
북중 국경지역에서 활발한 밀거래 중에는 축산물도 포함된다. 북한 내부의 축산물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국경지역 장마당에서는 중국산 고기가 공공연하게 유통된다는 것이다.
조충희 수의사는 북중 국경 인근을 포함한 중국 전역에서 ASF가 발병하면서, 지난 겨울 축산물 밀거래가 더 늘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북중 국경에서 사람들도 오고 가는 만큼 야생동물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점도 위험요소다. 유럽처럼 멧돼지를 통해 한반도로 ASF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조충희 수의사는 “북한이 식량난 과정에서 멧돼지를 다 잡아먹었을 것이란 일각의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멧돼지 사냥이 쉬운 일도 아니고, 북한 주민에 대한 총기류 제한이 아주 엄격하다. 여전히 산간지대 농장의 감자나 옥수수는 멧돼지 피해가 극심하다”고 덧붙였다.
조충희 수의사는 “로동신문이 ASF에 대한 소식을 3회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며 “가축질병이 발생해도 내부 관계자만 알고 넘어가는 북한의 특성을 볼 때 발병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북측으로부터의 전파 위험을 상정한 전진적인 방역대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충희 수의사는 “남북한은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등 가축질병을 공유한다고 본다”며 “수의방역 분야에서만큼은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