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처방의무에 총량 규제, 징벌적 세율까지` 덴마크의 항생제 전략
수의사·농장 계약 의무화 대신 약품 판매 못해..달스고르 교수 ‘좋은 수의사가 되어 돈 벌어야’
항생제 내성 저감의 주요 전략은 항생제 사용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동물에서는 가장 사용량이 많은 양돈업에서의 사용량 저감이 핵심이다.
양돈선진국인 덴마크는 1990년대부터 동물 항생제 사용저감을 위해 강력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앤더스 달스고르(Anders Dalsgaard)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수의공중보건학부 교수는 7일 이어진 제1회 식품유래 항생제 내성 국제컨퍼런스(GCFA)에서 덴마크의 동물용 항생제 저감 전략을 소개했다.
동물용 항생제는 반드시 수의사 처방 하에서만 사용하도록 하고, 농장별 사용량을 모니터링해 공개하고, 일정 기준 이상 사용한 농장에는 옐로카드를 부여하는 정책을 포함한다.
수의사와 농장의 일대일 자문계약을 의무화하고, 백신 등 항생제를 대체할 질병관리 수단에 상대적인 세재 혜택까지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항생제 총 사용량은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양돈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가운데 거둔 성과다.
항생제 수의사 처방 의무화, 농장 자문계약 의무화..대신 약품 판매 못해
“수의사는 좋은 수의사가 되어 돈을 벌어야 한다”
달스고르 교수는 “항생제는 사용하면 내성이 생긴다. 그래서 사용을 줄여야 한다. 그것이 덴마크 정책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정책의 핵심 타겟은 양돈업이다. 덴마크에서 사용되는 동물용 항생제의 75%가 돼지에 쓰인다. 덴마크에서 기르는 돼지는 약 3200만두로 인구(600만)의 다섯배에 달한다. 동물용 항생제 사용량이 사람 항생제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덴마크는 동물용 항생제를 사용해야 할 필요성 자체를 줄이고, 꼭 써야 한다면 수의사의 관리를 받게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덴마크에서는 1990년대 이전부터 모든 동물용 항생제는 수의사 처방에 의해 사용됐다. 이후 1994년과 2000년에 두 차례의 전기를 맞이했다.
1994년에는 농장동물 수의사와 약품 판매를 분리했다. 수의사는 처방만 내리고, 약을 팔아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대신 모든 농장이 수의사 자문 서비스와 일대일 계약을 의무적으로 맺도록 했다. 계약을 맺은 수의사는 농장동물의 건강을 관리한다. 매월 농장을 방문해 돈군·계군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필요한 약을 처방한다. 백신 프로그램을 짜고, 동물복지 상황도 관찰한다.
달스고르 교수는 “수의사는 항생제를 팔아 돈을 못 벌게 했다. 대신 좋은 수의사가 되어 돈을 벌어야 한다. 질병 치료보다 예방에 더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구조는 동물병원 매출을 위해 항생제 판매량을 늘리려는 유인을 제거한다. 농장동물 수의사가 진료로 돈을 버는 구조는 차단방역·사양관리 등을 통해 농장동물의 건강상태를 개선하면서 항생제가 필요한 상황 자체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덴마크는 이듬해인 1995년부터 사람, 동물, 식품에서의 항생제 내성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DANMAP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에는 VetStat 시스템을 도입했다. 모든 농장과 수의사에게 ID를 부여해 항생제 처방·사용량을 전산 등록한다.
달스고르 교수는 “어떤 농장이, 누구의 처방에 따라, 무슨 항생제를, 얼마나 썼는지 모두 기록된다”며 “대중에게도 공개되어 있다. 농민이든 기자든 자유롭고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항생제 총 사용량 규제와 옐로카드..사용량 상한선이 점차 내려와
사용량 가중치·세제 혜택으로 광범위 항생제 사용 불리하게
덴마크는 농장이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의 총량을 규제하고 있다. VetStat 시스템을 통해 각 농장이 항생제를 얼마나 쓰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당국이 제시한 상한선을 넘어서 항생제를 사용하면 ‘옐로카드’를 받는다. 옐로카드를 받으면 항생제 사용 저감계획을 당국에 제출하고 향후 9개월 동안 실제로 줄여야 한다. 이마저도 실패하면 추가적인 페널티를 받는다.
달스고르 교수는 “2010년 옐로카드 정책이 도입된 후 양돈에서 항생제 사용량이 30% 가까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총량 규제는 점차 심화된다. 덴마크 전체 농장의 평균 사용량에 연동하여 상한선을 정하기 때문이다. 농장들이 전반적으로 항생제를 덜 쓸수록 상한선도 내려가 더 엄격한 사용량 제한을 받는 구조다.
항생제 성분별로도 총량 제한을 달리 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사람에서 중요한 광범위 항생제는 동물에서의 사용을 더 엄격히 규제하기 위해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달스고르 교수는 “항생제를 쓰더라도 광범위항생제보다는 좁은 범위의 항생제를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식은 세제 혜택으로도 실현한다. 우선적으로 사용량을 줄여야 할 항생제에 높은 세율을 부과한다.
좁은 범위의 페니실린에는 0.8%의 세금을 부과하는 반면, 3·4세대 세팔로스포린이나 플루오르퀴놀론 등에는 10.8% 세율을 적용한다. 백신처럼 항생제 필요성을 대체할 수 있는 옵션에는 아예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달스고르 교수는 “콜리스틴은 2016년 이후 사용량이 급감했다. 사용 자체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높은 세율과 가중치를 적용하고, 관련 가이드라인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룬 덕분”이라고 전했다.
당국·농장·수의사 상호 소통협력 강조
덴마크의 전략은 항생제 사용량 감소라는 성과를 얻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항생제 총 사용량이 24% 감소됐다. 2022년까지 추가적으로 8%를 감축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미 항생제를 적게 쓰는데 더 줄이려다 보니, 아픈 동물까지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동물복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할 정도다.
달스고르 교수는 당국·농장·수의사의 상호 소통과 협력, 견고한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달스고르 교수는 “결국 항생제를 투약하는 건 농장이다. 공공기관이 그저 규제만 해선 안 된다. 농장과 함께 정책을 개발하고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와 비교? 全항생제 수의사 처방대상 지정은 했지만..
日도 전자처방 시범 프로젝트
우리나라도 지난해 모든 동물용 항생제를 수의사 처방대상으로 지정했다. 2022년부터 발효된다. 수의사 처방을 전산관리하는 시스템(eVET)도 있고, 전자처방전 사용도 의무화됐다.
하지만 축산분야에서 항생제가 수의사 처방에 의해 관리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이라 해도 여전히 농장이 마음대로 주문해서 자가진료에 활용하고, 동물용의약품판매업소와 처방전 전문 수의사가 결탁한 사무장 동물병원이 형식적인 처방전만 남기는 행태가 여전하다.
최근 대한수의사회 농장동물진료권쟁취특별위원회가 불법 처방전을 남발하는 사무장 동물병원 혐의자를 연이어 고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덴마크 VetStat과 달리 eVET은 농장별 항생제 처방량을 간편히 확인하기 힘든 형태인데다, 전산입력이 의무화된 수의사 처방과 달리 실제 판매내역은 의무 입력사항이 아니라는 점도 한계다.
이러한 가운데 동물용 항생제 사용량은 좀처럼 감소하지 않고 있다. 당국에 따르면 국내 축산분야 항생제 사용량은 생산량 대비 OECD 1위 수준이다. 양돈에서는 덴마크의 7배에 달한다.
수의사에 의한 처방, 전산기반 모니터링 체계를 동물용 항생제 사용량 저감 전략의 기반으로 삼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토모코 이시바시 일본 농림수산성 국제기준과장은 이날 컨퍼런스에서 “농가 단위에서 신중한 항생제 사용을 담보하려면 실질적인 현황정보가 필수적”이라고 지목했다.
단순히 농가나 수의사들을 상대로 항생제를 오남용하지 말아달라는 교육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도 가축위생관리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동물용 항생제 전자처방시스템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모코 이시바시 기준관은 “지역 가축위생센터와 수의사, 농장, 약품판매업소가 항생제 사용기록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 “시스템 구축으로 항생제 내성 저감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