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키워드, 인위적 전파·8대방역시설·백신
돼지수의사회 연례세미나서 ASF 현안 조명
한국돼지수의사회(회장 고상억)가 3일 충북 C&V 센터에서 개최한 2021 연례세미나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현안을 조명했다.
오연수 교수는 ASF 바이러스 감염의 병리학적 특성부터 국내 발생 현황을 진단했다. 인위적 전파로 감염지대가 확산되는 문제를 지목하면서, 멧돼지에서의 감염 만성화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박경훈 피그만클리닉동물병원 원장은 8대 방역시설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정부가 8대 방역시설 의무 지역 확대를 추진하는 만큼 현장 경험에 눈길이 쏠렸다.
돼지수의사회 학술부회장 선우선영 박사는 ASF 백신의 국내외 개발연구 현황을 소개했다. 현재까지 사용 가능한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고, 개발된다 하더라도 국내 도입엔 여러 전제조건이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ASF 새 지역 확산은 인위적 전파..환경부 예찰 효율은 개선
멧돼지서 ASF 감염 만성화 가능성도
오연수 강원대 교수는 “2020년 이후 새로운 지역으로의 ASF 감염 확산은 인위적 전파”라고 지목했다.
기존 발생지역에서 거리가 먼 곳에서 갑자기 양성 멧돼지가 확인되면 4~6개월에 걸쳐 주변의 양성 검출이 증가했다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이 같은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멧돼지 수색·포획 과정이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총기포획으로 멧돼지 이동거리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데다, 포획단이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만큼 기계적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포획단이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방역을 교육해야 한다. 엽견을 포함해 포획단을 등록하고 활동기록을 남기는 등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올해 전년대비 ASF 양성 멧돼지 검출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멧돼지) 어린 개체에서 다수 검출됐다는 점에서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점을 살펴볼 수 있다”면서도 환경부의 멧돼지 수색 예찰 효율성이 예전보다 높아진 영향이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멧돼지로 인한 바이러스 오염지역이 늘어나면서 양돈농장의 산발적인 발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서만 고성, 인제, 홍천 양돈농장에서 ASF가 발생했다.
오 교수는 “주로 모돈농장에서 발생하지만, 발생농장의 형태는 다양하다”면서 “발생농장의 리포트를 보면 농장 내부에서의 방역수칙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멧돼지에서의 발생기간이 길어질수록 바이러스 감염이 만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내놨다.
국내 유입된 2형 유전형 ASF바이러스는 병원성이 높아 사육돼지는 물론 멧돼지가 감염되면 폐사한다.
하지만 ASF 바이러스가 멧돼지에서 감염·전파를 반복하며 변이가 누적되면, 병원성이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서식하는 멧돼지의 포획·개체수 저감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감염이 만성화될 경우 양성개체로 인한 확산범위가 늘어나거나 상재화될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 교수는 유럽·중국 등에서 이미 병원성이 약한 변이주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지목했다. 한국도 벌써 멧돼지에서의 감염이 2년째 지속되고 있다.
8대 방역시설 기준 맞추기 어려워..경기 북부 재입식 농가 적다
오락가락한 심사기준에 농장은 헛돈 쓰고 수의사도 곤란
예살 제외 가능성에 1형 농장 선호..축산폐기물 보관시설엔 의문 부호
박경훈 피그만클리닉동물병원 원장은 통칭 8대 방역시설 설치 문제를 두고 현장경험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ASF가 발생했거나 멧돼지에서 발생 중인 경기·강원 지역은 ‘중점방역관리지구’로 묶인다. 중점방역관리지구 내 양돈농장은 8대 방역시설을 포함한 기준을 충족해야 돼지를 키울 수 있다.
ASF 양성 멧돼지가 백두대간을 타고 점차 남하하면서, 정부는 8대 방역시설 설치 의무화 지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박경훈 원장은 8대 방역시설을 완비해 돼지를 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초기부터 짜임새 있게 지어진 농장이 아닌 경우는 방역라인을 구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ASF 발생 전 운영됐던) 파주의 150여 돼지농장 중 50여개는 이미 폐업했고, 현재도 폐업을 준비 중인 곳이 있다”면서 “(ASF 예방적 살처분 이후) 2년이 지났지만 돼지를 재입식한 농장은 33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락가락했던 방역당국의 심사기준에 대한 문제의식도 내비쳤다.
외부울타리에 능형망을 써도 된다고 안내했다가, 정작 심사가 진행되면서는 지면까지 다 막힌 철판이나 벽으로 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많으면 수천만원에 달하는 능형망 울타리 설치비를 낭비하게 만든 셈이다.
농가는 농가대로 피해를 입고, 중간에서 방역시설을 자문한 수의사도 컴플레인을 겪으며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날 8대 방역시설별 설치 사례를 소개한 박 원장은 돼지농장들이 1형 농장을 선호한다는 점을 지목했다. 1형 농장은 출하, 사료, 분뇨 등 외부 차량이 농장 내부에 들어오지 않는 형태다.
박 원장은 “지자체에서는 1형 농장의 경우 주변 농장에서 ASF가 터져도 예방적 살처분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농장으로서는 1형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장 내부로 진입한 외부 차량이 농장 직원이나 돼지가 이동하는 동선과 겹치는 문제는 차단방역의 주요 허점으로 지목된다. 멧돼지로 인해 오염된 농장 주변의 ASF 바이러스가 내부로 들어오는 전형적인 통로다.
때문에 외부 차량과 농장을 막힌 울타리로 구분한 1형 농장이 방역상 이점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날 박 원장이 소개한 농장 사례에서는 안쪽으로 외부 울타리가 깊숙이 파고드는 형태를 만들어서라도 1형 농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실용성이 의문시되는 시설도 있다. 축산폐기물 보관시설이 전형적이다. 폐사축이나 태반, 사산축 등을 보관하는 냉동시설을 별도로 두라는 것인데, 별도로 보관해봤자 처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일선 수의사는 “폐기물 보관시설은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없으면 허가가 안 나오니 두긴 하지만 농가에서도 실제로는 쓰지 않는다. 따로 보관했다가 렌더링으로 처리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ASF 백신은 아직..’개발된다고 국내에서 당장 써야 하는 것은 아냐’
한국돼지수의사회 학술부회장 선우선영 박사는 국내외 ASF 백신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유전자재조합 약독화 생백신이 그나마 상용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꼽히지만,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스페인·미국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백신 개발실험 결과를 소개했는데 백신주나 접종량, 공격접종 시기, 연령에 따라 결과는 다양했다. 교차방어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선우 박사는 “백신이 나온다고 (국내에서)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 철저한 안전성 검증과 백신주·야외주 감별을 위한 DIVA 등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선우 박사는 “현재까지는 실험실 데이터가 많다. 양돈현장에 적용하면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 지 모른다”면서 “백신이 나온다 해도 백신만 능사가 아니다. 농가의 기본적인 차단방역 수준이 높아져야 백신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