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오리농가 고병원성 AI, 시설 지원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비닐하우스에 매일 왕겨살포기 출입..바이러스 유입 방어 어려워 ‘시설개선에 정부 지원 절실’
“매년 겨울마다 들어가는 살처분보상금, 휴지기 보상금 예산을 사육시설 개선을 지원하는데 쓸 수는 없나”
오리에서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은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겨울 철새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분리되는 해에는 여지없이 발병한다.
제대로 차단방역을 수행하기 어려운 열악한 사육시설이 주 원인으로 꼽히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방역상 취약점을 줄이는 시설투자를 유도하려면 정부의 전향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은 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오리농가 AI방역대책,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국회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는 당장의 AI 대책보다 중장기적으로 오리에서의 고병원성 AI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방향성에 초점을 맞췄다.
오리농가 76%가 비닐하우스
왕겨살포기 매일 출입하며 방역 취약
동국대가 2019년 실시한 ‘오리 사육시설 개편방안 연구’에 따르면, 국내 오리농가의 76%가 비닐하우스형 가설건축물에서 오리를 사육하고 있다.
평사에서 사육하는 오리는 닭에 비해 분변의 수분함량이 높다. 그만큼 바닥 관리가 어렵다. 주로 왕겨를 깔아주는데 20일령이 지나면 거의 매일 왕겨살포기가 축사를 출입해야 한다.
축사에 전실을 설치해 출입자를 소독한다 하더라도 왕겨살포기까지 전실을 거칠 순 없다. 왕겨를 보관하는 창고시설이 미흡하면 야생조류가 드나들 수도 있다. 오리농가에서 AI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어려운 이유다.
가금수의사인 손영호 반석엘티씨 대표는 “현대화된 축사가 곧 우수한 방역시설이 된다”면서 시설 개선과 그에 따른 사육시스템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시설개선 동력을 만들기 어렵다는데 있다. 영세한 농가는 사육시설 개선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고, 건축법이나 가축사육제한조례 등 각종 규제에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정삼 농식품부 축산정책과장은 “오리를 가설건축물에서 키우는 한 (고병원성 AI)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면서 “시설개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있다. 이제는 구체적 방안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신규 오리농가는 가설건축물이 아닌 일반건축물에서만 오리 사육을 허가하도록 축산법령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오리농가는 투트랙이 불가피하다. 이정삼 과장은 “기존 오리농가의 40%가량은 애초에 일반건축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한 곳에 위치해있다”면서 “이들에게는 가설건축물 하에서 방역을 강화하는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목했다.
일반건축물 전환이 가능한 오리농가에 대해서는 방역상 이유로 축사 현대화 사업을 신청할 경우 선정대상에 우선 고려할 수 있도록 내부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증·개축을 대부분 불허하고 있는 가축사육제한지역에 위치한 오리농가라도 방역향상이 목적이라면 최대한 유연하게 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의하겠다는 점도 덧붙였다.
6차례 겨울 동안 휴지기제 피해 3천억원
한 번 선정된 농가는 계속 휴지기..시설개선 의지 꺾여
겨울철 오리 휴지기제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휴지기제는 상대적으로 고병원성 AI 발생위험이 높은 오리농가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오리를 사육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2017-2018년 겨울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도입된 후 매년 200여 농가를 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순금 다솔 대표는 “(휴지기제 대상 농가는) 사실상 6개월밖에 사육할 수 없다. 수급에도 문제가 생기고, 다른 축산물에게 시장을 뺏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 대표에 따르면 11개 오리계열사가 휴지기제로 인해 사육하지 못한 오리는 6년간 3,800만수가 넘는다. 그로 인한 단순 매출감소만 3천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한 번 휴지기 대상에 포함된 농장은 지속적으로 선정된다는 점도 한계다. 철새도래지 근처에 있거나, 고병원성 AI 발생 이력이 있는 지역이라는 점은 어차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패널로 참여한 박하담 금호농장 대표는 “계속 휴지기 대상에 선정되면 시설 투자 의지를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농장도 이번 겨울 휴지기 대상에 포함됐다.
육계 비해 손익전환 3배 느려
업계 ‘시설개선 정부지원 절실’
이날 오리업계는 사육시설 개선을 이끌어내려면 정부의 전향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리농가가 투자여력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세한데다, 육계에 비해서도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리협회에 따르면, 1천평 규모의 무창축사 신축에 10억원이 든다고 가정할 경우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손익분기 시점은 육계에서 8.9년이면 도래하는 반면, 오리는 21.4년이나 걸리는 것으로 추산됐다.
평당 70여마리를 기를 수 있는 육계와 달리 오리는 평당 20여마리에 그치는데다, 사육일수가 더 길고 왕겨살포도 더 자주 해줘야 하는 등 생산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설투자금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손익분기시점을 앞당겨줘야, 농가도 투자 의지를 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순금 대표는 현재의 축사 현대화 사업으로는 참여 유도가 어렵다는 점을 지목하면서 “해마다 쓰이는 살처분 보상금, 휴지기제 운영 예산을 활용해 오리농가가 시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재정당국의 공감이다. 농식품부가 지원해주고 싶어도 기재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예산을 만들 수 없다. 융자지원이 아닌 직접적인 보조금은 더욱 그렇다.
이정삼 과장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관련한 방역시설을 보조한 선례도 있다. 오리농가에도 방역 목적에 한해 보조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서 “오리의 표준사육시설 설계도 생산성보다 차단방역에 초점을 맞춰야 재원 확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