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미국 고병원성 AI로 큰 피해..선진국도 AI 백신 본격 검토
중국·동남아 뿐만 아니라 멕시코·에콰도르 등 남미서도 활용..오리 백신·DIVA 과제도
전세계적으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가 늘면서 백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6일 대전 ICC호텔에서 열린 한국가금수의사회 세미나에서는 국외 고병원성 AI 현황과 전세계 각국의 백신 사용 여부를 소개했다.
이미 아시아 각국과 멕시코 등 중남미 일부 국가가 AI 백신을 쓰고 있다. 유럽·미국도 고병원성 AI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백신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AI 백신 도입 검토하는 유럽과 미국
이날 연자로 나선 MSD동물약품 정승환 이사는 해외 AI발생상황과 관리정책을 소개했다. 선진국에서도 AI 피해가 커지면서 백신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정승환 이사는 관련 해외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H5N1 고병원성 AI가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1년 이후 2.5억마리의 가금이 살처분됐고, 철새뿐만 아니라 텃새에도 상재화됐다”면서 “(살처분 위주의) 과거 방법론으로는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백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목했다.
가장 큰 변화는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2022년 이후 여름에도 고병원성 AI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백신도입 검토가 본격화됐다.
정승환 이사는 “네덜란드에서 산란계, 프랑스에서 오리, 이탈리아에서 칠면조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EU 일부 국가는 고병원성 AI백신 도입을 위한 관납사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초 프랑스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정청(ANSES)는 고병원성 AI 백신도입 전략을 제안했다. 이르면 올 가을을 도입 시점으로 제시했다. 정 이사도 프랑스가 선진국 중에서 AI 백신을 도입한 최초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지난 겨울 고병원성 AI로 큰 피해를 입었다. 47개주의 가금농장으로 확산되며 5,800만수 이상의 가금이 살처분됐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농무부(USDA)도 5월부터 고병원성 AI 백신에 대한 임상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실제 상용화까지는 적어도 1.5~2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닭이 아닌 오리·칠면조 등에도 방어능이 있으면서, 백신주와 야외주를 구분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과제다.
중남미서도 멕시코, 에콰도르 등 AI 백신 사용
중국·인도네시아·라오스·캄보디아·베트남·파키스탄·방글라데시
인근 국가 불법 사용도
중남미에서는 멕시코, 에콰도르 등 일부 국가에서 AI백신을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승환 이사는 “(AI 백신 검토에) EU가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남미의 여러 나라도 검토하고 있다”면서 브라질에 특히 주목했다.
브라질은 전세계 가금육의 1/3을 생산하는 가금 대국이다. 철새 이동경로를 타고 북미대륙에서 남미 서부까지 확산된 고병원성 AI가 브라질에 근접하고 있다. 브라질에 고병원성 AI 피해가 확산되면 그로 인한 여파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아시아에서는 이미 중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여러 나라가 AI 백신을 사용하고 있다.
인도나 태국, 필리핀 등 주변 국가에서도 실질적으로는 AI 백신이 쓰이고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허가하지 않았지만 일부 농장이 주변국에서 백신제품을 들여와 접종한다는 것이다.
정승환 이사는 백신접종국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백신을 쓰면서 야외주 감염이나 백신 효과를 모니터링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 백신만 쓸 뿐 나머지 문제는 사실상 무시해버리는 나라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추후 백신을 도입하게 된다면 전자의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AI 백신은 모니터링과 예찰, 차단방역과 함께 활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에 등록된 농장으로서 공인된 수의사(MVRA, Médicos Veterinarios Responsable Autorizado)의 관리 하에서만 AI 백신을 사용할 수 있는 멕시코 정책에도 주목했다.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고병원성 AI 백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3천만수가 살처분됐던 2020-2021년 겨울에는 AI 백신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여럿 제기됐지만, 이후 살처분 피해규모가 600~700만수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관심도 줄었다. 고병원성 AI 백신뱅크 규모도 축소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매년 AI가 발생하고 있고, 향후 피해규모가 다시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이날 세션의 좌장을 맡은 송창선 건국대 교수는 “우리나라도 백신을 활용한다면 예찰을 병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DIVA(야외주·백신주 구분)가 가능한 백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역본부 조류인플루엔자연구진단과 이윤정 과장은 “유럽·미국 등 선진국이 고병원성 AI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그간 터부시했던 AI 백신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다”며 “AI 백신은 도입 여부뿐만 아니라 도입 시의 예찰 강화, 공중보건학적 리스크 관리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윤정 과장은 “유럽·미국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면서, 가금수의사회와도 정보를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