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들고 수의사 협박에 물백신 논란까지..럼피스킨 긴급백신 현장에 무슨 일?
보정 안 되어 접종 힘들다고 하자 대형망치로 죽이겠다 협박
럼피스킨병 전국 긴급백신 접종률이 6일 오전 기준 90%를 돌파한 가운데, 백신접종 현장에서 수의사가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백신을 잘못 배부해 희석액만 접종하는 일도 있었다.
수의사에 망치 들고 욕하며 “법만 없었으면 너 같은 건 죽일 수 있다” 협박
11월 2일(목) 럼피스킨병 긴급백신 현장에서 수의사가 농장주에 의해 망치로 살해위협을 받은 일이 생겼다. 현재 전국 긴급백신은 50두 이상 농가는 자가접종, 50두 미만 소규모 농가는 수의사가 접종 중이다.
해당 농가는 50두 미만 농가로 지역 공수의로 활동 중인 A원장이 접종에 나섰다. 럼피스킨병 백신은 근육접종하는 구제역 백신과 달리 피하접종해야 한다. 3종류의 럼피스킨 백신이 있는데 모두 피하접종 백신이다.
소의 피하접종은 근육 접종보다 훨씬 어려워 보정이 필수다. 정부도 이미 각 농가에 보정이 되어 있지 않으면 접종이 어렵고 “소를 잘 보정한 다음 한 손으로 목 쪽에 피부를 잡아당겨 피부와 근육 사이에 바늘을 45도 각도로 주사해야 한다”고 공지했으며, 해당 지자체도 보정이 되어 있지 않은 소는 접종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안내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해당 농가의 소는 모두 보정되어 있지 않았고, 이에 A원장 및 동행한 공무원은 B씨에게 접종이 어렵다고 알리고, 후속 농장 접종을 위해 농장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B씨의 협박이 시작됐다.
본지가 입수한 진술서에 따르면, B씨는 처음에 욕설과 함께 불만을 표시했으나 이후 길이 30cm 이상의 대형망치를 집어 들고 협박을 이어갔다(위 사진). “법만 없었으면 너 같은 건 죽일 수 있다”며 협박하던 B씨는 결국 망치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A원장은 B씨를 끌어안아 바닥으로 눕혔다. 그 뒤, 함께 있던 동료 수의사가 망치를 뺏고 동행한 공무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B씨는 경찰에 인계됐고, 망치도 경찰에 제출됐다.
A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의사로 일하면서) 소한테 맞고 밟힌 적도 많지만, 이번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적은 없다”며 “동물방역 현장에서 수많은 수의사들이 크고 작은 마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같은 지자체에서는 사건 하루 전인 11월 1일, 다른 공수의사가 농가에서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으며, 럼피스킨 백신접종을 하던 수의사들이 소에 맞거나 몸을 다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목숨 위협받고 다쳤지만, 긴급 백신접종 끝까지 참여”
공수의 등 현장수의사 보호장치 필요
수의사들은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 방역을 위해 힘쓰고 있다.
바로 며칠 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A원장 역시 취재를 위해 본지와 통화하는 순간까지 럼피스킨병 긴급백신 접종을 하고 있었다. 농가 접종 후 다른 농가로 이동 중에 기자와 통화한 A원장은 아무리 그런 일을 겪었어도 “긴급상황이고 (정부가 목표로 잡은) 10일까지 접종을 해내야 하므로 계속 백신 접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A원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수의들과 국가 긴급방역에 동원되는 수의사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흔히 공수의를 준공무원이라고 부르지만, 일부 보험에만 가입되어 있을 뿐 다쳐도 공무상 재해 적용을 받지 못하고 죽어도 별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A원장은 “공적인 일을 하는 만큼 공수의 등 현장에서 일하는 수의사들과 방역 요원에 대한 안전장치와 사고 후 대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창에서는 물백신 논란…지자체 실수로 희석액만 배포
생독백신이라 미리 희석하면 안 되지만…
백신접종과 관련된 혼란도 있다.
피하주사인데 근육으로 접종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진 가운데, 이번에는 물백신 논란까지 발생했다. 1일 거창군이 농가에 백신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희석액(diluent)만 배포하는 실수를 한 것이다.
해당 백신은 희석액과 가루로 된 항원이 별도 포장되어 있어서 2가지를 섞은 뒤 접종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을 몰랐던 지자체의 실수로 희석액만 27개 농가에 전달되고 말았다(총 1,875두분). 그중 900마리가 (희석액만) 접종받았는데, 지역 수의사가 상황을 파악하고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에 연락함으로써 중앙정부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문제가 된 농가들은 수의사 3명이 투입되어 다시 백신을 접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 비축분 외에 새롭게 백신을 수입하고 바로 다음 날 농가에 접종해야 하는 ‘긴급’ 상황이다 보니 지자체 담당자도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구제역 백신 배분에 익숙한 지자체 담당자가 생독백신인 럼피스킨 백신과 구제역 백신의 차이를 잘 몰랐을 것이라는 얘기다.
돼지와 달리 소의 경우 생독백신이 드물다. 또한, 이번 백신접종이 워낙 긴급으로 이뤄지다 보니 현장에서 여러 가지 혼란이 생기고 있다. 심지어, 항원이 건조되어 있는 생백신은 수분을 만나면 서서히 역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희석을 한 뒤 2시간 이내 접종을 해야 하는데,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일부 현장에서 백신접종 속도를 높이고 백신 용량이 크다는 농가의 불만을 낮추기 위해 사전에 백신을 희석해버리는 일까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역 백신을 미리 주사기에 뽑아 나눠주는 암묵적인 문화가 럼피스킨병 백신의 잘못된 접종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약사법에 따라, 동물용의약품의 개봉판매는 금지되어 있다. 다만, 동물용의약품등 취급규칙의 예외조항에 따라 동물병원 임상수의사가 구제역 백신을 직접 조제하여 축산농가로 하여금 자가 접종하도록 하는 경우는 개봉해도 괜찮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는 임상수의사가 아닌 담당자가 백신을 주사기에 뽑아 농가에 배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번 사태가 일단락되면 생독백신에 대한 개념 정립과 함께 정확한 백신접종 방법에 대한 교육, 그리고 수의사에 의한 철저한 약품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임상수의사는 물백신 사태에 대해 “(비수의사 공무원에게) 업무가 전가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며 “(전문가가 아닌) 그분들도 업무에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다. 전문가인 수의사들이 약을 관리하고 배분하고 접종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