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현장은 아직 의문부호
베트남 르반판 교수 강연, 농장 질병상황 따라 효능·부작용 달라 ‘위생 좋은 농장은 백신 안 쓴다’... 국내 사육돼지 분리주, 멧돼지에선 확인 안 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백신이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됐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돈에서는 사용하지 않기를 권장할 만큼 유산 부작용이 뚜렷한데다 농장 현장에서의 효과나 부작용에 아직 물음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초 3개사로 알려졌던 베트남의 ASF 백신 제조사 중 한 곳은 이미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국립농업대학 르반판 교수(prof. Le Van Phan)는 15일 청주 그랜드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한국돼지수의사회 2023년 연례세미나에서 초청 강연을 펼쳤다.
베트남 ASF 병원성 다양 ‘현장은 굉장히 복잡해졌다’
르반판 교수팀은 2019년 2월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ASF를 분리한 연구진이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르반판 교수팀의 첫 검출 이후 7개월여만에 베트남 전역으로 ASF가 확산됐다.
르반판 교수는 “베트남은 ASF를 관리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고 지목했다. 베트남 돼지 사육의 절반가량이 250만호에 달하는 소규모 가족농장인데다, 모든 지방에서 전통시장을 통해 돼지고기가 유통된다는 것이다.
르반판 교수는 “발생 초기에는 고병원성 ASF 감염으로 뚜렷한 증상을 보이며 찾아내기 쉬웠지만 이제는 다르다”면서 “저병원성을 포함한 여러 ASF 바이러스가 순환하면서 현장은 굉장히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베트남 ASF 백신 사용 승인했지만..
모돈 유산 부작용 등 아직 의문부호
위생 수준 높은 농장은 백신 안 써
이날 관심을 모은 것은 베트남의 ASF 백신 현황이다. 베트남은 세계 최초로 ASF 백신을 상용화했다. 지난해 6월 백신을 시범 도입한 베트남은 올해 전국적으로 사용을 승인했다.
미국 USDA로부터 도입한 백신주를 기반으로 백신 개발에 나선 곳은 AVAC·NAVETCO·DABACO 등 3개사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DABACO는 이미 중도에 하차했다.
이날 르반판 교수는 4주령 자돈을 대상으로 실시한 ASF 백신의 안전성, 유효성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백신 접종 4주후 야외주 바이러스를 공격접종한 결과 미접종 대조군은 10일 이내에 폐사한 반면, 백신접종군은 모두 살아남았다.
르반판 교수는 “실험실에서는 백신의 효과가 좋지만, 현장에서는 다르다”면서 여러 한계점을 지목했다. 현장에서는 여러 ASF 바이러스가 순환하며 재조합도 일어나고 있는데, 백신이 이들 바이러스 각각에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돈에서는 아예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모돈에 백신을 접종하면 유산 부작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제조사에서도 모돈에서의 사용은 권장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일선 농장에는 ASF뿐만 아니라 돼지열병(CSF),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 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고 있는데 농장별 질병상황에 따라 백신 효능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심할 수 있다는 문제도 지목했다.
ASF 바이러스가 실험실적으로는 안정적인 축에 속하지만, 현장에서는 돌연변이와 재조합이 활발하다면서 생독백신주의 변이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날 르반판 교수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 방역당국은 백신접종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농장의 자율에 맡겨져 있는데, 르반판 교수가 전한 접종비용은 두당 2천원선이다. 베트남의 돈가를 감안하면 비싼 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르반판 교수는 “위생 수준이 높은 기업형 농장은 백신을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번식농장이라면 애초에 백신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조기 검출과 양성축 살처분, 차단방역이 최우선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사육돼지용 백신보단 멧돼지용 미끼백신
사육돼지 발생농장 분리주들 조금씩 달라..수평전파 차단 방증
멧돼지에서는 같은 바이러스 검출 안돼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국내에서도 여러 기업이 사육돼지 및 멧돼지 대상 ASF 백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연례세미나에서는 검역본부의 ASF 백신 개발 연구현황과 향후 개발된 백신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평가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결과도 함께 공유했다.
돼지와사람 이득흔 편집국장은 “중국·베트남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당장 사육돼지용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한국에서 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면서 국내 상황에서는 멧돼지용 미끼 백신의 필요성에 무게를 뒀다.
멧돼지를 매개로 ASF 오염지역이 점차 확산되고, 그로 인해 산발적으로 돼지농장에서 ASF가 발생하고 있는만큼 멧돼지 ASF 확산을 막기 위한 미끼 백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국내 ASF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 결과는 조금 달랐다.
검역본부 최준구 연구관은 2022년 하반기 이후 국내 사육돼지에서 발생한 ASF 바이러스들이 각각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지목했다.
동일한 농장주가 운영하는 등 역학적으로 분명히 엮여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별개의 바이러스로 확인된다는 것이다.
특정 바이러스가 여러 농장으로 수평전파됐다면 동일한 바이러스가 여러 발생농장에서 검출되는 양상을 보였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은 결국 농장 단위의 차단방역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저병원성 ASF로 인한 만성감염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점도 덧붙였다. 2022년 하반기 이후로 국내 사육돼지에서 확인된 ASF 바이러스에서 일부 유전적 변화가 관찰됐지만, 병원성 측면의 차이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사육돼지 ASF 바이러스의 유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검역본부에서 분리한 사육돼지 ASF 바이러스가 멧돼지에서도 발견됐는지 한국야생동물질병관리원을 통해 확인했지만, 동일한 바이러스가 멧돼지에서는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멧돼지로 인해 농장 주변에 오염된 ASF 바이러스가 차단방역이 미흡한 돈사 내부로 유입된다’는 추정을 최근의 사육돼지 ASF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결과가 뒷받침하지는 않는 셈이다.
최종영 돼지수의사회장은 “검역본부와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보다 긴밀하게 협업해 현황을 분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