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방역수의사 미달 더 심해졌다..수의장교 피하려 대량 취소 사태까지
올해 임용예정 공중방역수의사 103명, 전국적 미충원 불가피
공중방역수의사 미달 현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올해 임용 예정인 공중방역수의사는 103명에 그쳤다. 마찬가지로 미달이었던 전년보다도 더 줄었다.
현역 복무환경이 개선되면서 현역보다 2배 더 복무해야 하는 공중방역수의사의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새로운 문제도 발생했다. 수의장교로 뽑히지 않기 위해 국방부 역종분류 전에 일부러 수의사관후보생 신분을 포기했다가 추가모집을 노리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했다.
임용인원이 미달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추가모집으로 가도 무조건 붙는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올해 추가모집에 지원한 93명 전원이 합격했다.
149명→127명→103명
가축방역관도 부족한데..공중방역수의사 미충원 불가피
일선 시군 우선배치
병무청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임용 예정인 제18기 공중방역수의사는 103명이다. 매년 통상 150명가량을 선발해왔지만 지난해 127명(전년대비 -22)으로 크게 줄더니, 올해는 103명(-24)으로 더 감소했다.
다음달 복무를 마칠 15기 공중방역수의사는 147명이다. 단순계산으로도 신규인력으로 대체될 수 없는 자리가 44곳이나 된다.
가뜩이나 수의직공무원 결원이 검역본부·시도·시군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데 이제는 공중방역수의사마저 부족해지는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공중방역수의사 운영지침의 우선순위에 따라 신규 인력을 차등배치할 계획이다.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가 심각한 현장 시군에 중심을 둔다.
미달 규모가 크다 보니 시군도 모두 충원될 수는 없다. 1순위인 도농복합 시군의 결원은 모두 충원하되, 광역시 자치구나 3순위 시군은 충원하지 않거나 정원 자체를 축소 조정할 예정이다.
상대적으로 축산 규모가 작고 업무량이 적어 공중방역수의사들이 선호하는 배치지가 우선적으로 사라지는 형태다.
시도 동물위생시험소에도 30명 가까이 결원이 발생할 전망이다. 전년대비 80% 이상은 충원되도록 지역별로 결원을 분배할 계획이다.
검역본부는 1순위 배치지인 지역 방역센터의 결원은 전부 충원하되, 지역본부나 김천 본원에서 결원이 발생할 전망이다.
현역병 처우 개선되면서 공방수 매력 떨어졌다
대학원 진학 증가도 요인
공중방역수의사 미달이 점점 심해지는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현역병 처우가 개선되면서 현역복무기간 18개월과 공중방역수의사 복무기간 37개월의 격차가 더 두드러졌다.
올해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남성 수의사 A씨는 “복무기간 차이가 너무 크게 다가온다”며 “공중방역수의사, 수의장교 복무 자체에 회의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핸드폰 사용까지 허용하는 복무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상대적인 매력이 감소했다. 현역병의 월급도 인상됐고 장병내일준비적금처럼 국가가 원금 100%를 매칭으로 지원하는 혜택도 생기면서 실질소득차가 줄었기 때문이다.
공중방역수의사 소득이 더 높긴 하지만, 주로 타지에서 근무하며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점을 감안하면 18개월 복무 후 수중에 남는 돈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수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B학생은 “임상대학원을 생각하는 남학생들 중에서는 아예 임상과목 진입 전에 현역병으로 군대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공중방역수의사 제도 신설 초기에 비해 대학원 진학이 늘어났다는 점도 요인이다. 이 경우에는 공중방역수의사 대신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활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수의장교 선발 피하려 일부러 후보생 포기?
수의사관후보생 168명 중 중도포기 127명
추가모집 지원자 93명은 전원 합격
공중방역수의사는 미달이고, 현역으로 가도 나쁘지 않다는 점이 함께 작용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올해 졸업예정이었던 수의사관후보생들이 대거 취소 행렬을 벌인 것이다. 수의장교 선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올해 임관·임용될 수의사관후보생은 본과3학년에서 선발된 첫 세대다. 병무청에 따르면, 2022년 당시 본과3학년 재학 중 선발된 수의사관후보생은 168명이다.
미리 선발되어 있던 수의사관후보생은 임관·임용연도에 국방부 역종분류를 거쳐 30명 내외의 당해 수의장교 임관대상자를 먼저 선발하고, 나머지 후보생들이 공중방역수의사가 된다. 일부 부족한 공중방역수의사 인원은 1월말부터 2월초 사이에 추가로 뽑는다.
문제는 이를 수의장교 선발을 회피하는데 활용했다는 점이다. 병무청에 따르면 이번 수의사관후보생 168명 중 역종분류 전에 취소한 인원은 127명에 달했다. 후보생의 75%가 후보자격을 중도포기한 셈이다.
결국 역종분류 시점에 남아있던 후보생은 41명에 불과했다. 4명 중 3명이 수의장교가 됐다. 후보생 신분을 유지했다가 공중방역수의사가 된 인원은 단 10명에 그친다.
중도포기자의 일부는 대학원 진학이나 휴학생이기도 했겠지만, 대부분 공중방역수의사 임용에 바로 재도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추가 선발을 노리고 병무청에 직접 지원한 사람은 93명에 달했다. 이들은 전원 공중방역수의사로 선발됐다. 다 뽑아도 미달인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93명 모두 ‘전략적 회피자’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략적 회피를 선택했던 후보생이 있다면 성공한 셈이다.
대한수의과대학학생협회가 병무청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공중방역수의사 추가합격자는 연평균 23명이었다. 일시적으로 정원이 190, 200명으로 늘어났던 2016년과 2018년을 제외하면 대체로 10~30명선을 오갔다.
공중방역수의사 전체로는 미달되는 와중에 후보생이 127명이나 중도이탈하고 93명이 추가합격된 올해가 특이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기피전략은 예전에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다. 하지만 추가모집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없었고, 자칫 현역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중방역수의사는 어차피 미달이니 추가모집에 지원하면 무조건 뽑힌다, 설령 안 뽑히더라도 현역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A씨는 “본과 4학년 여름쯤부터 수의사관후보생 이탈이 너무 많아 (후보생으로) 남아 있으면 수의장교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돌았다. 수의사관후보생을 취소하지 말아달라는 공지가 내려왔을 정도”라며 “현역 입대나 대학원 등으로 인한 순수이탈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의장교 기피..공방수보다 처우 열악해서?
‘수의장교 충원 차질 없도록 대응하겠다’
이 같은 편법까지 횡행할 정도로 수의장교를 기피하는 원인으로는 처우 문제가 지목된다.
공중방역수의사의 경우 방역활동장려금이 90만원까지 인상되고 여러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수의장교 대비 실수령액이 월 1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장교이다 보니 훈련기간도 더 길고, 민간인 신분인 공중방역수의사에 비해 활동에 제약이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후보생들이 역종분류를 우회하는 현상이 앞으로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는 그나마 수의장교 선발인원보다는 많이 남아 있었지만,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 수의장교 선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향후 취소인원 과다 발생으로 수의장교 충원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방부와 대응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18기 공중방역수의사는 오는 3월 14일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한다. 훈련을 마치고 4월 8일부터 각 배치지에 임용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