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엔 1,770억원, ASF 백신 연구엔 28억원..’백신은 안전성 최우선’ 한 목소리

개발속도 좌우할 BSL2 요건 완화 두고 업계·정부 시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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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백신 국회토론회가 2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ASF 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홍문표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수의계와 업계, 학계, 방역당국, 생산자들이 모였다.

이날 전문가들은 ASF 백신의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울타리 설치에 들인 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ASF 백신 연구지원 예산은 문제로 지적됐다.

백신 개발속도를 좌우할 BSL2로의 실험조건 완화도 거듭 거론됐지만, 정부와 업계의 입장차가 엿보였다.

사육돼지에서는 산발적 발생에 그치고 있는만큼 방역당국은 사육돼지 백신보다 멧돼지용 미끼백신에 무게를 뒀다.

울타리 치는데 1,770억원 쓰고..ASF 백신 연구엔 28억원

국내에서는 다양한 기업과 정부기관이 협력해 ASF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코미팜·중앙백신연구소·케어사이드가, 정부에서는 농림축산검역본부와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참여해 각종 개발시험을 벌이고 있다.

국내 발생 야외주나 미국 USDA, 스페인 연구진이 개발한 바이러스 등 후보주도 다양하다. 모두 약독화 생독백신 형태로 추진되고 있다.

백신을 개발하는 동안에도 ASF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첫 발생 이후 5월 20일까지 야생멧돼지에서만 4,052건이 발생했다. 오염 지역도 경북 동북부와 부산까지 남하했다.

같은 기간 사육돼지에서는 40건이 발생했다. 토론회 당일 철원 소재 돼지농장에서 의심신고가 접수됐는데, 정밀검사에서 양성으로 확인돼 누적 발생건수는 41건으로 늘었다.

이날 발제에 나선 조호성 전북대 교수와 오연수 강원대 교수는 ASF 백신 연구에 대한 예산 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가과학기술정보서비스(NTIS)에 등록된 ASF 백신 관련 연구는 8건 28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멧돼지 ASF 확산을 막겠다며 전국 22개 시군에 걸쳐 2,693km의 울타리를 치는데 1,770억원이나 투입됐다.

오연수 교수는 “울타리의 효과는 분명 있었지만, ASF 종식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필요한 기반은 R&D에 있다”고 말했다.

(@ 강원대 오연수 교수)

업계선 백신개발 동분서주

BSL2로 취급요건 완화 거듭 건의

문성철 코미팜 대표는 이날 발제자로 나서 자사에서 개발 중인 ASF 백신 관련 실험 경과를 소개했다. 코미팜은 검역본부, 야생동물질병연구원,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와 협력해 미국 USDA로부터 받은 ΔI177L/ΔLVR주를 9차례에 걸쳐 실험했다.

그 결과 해당 백신후보주는 국내 멧돼지 및 사육돼지에서 분리한 ASF 야외주의 공격접종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임신말기 모돈에 대한 실험에도 특별한 유사산 부작용 없이 방어를 기대할 수 있는 항체가를 보였고, 초유에서 모체이행항체도 확인됐다.

문성철 대표는 “여러 차례의 실험 동안 동거축으로의 전염이나 병원성 복귀는 관찰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주용 중앙백신연구소 사장은 토론 패널로 참여해 백신 개발 경과를 전했다. 중앙백신연구소는 국내 멧돼지와 사육돼지에서 분리한 후보주를 각각 시험하고 있다. 국내와 베트남에서 각각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했다.

이주용 사장은 “이제 실험규모를 더 키우려 한다”면서 “멧돼지용 친환경 미끼백신 개발을 우선적으로 진행할 계획으로 2025년 1사분기까지 백신주 확립에 필요한 실험 대부분을 마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케어사이드 선우선영 박사도 백신 개발시험이 순조롭다며 추후 진전 상황을 공유하겠다고 전했다.

이날 발제자들과 업계 대표들은 안전성이 확인된 백신후보주임을 전제로 실험조건을 BSL2로 완화하는 방안을 거듭 거론했다.

현재 국내에서 ASF 백신 관련 실험은 BSL3에서만 가능하다 보니, 인프라 부족으로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역본부 시설을 활용할 수 없다면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가 유일한 옵션인데, 그나마 모돈 실험은 불가능한 환경이다.

오연수 교수는 안전성이 확보된 균주임을 전제로 “백신 개발의 목표에 미끼백신이 있다는 점도 고려하면, BSL2에서의 실험·생산을 허용하는 제도적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BSL3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만큼 해외에서의 실험 결과도 추후 당국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세계동물보건기구 ASF 백신 가이드라인 곧 나온다

하지만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안전성이 확보된 백신주’로 볼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안전성’을 전제했을 뿐 그 구체적인 요건까지는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강해은 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장은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에서 ASF 백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번 총회에서 승인을 앞두고 있다”면서 “역계대, 임상관찰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 백신 대비 굉장히 강화된 조건이 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기준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그만큼 ASF 백신의 안전성은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BSL2로의 조정에도 보수적인 시각을 보였다. 공식적·비공식적으로 ASF 백신을 쓰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에서는 백신주와 야외주가 만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BSL2로 조정했다가 외부로 후보주가 유출될 경우 국내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검역본부에서 준비 중인 ASF 차폐실험실이 완공되어 허가절차를 앞두고 있고, 개관할 경우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강해은 과장은 “생독백신이 지닌 한계는 명확하다. ASF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생독백신을 쓰기엔 부담이 있다. 그만큼 개발 과정이 지난할 것”이라며 “기준·절차가 과도한 것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과학적 타당성과 합리성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국내외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주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장은 “ASF 백신의 기준과 검증절차 등에서는 민관학이 함께 협의해나가겠다”고 전했다.

 

사육돼지보단 멧돼지 미끼백신에 무게

안전한 백신 외에도 조건 더 있다

국내 멧돼지에서 양성사례가 지속적으로 검출되는 것과 달리 돼지농장에서는 수개월에 한 번씩 산발적으로 발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7대방역시설을 의무화하는 등 차단방역 인프라를 개선해, 멧돼지에서의 오염이 농장 내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조호성 교수는 “ASF 위기는 곧 기회였다. 구제역으로도 못 했던 양돈농장 방역시스템 강화의 계기가 됐다. 양돈장의 인식이 변화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질병의 유입을 막는 차단방역은 ‘100점을 거둬야만 이기는 게임’이라 실패 사례가 간혹 나오지만, 차단방역 수준의 점수는 분명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정주 과장은 “ASF 바이러스는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처럼 전파력이 강하지 않다. 현재 상황이 유지되는 한 (ASF 백신의) 농장 도입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멧돼지에서 발생이 지속될 경우 안전성이 담보된 미끼백신이라는 전제 하에 도입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백신을 쓴다면 미끼백신이라는 얘기다.

미끼백신을 사용하려면 백신 개발 외에도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정원화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질병대응팀장은 “백신 자체의 안전성은 물론 환경·생태적 측면을 미리 살펴야 한다”면서 미끼백신의 환경오염이나 독성 문제, 멧돼지가 아닌 다른 동물에의 영향 등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지목했다.

선우선영 박사는 미끼백신을 쓰면 해당 백신주 바이러스가 사육돼지로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만큼 사육돼지가 미끼백신주에 감염된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미끼백신을 어디에 얼마나 뿌리고 멧돼지를 어떻게 모니터링할지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선우선영 박사는 “지금처럼 산발적으로 멧돼지에서 양성이 나오는 것과 미끼백신을 뿌려 동시에 감염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만큼 백신의 안전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울타리엔 1,770억원, ASF 백신 연구엔 28억원..’백신은 안전성 최우선’ 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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