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에서 사람 팬데믹 올 수 있다’ 과학기술한림원, 원헬스 대비책 조명

포유류로 접근하는 H5N1형 고병원성 AI에 주목..동물단계 감시, 백신 제조 역량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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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1일 한림원탁토론회를 열고 조류인플루엔자(AI)에서 유래한 팬데믹 위협과 대비 전략을 조명했다.

동물 단계에서의 고병원성 AI 감염 확산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사람에서의 팬데믹 인플루엔자로 변이될 가능성에 대비한 백신개발 역량을 사전에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인플루엔자는 바이러스 변이가 심하고 다양한 동물종에 감염된다. 다음번 팬데믹을 일으킬 ‘감염병 X’의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20세기초 스페인독감, 21세기초 H1N1형 신종플루 등 이미 팬데믹을 일으킨 사례도 여럿이다.

최근에는 H5N1형 고병원성 AI가 주목받고 있다. 송대섭 서울대 교수는 “클레이드 2.3.4.4b H5N1형 AI가 세계적인 우세종으로 자리잡으면서 조류는 물론 포유류에서까지 폭발적인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목했다. 기존에도 AI가 포유류로 전파된 사례가 드물지는 않았지만, 최근처럼 집단폐사를 일으키는 양상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올해 미국 젖소에서 H5N1형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3월 시작된 감염은 이달 초까지 13개주 188개 낙농장으로 확산됐다. 감염된 젖소에서 생산된 원유로 바이러스가 배출되면서 고양이로의 종간전파(spill-over)까지 일어났고, 낙농장 근로자 4명의 인체감염 사례까지 보고됐다.

김우주 고려대 교수는 “미국 질병청(CDC)은 이번 젖소 고병원성 AI의 공중보건학적 위험도는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람 간 감염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도 “미래의 팬데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중간(moderate) 정도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포유류 친화적으로 변이를 거듭하면 사람에게 더 잘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진화할 수 있다. 특히 사람의 호흡기 수용체에 친화적으로 변이되면 전파력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우려된다.

AI는 철새를 매개로 전세계에 전파된다는 점도 위험요인이다. 송창선 건국대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는 2.3.4.4b H5N1형 AI와 미국 젖소에서 발생한 바이러스는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다”면서도 “미국의 철새에 상재화되면 철새를 통해 국내에 유입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윤철희(서울대), 김우주(고려대), 송대섭(서울대) 교수

국내에서는 매년 겨울마다 고병원성 AI가 유입돼 가금농장에서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포유류에 더 친화적인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들어와 가금이 아닌 포유류 동물이나 사람까지 감염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김용상 농식품부 조류인플루엔자방역과장은 “동물 단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AI에 대한 포유류 예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 수준이었던 기존 조사는 상시예찰 수준으로 강화하고, 예찰 동물종도 확대한다는 것이다.

방역당국은 기존에 개, 돼지에서만 실시하던 H5·H7·H9형 AI 예찰을 올해부터 소·염소·고양이·원유까지로 확대했다.

7월까지 이들 동물 1천여마리에 대해 AI 항원·항체를 검사한 결과 돼지(항원양성 1두, 항체양성 6두)를 제외하면 전건 음성을 나타냈다. 경기·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6개도의 젖소 원유에 대한 검사 결과도 751두 전건 음성이었다.

겨울철 AI 특별방역기간에 전국 시험소에서 원유의 AI 검출 여부를 모니터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용상 과장은 “가령 미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젖소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최근 출범해 연말까지 운영되는 ‘동물단계 인수공통질병 대응 실무협의체(TF)’에서 관련 긴급행동지침(SOP)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우주 교수는 “코로나에서 증명됐듯 한국의 사후대응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사전대비는 부족하다”면서 실무자들이 사전대비 중요성을 인지해도 고위층까지 공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왜 아직 (팬데믹이) 오지도 않았는데 겁을 주냐’는 식이다.

김 교수는 “팬데믹은 발생하면 엄청난 사회경제적 피해를 유발한다. (피해를 유발하는 거리두기에 대해) 국민들의 수용성도 이제는 떨어졌다”면서 “과학의 힘에 기반한 진단키트 개발, 백신 및 항바이러스제 비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 인체감염에 쓰이는 타미플루·리렌자 등의 항바이러스제 1,300만여명분을 비축하고 있지만, 내성 바이러스 출현에 대비해 타 항바이러스제 비축이 필요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이른 진단키트와 함께 백신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 팬데믹이 오면)어차피 먼저 개발할 미국·유럽산 백신을 받아 쓰면 되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도 경계했다.

송창선 교수는 “코로나19 백신도 처음 만들었을 때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 공급된 이후에야 한국까지 왔다”면서 “고병원성 AI가 팬데믹을 일으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백신) 수요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에는 언제 (백신이) 올 지 모른다.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상구 질병관리청 신종감염병대응과장도 “백신은 주권”이라며 “평시에 국가필수예방접종에 쓰이는 백신마저 외국의 공급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실정이다. 대유행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개발 역량이 부족했던 mRNA백신과 달리 인플루엔자 백신은 이미 세계시장에 진출할 정도의 제조 역량이 있다는 점도 지목됐다.

원헬스 측면의 대응체계도 강조했다. 여 과장은 “지난해 고양이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을 때 검역본부 등과의 협업 중요성을 더욱 느꼈다”면서 올해 안으로 개정될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대응 계획에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조류인플루엔자에서 사람 팬데믹 올 수 있다’ 과학기술한림원, 원헬스 대비책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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