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의법의학자 “수의사는 동물학대 여부 판단하지 않아”
아담 스턴 교수, 대한수의학회에서 기조강연...수의사·조사관·검사·변호사 협업 강조
최근 동물학대 범죄가 증가하고 그 형태가 다양해지며 수의법의학(Veterinary Forensic Medicine)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수의법의학 검사를 주관하고 있는 농림축산검역본부도 법의진단 전담 부설 동물병원을 개설하고, 소속 수의사 공무원들이 수의법의학 관련 국제 자격을 취득하는 등 노력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수의법의학 권위자인 아담 스턴(Adam W. Stern) 교수가 내한했다. 아담 스턴 교수는 “수의법의학은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필요한 종합적인 학문”이라며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8일(금) 엠비씨컨벤션진주에서 열린 2024년 대한수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아담 스턴 플로리다 수의과대학 교수(사진)가 기조강연을 했다.
아담 스턴 플로리다대학교 교수는 미국수의병리전문의(DACVP)이자 세계수의법의학회(IVFSA, International Veterinary Forensic Sciences Association)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동물법과학회(ISAFS, International Society for Animal Forensic Sciences) 이사이자 플로리다수의과대학의 수의법의학 교실(Veterinary Forensic Sciences Laboratory)을 이끌고 있는 전 세계 최고의 수의법의학 전문가다.
아담 스턴 교수의 방한은 검역본부 질병진단과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수의법의학 검사 주관 기관인 검역본부는 수의법의학 검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플로리다수의과대학(UF) 수의법의학 교실과 협약(MOU)을 맺고 국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또한, 매년 2명의 인력을 UF로 파견해 트레이닝을 받도록 하는데, 올해도 2명이 UF에서 교육을 받고 왔다. 검역본부는 내년에도 2명, 내후년에도 2명을 파견할 예정이다.
이날 아담 스턴 교수는 동물학대와 수의법의학의 정의부터, 수의법의학의 필요성, 수의법의학의 종류, 수의법의학 조사 및 진행 과정, 각 전문가의 역할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크게 6가지로 구분되는 동물학대
수의법의학 필요한 이유? 사회적 요구 증가하고, 동물 범죄와 다른 범죄 연관성 크기 때문
아담 스턴 교수에 따르면, 동물학대는 ▲신체적 학대 ▲방치 ▲투견 등 동물싸움 ▲성적 학대 ▲정서적 학대 ▲의례 학대(ritualistic abuse) 크게 6가지로 구분된다.
물리적인 학대(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동물을 너무 많이 양육하는 애니멀 호딩, 동물에게 물, 음식, 거주지를 주지 않거나,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방치(neglect)’에 해당하는 동물학대다.
아담 스턴 교수는 ‘정서적 학대(Emotional abuse)’에 대해 “많은 사람이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최근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며 미국에서 청소년들이 어미 개와 새끼들의 분리·합사를 반복하며 영상을 촬영했던 실제 사건을 소개했다. 당연히 어미는 고통스러워했다. 정서적 학대에 해당한다. 이처럼 영상 플랫폼이 발달할수록 동물의 정서적 학대도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수의법의학은 동물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증거의 관찰과 해석을 통해 모든 과학 분야를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학대 사건뿐만 아니라 야생동물(곰, 사자 등)이 사람을 공격했을 때, 불법 사냥이나 특수동물의 불법 거래가 발생했을 때, 음식에 들어있는 동물 유래 성분을 판단할 때도 활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수의법의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사람들이 동물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전문적인 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 사회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물에 대한 교육 및 인식 수준이 발전하면서, 동물학대 등 동물 관련 사건이 사회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많은 시민이 동물 관련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처벌을 원하는데, 수의법의학은 범죄자가 처벌되도록 관련 근거를 제공하는 동시에, 무고한 사람이 처벌되지 않도록 돕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 관련 범죄는 다른 범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수의법의학으로 동물 관련 범죄의 판단과 처벌을 도우면, 다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이미, 아동학대, 가정폭력 등 ‘인간에 대한 폭력’과 ‘동물학대 범죄’가 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아담 스턴 교수 역시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 증거가 다른 가족구성원(사람)에 대한 학대를 조기에 예방·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동물학대는 종종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수의사, 검사·변호사, 조사관 협력 중요…하나라도 제대로 안 되면 무너져”
“수의사는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의견을 제시할 뿐, 동물학대 발생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아”
아담 스턴 교수는 이날 강의에서 부검, 영상검사, 법의독물학, 법곤충학, 사진측량, 법의생물학, 법의식물학 등 수의법의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수의법의학은 여러 전문가의 협업이 필요한 종합적인(multidisciplinary) 학문”이라며 수의사, 조사관(Investigators), 검사·변호사(Attorneys) 3개 분야 전문가의 협업을 강조했다. 다리가 3개인 의자에 비유하며, 3개 그룹 중 어느 하나라도 역할을 못 하면 수의법의학이라는 의자가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조사관’은 주로 동물보호단체나 경찰이 담당한다.
동물학대 관련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서 조사를 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증거 수집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법원에서는 ‘증명할 수 있는 것’만 인정되기 때문이다.
‘검사’는 용의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변호사’는 죄가 없는 사람이 처벌되지 않도록 한다. 수의사는 상황에 따라 검사와 협업할 수도 있고, 변호사와 협력할 수도 있다.
수의사는 동물의 검사나 부검을 통해 학대에 대한 징후를 판단한다. 이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문서화한다. 아담 스턴 교수는 “수의사는 진단을 하고 동물의 고통과 통증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로서 특별하다”면서도 “수의사는 동물학대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수의사는 누가 물어봐도 항상 일관되게 객관적인 답변을 할 뿐, 최종적인 범죄 발생 여부는 결국 법원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아담 스턴 교수는 마지막으로 “수의법의학이 동물학대 조사에 점점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수의법의학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UF 수의법의학교실, 국제동물법과학회(ISAFS), 수의법의학 가이드라인, 관련 팟캐스트 등 수의법의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들을 소개했다. 관심만 있으면 웨비나 등 온라인으로도 관련 교육을 들을 수 있다.
한편, 이날 기조 강연에 참석한 수의사들은 아담 스턴 교수에게 ‘수의병리학자(미국수의병리전문의)로서 왜 수의법의학 분야를 시작하게 됐는지’ 등을 물으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