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가금수의사의 역할―모인필


0
글자크기 설정
최대 작게
작게
보통
크게
최대 크게

moinphil_profile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가금수의사의 역할

모인필 – 충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조류질병교수협의회 회장

올해 1월16일 국내에서 5번째(2003, 2006, 2008, 2011, 2014년)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8형)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방역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약 280건의 양성에 550개 농장에서 1,400만수 이상이 살처분됐다.

2014년 경제규모로 볼 때 세계13위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28,000 달러를 넘어서는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발생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고통을 받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상재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상재화는 향후 국내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예고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16개국가에서 339명이 사망한 인수공통전염병으로서의 사회적 위험성과 닭산업과 오리산업의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예상된다.

이러한 때에 평생 가금산업의 일선에서 질병의 전문가로서 일해 온 가금수의사는 국민과 가금산업을 위해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가금수의사회 회칙 제2조 에는 “한국가금산업과 수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이를 바탕으로 식품안전과 국민건강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현재 국내발생 상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크게 정부의 방역정책과 산업계, 학계 및 가금수의사를 포함한 산업관련종사자들의 현장의견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의 방역정책은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고도의 전문성과 함께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냉철하게 수립해야 하며 때를 놓치지 말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방역은 많은 인력과 물질이 투여되고 있음에도 효율적으로 질병을 통제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각 지역 현장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전문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가금수의사의 식견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용기도 요구된다.

다음과 같이 현장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하여 가금수의사의 판단을 구하고자 한다.

현재의 국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은 상재화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것인가?

국가방역당국에서 다양한 정의와 분석을 제시하고 있지만, 가금질병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상재화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고 향후 상재화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늦어도 5월 이전에 종식이 되었던 과거의 4번 발생과 연중 발생하는 이번 5번째 발생은 확연히 다르다. 올해 1월16일에 처음 발생한 H5N8형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가 여름을 넘어 현재까지도 발생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기온이 떨어지면서 전남에서 전북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철새가 이동해 오기 전부터 동일한 바이러스에 의하여 발생을 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분명 상재화의 시작인 것이다.

사람의 계절성 인플루엔자도 여름에는 잘 유행하지 않는다. 그만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고온의 환경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중 더운 동남아시아의 국가에서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가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름에도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이 있고 이를 국가방역으로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인가?

분명 바이러스는 방역당국의 전국적인 검사를 피하여 안전한 곳에서 이번 여름을 넘길 수 있었다.

이번 가을 발생에 대한 역학조사에서도 밝혀졌듯이 국가의 방역시스템을 벗어나는 사각지대가 있었던 것이다.

사각지대에 대한 계속적인 조치에도 계속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제적인 방역정책이 되지 못하고 발생을 뒤따라가는 형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철새를 포함한 모든 오리류에서 특히 효율적으로 증식한다.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재도 발생을 하고 있지만 일본, 태국, 필리핀에서는 발생을 하고 있지 않거나 발생을 하여도 1회에 그치고 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숨길 수 있는 오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태국, 필리핀의 오리산업은 거의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민의 건강식품으로서 국내 전체농업분야 중 7위 규모인 오리산업을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한 답은 한시라도 빨리 국가방역시스템과 사양관리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금수의사는 소비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오리산업을 지킬 수 있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 한다. 오리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어떻게 수평전파 되고 있으며 어떻게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지를 현장에 있는 가금수의사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상태가 지속이 되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을 해야 할 것인가?

지속적인 발생과 살처분이 반복되고 있는 현재의 상태에서 많은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농가와 오리산업을 생각하면, 당연히 구제역과 같이 백신접종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백신접종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닭과 오리를 죽이지는 않지만 분변을 통한 바이러스 배출을 완벽히 막을 수 있는 백신은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백신접종 후 사후관리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살처분보다 경제적이지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가들이 백신접종보다 살처분을 선택한 것이다.

전세계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백신의 80% 이상을 소비하는 중국은 거의 차단방역을 포기한 상태다. 이런 이유로 매년 새롭고 다양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탄생을 하고 있고 사람도 계속 사망하고 있는 것이다.

백신접종을 시작하면 국내 소비자도 위험에 빠질 수 있으며 특히 감염된 오리와 닭을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오리농장주 등 가금산업의 종사자들에게는 더욱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국가에서 가금을 사육하는 농가와 가금수의사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고위험군에 분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하여 현장 가금수의사의 역할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했다.

국가의 입장, 생산농가의 입장, 전문가의 입장 그리고 현장 가금수의사의 입장이 서로 다를 것이다.

가금수의사를 위시한 생산현장의 종사자 입장은 평생 이 산업에서 일을 하고 싶고 가능하면 후손에게도 발전된 가금산업을 남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당장의 현실적인 해결을 위하여 정책을 수립하기 때문에 우리의 염원과는 다르게 진행이 될 수 있다.

지난 10년간 4번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국가방역정책이 근시적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5번째의 발생에서 충분히 검증됐다. 그야말로 말 못하는 야생철새만 애꿎은 원망을 들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방역정책도 과거와 다르지 않게 전개되기 때문에 우려가 큰 것이다.

국가 방역정책이 우리 가금산업을 위한 장기적이고 미래적 정책이면 당연히 희생과 헌신적 협조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전문가로서 현장수의사로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이 요구하는 전문가의 길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모인필 프로필

    

[기고]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가금수의사의 역할―모인필

Loading...
파일 업로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