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용 자가백신, 공공연한 불법활용에 제도개선 방향은?
동물백신연구회, 자가백신의 현황 및 향후 전망 패널토론
동물백신연구회가 국내 자가농장용 생물학적제제(자가백신)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방향을 모색했다.
자가백신 허용범위를 넓혀 농장질병관리의 사각지대를 막고 국산백신제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를 위해서는 자가백신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현장을 관리할 수의사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4월 29일 더팔래스호텔 서울에서 대한수의학회 춘계대회와 함께 열린 이번 행사에서는 송창선 건국대 교수를 좌장으로 김현일 옵티팜 대표가 발제에 나섰다. 이어진 토론에는 전북대 김원일 교수와 경상대 정태성 교수, 양돈수의사회 이득흔 사무국장, 중앙백신연구소 최환원 박사, 검역본부 동물약품평가과 윤선종 연구관이 패널로 참여했다.
자가백신, 효용성 불구 제한적 허용..현장에선 공공연한 위법 적용
자가백신(Autogenous vaccine)은 특정 농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병원체를 분리하여 만든 백신으로서, 해당 농장에 접종하여 면역을 유도하기 위해 활용된다. 해당 병원체에 대한 상용화된 백신이 없거나, 있더라도 효능이 부족할 경우 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2000년대 돼지써코바이러스로 인한 이유후전신소모성증후군(PMWS)로 농가가 큰 피해를 볼 당시, 상용백신 출시 전까지 자가조직백신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돼지유행성설사병(PED)에 대한 인공감염이나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 모돈 순치도 자가백신과 비슷한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법령은 자가백신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자가백신으로 만들 수 있는 병원체는 대장균증, 돼지흉막폐렴, 파스튜렐라증에 국한되며, 이외의 질병은 검역본부장과 농식품부장관의 별도 승인이 필요하다. 또한 KVGMP를 획득한 국내 동물용백신제조사 5개소와 농장주 간의 직접계약에 의해서만 생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현장에서는 허가된 범위 바깥에서도 자가백신을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와 현장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양돈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장균 등 이외에도 다양한 병원체에 대한 자가백신이 농장에서 공공연히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자가백신제조허가업체 외에도 대학이나 일선 컨설팅업체까지 연관되어 있다.
그 원인으로는 ‘증가하는 질병문제에 비해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한정적’이라는 요인을 꼽았다.
2013년 PED 변이주 사례처럼 해외에서 새로운 병원체가 유입되거나 돌연변이로 인해 기존 상용백신의 효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어난다는 것. 스트렙토코커스균 등 애초에 유전형이나 혈청형이 다양해 상용백신을 제조하기 힘든 질병도 있다. 반면 항생제 등의 활용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어, 자가백신에라도 기대를 건다는 것이다.
자가백신 허용질병 확대..경쟁력 있는 백신개발로 이어질 선순환 구조로
이날 발제에 나선 김현일 대표는 미국, 독일 등 해외의 자가백신 관련 규정을 소개하면서 국내 정책개선점을 제시했다.
자가백신 허용질병을 확대하면서, 자가백신 적용현장을 신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주 골자.
일선 수의사와 진단기관, 대학 등이 농가와 협력해 자가백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성공사례는 백신제조사나 CMO 등을 통해 상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제조법뿐만 아니라 유전자재조합 등 다양한 신기술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현일 대표는 “규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화자는 것”이라며 “안전성은 철저히 확보하되 자가백신이 창의적인 동물백신개발을 촉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가백신 제조 안전성 담보, 현장에서의 정확한 적용과 관리감독 중요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이득흔 사무국장은 “양돈수의사회 차원으로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상용백신이나 항생제 활용이 여의치 않은 질병상황에서 자가백신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자가백신을 통해 질병피해를 줄이고 상용화로 이어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원일 교수는 “자가백신의 활용도가 높은 병원체를 우선적으로 허용하되, 국내 동물용의약품 검정체계가 개선됨에 따라 사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가백신의 안전성 이슈도 강조됐다.
김재홍 서울대 교수는 “자가진료의 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 전제를 두고 허용확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존 백신제조사는 자율점검이나 KVGMP, 약사감시 등을 통해 국가가 품질관리를 통제하고 있다. 만약 자가백신 제조자격을 완화할 경우 이 부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가백신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는 현장 인프라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수의사가 농장의 질병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자가백신 필요여부를 판단하여 적용한 후 효과와 부작용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참석한 한 일선 양돈수의사는 “규제를 완화해 자가백신 활용도를 높이되, 자가백신 적용여부를 신고하는 등 임상수의사가 현장을 관리해야 한다”며 “농장환경이나 사양관리 등 종합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자가)백신에만 의지하려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김원일 교수도 “진단기관과 일선 수의사, 농장 간의 협력체계가 탄탄해야 자가백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한 검역본부 관계자들은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농가와 업계의 요구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사안이라는 것. 양돈현장의 관련 질병발생상황이 이야기만 있을 뿐 대부분 공식적인 통계로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송창선 교수는 “질병에 따라 자가백신 활용이 필요하며, 제도 확대를 위해서는 품질관리, CRO 등의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번 토론이 단초가 되어 업계와 정부가 개선방향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