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특별기고①]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만이 해답인가?

한국가금수의사회 윤종웅 회장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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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원인, 지연된 신고와 지연된 살처분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정책은 평상시와 AI 발생시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평상시의 방역정책은 정기예찰과 교육 중심이다. 국내 AI 예찰은 2014년 H5N8형 AI 발병을 기점으로 오리농장과 거의 대부분의 양계농장에서 본격화됐다.

특히 발생확률은 높지만 감염되도 조기에 알아채기 어려운 오리에 대한 정기예찰은 비교적 잘 수행됐다고 볼 수 있다. 오리농장의 낙후한 시설과 방역인식의 한계에 부딪혀 예찰에 들인 노력에 비해 이번에도 발생이 많았지만 말이다.

AI가 일단 발병했을 때 중요한 것은 ‘빠른 신고와 진단’이다. 이어서 빠른 살처분(Stamping out) 조치로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현재 방역시스템의 한계가 보인다. 이번 H5N6형 AI 확산에는 ‘지연된 신고’가 큰 역할을 했다.

현행 방역시스템은 농가의 자발적 신고를 전제로 한다. 농가가 신고하면 방역당국이 ‘간이검사’와 ‘정밀검사’를 연이어 실시하여 AI 양성으로 판정되면 살처분을 진행한다. 매일 닭의 상태를 관찰하는 농가가 ‘빠른’ 신고의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신고는 지연된다. 이는 우선 살처분 보상금 체계 때문이다. 신고해서 살처분이 진행되면, 보상금을 받아도 농가는 결국 손해를 본다.

농가의 생리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따른다. 일단 위험을 감지하더라도 ‘AI인지 아닌지’ 의심하며 하루이틀 지켜본 후 신고하기 십상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는 것은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H5N6형 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 계란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며 계란값이 오르자 농가들의 마음도 달라진 것이다.

먼저 신고한 농가에는 이득이 없다. 다만 윤리적인, 도덕적인 양심의 거리낌만 남을 뿐이다.

이처럼 신고가 지연되면 그 농장 안에서 AI 바이러스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사료나 알을 실어나르는 차량, 사람뿐만 아니라 환기팬을 통해서도 다량의 AI 바이러스가 주변 농가로 전파된다.


자본주의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돈’

AI 발생농장은 살처분 보상비가 기본적으로 20% 삭감된다. 살처분 매몰작업에 드는 비용도 자부담해야 한다. 신고를 지연시킨 가장 큰 이유다.

산란계 20만수를 기르는 홍길동씨의 예를 들어보자. 홍길동 농가 근처 500m 내에는 다른 가금농가가 있다. 이 농장이 먼저 발생신고를 접수하면, 예방적 살처분 범위 포함된 홍길동 농장은 (예찰 표본검사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다면) 100% 보상금을 받을 수 있고, 매몰비용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살처분 보상금을 마리당 1만원으로, 매몰비용을 1억원이라 가정하자. 정직하게 먼저 신고하면 매몰비 1억원을 부담하면서 보상금 16억(1만원X20만수X80%)을 수령한다. 반면 신고를 지연하면서 운좋게 예방적 살처분 농장으로 포함되면 보상금은 20억으로 늘고 매몰비 자부담도 없어진다. 5억원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농장의 닭이 AI로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주변 농장의 신고를 기다리면서 신고를 지연한 곳이 있다. 출하 전 계란이 많이 쌓인 농장에서는 일단 계란을 출하한 후 신고한 정황도 있다. 심지어는 살처분 대신 도계장으로 닭을 출하해버리고 청정농장을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농가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건지고자 한 것이다. 질병에 대한 인식부족도 심각했지만 누구만 탓하긴 어렵다. 결국 구조의 문제다.

 

상상 못한 규모, 대형 산란계 농장

이번 H5N6형 AI의 특징 중 하나는 대형 산란계 농장의 발병이다.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점이다.

예년의 고병원성 AI는 오리와 육계에서 한창 유행한 이후 일부 산란계 농장에서 발병하는 패턴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형 산란계 농장에서 연쇄다발하는 상황에 적합한 살처분 작업 준비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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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계농장(왼쪽)과 산란계농장(오른쪽)의 사육구조 차이

오리, 육계의 살처분은 산란계와는 다르다. 오리와 육계는 층 구분 없이 평사에 풀어 키운다. 때문에 이산화탄소 가스나 질소폼으로 한꺼번에 안락사 시키기 용이하다. 별다른 구조물이 없어 대규모인원이 동시에 사체를 수거하고 매몰할 수 있다.

반면 산란계 농장의 계사는 아파트 1개동 규모를 눕혀 놓은 구조라고 보면 된다. 산란계가 여러 층으로 배치되다 보니 살처분 과정도 사뭇 다르다. 그 동안 오리, 육계용으로 개발해 온 살처분 설비를 사용할 수도 없다.

살처분 작업자들은 케이지 안에 칸칸이 들어찬 산란계를 일일이 꺼내야 한다. 케이지 사이 복도가 좁아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작업할 수도 없다. 층수가 높으면 케이지에 매달리든지 대차에 올라가 작업해야 한다.

이 같은 구조적 차이로 인해 처리기간에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산란계 농장은 최근 현대화 시설로 6~20만수 이상의 큰 규모가 많아졌다. 이번 AI도 대부분 이들 큰 농장에서 발병했다.

2015년 미국에서도 이런 큰 규모의 농장들은 매몰처리에 1주 이상 걸렸다.

 
하지만 지연된 살처분은 규모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AI 발병농장은 살처분 매몰비용을 자부담해야 한다. 금액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살처분 용역업자를 선정하기에 앞서 견적을 받는다. 견적 받고 비교하는 데만 하루이틀이 가고, 그동안 농장안에서 AI 바이러스는 폭증한다.

살처분 작업팀은 대부분 비전문 일용직으로 급조된다. 수익을 일당으로 받으니 작업시간이 늘어날수록 돈을 더 버는 구조다. 살처분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이나 살처분 작업과정의 방역상태는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

살처분 사체를 렌더링하겠다며 차량으로 실어 나르며 차량에서 핏물이 새어나와도 이를 감독할 방역관이 없다. 지자체에 많아 봐야 1, 2명인 방역관은 이미 다른 농장을 점검하기에도 몸이 부족하다.

결국 빠른 살처분은 불가능했다. 역시 근본은 구조의 문제다.

농가의 마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올바른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소통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몫이다.


왜 살처분만 고집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나라 방역정책의 중심은 살처분과 이동제한이다. 물론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빠르고 깨끗하게 바이러스 없는 청정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 H5N6형 AI와 같은 상황이 이후에는 더욱 잦아질 것이다. 바이러스의 유형은 계속 바뀔 것이고, 방역정책도 그에 맞게 다양해져야 한다.

하지만 정책의 다양성이 없다. 여러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는 없었다.

고병원성 AI 백신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껏 한 번도 백신정책을 심도 있게 고려하지 않았다. 대학을 중심으로 AI 백신과 이를 활용한 차단방역 방안이 연구됐지만, 실질적인 시뮬레이션이나 정책반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신 ‘여태껏 해오던 일’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버렸다. 2003년, 2005년 발병했던 고병원성 AI를 훌륭히 막아냈지만, 그 자만감에 취해만 있었다.


살처분은 비싼 정책이다

이번 H5N6형 AI는 경제적인 비용에서도 2014년 H5N8형 AI와 다르다.

산란계는 단순한 살처분 보상금만 마리당 최소 1만원 이상 소요된다. 육계나 오리에 비해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육계와 오리가 많이 발생했던 예전보다 피해가 더 크다는 말이다.

반면 백신의 경우 마리당 200원이면 2회 이상 접종이 가능하다. 죽이지 않고 닭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반드시 모두 죽여야 할까?

10,000원과 200원은 단순히 비교해도 큰 차이다. 때문에 우리의 질문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우리나라에 AI 청정국 지위가 과연 필요한가?’

AI 청정국 지위가 필요하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도 살처분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청정국 지위의 가치를 단호히 판단하고 공표해야 한다.

하지만 살처분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3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고서야 백신을 도입했던 구제역의 사례를 잊었는가? 우리는 얼마짜리 AI 청정국 지위를 위해 얼마를 땅에 묻어도 좋은가?

우리나라가 AI 청정국 지위가 필요 없다면, 철저한 관리를 전제로 한 백신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백신정책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수 있다. 다시 청정국을 회복하는 일도 가능하다.

 

더 전파가 빠르고, 더 병원성이 강력한 AI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재난대응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비용도 제한적이다. 이번 H5N6형 AI처럼 하루 평균 60만수, 60억의 세금을 땅에 묻을 수는 없다.

AI 청정국 수호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가치판단과 더불어 살처분 정책의 대안에 대한 심도 있는 합의를 빨리 이뤄야 한다.

수천억의 댓가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스템과 구조를 만드는 소통의 시간을 아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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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특별기고①] 조류인플루엔자, 살처분만이 해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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