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또 재발했다. 정부가 AI 특별방역대책기간을 종료한 지 이틀 만인 6월 2일 제주도 토종닭 농가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제주, 부산, 전북, 경기, 울산, 경남 등 6개 시·도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진됐고 142개 농가 18만 2천수의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정부는 2일 AI 의심신고 접수 이후 가축방역심의회 가금분과위원회를 열고 4일 0시부로 AI 위기경보단계를 ‘경계’로 상향조정하고,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총리 주재로 농식품부, 행자부, 환경부 등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6일 0시부로 AI 위기경보단계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시켰다.
7일에는 0시부터 24시까지 육계를 제외한 전국 가금농가와 축산관계자를 대상으로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도 발동했다.
예년에 비해 빠른 초동대응이 이뤄지는 것 같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13일 범부처 ‘조류인플루엔자(AI)·구제역 방역 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근본적인 방역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 이제 농가와 국민 모두 안심하셔도 된다. 더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건강한 축산업을 지켜나가겠다”고 전했다.
6대 분야, 16개 주요과제, 53개 세부과제에 달할 정도로 많은 내용이 담겼으며, ‘기존 4단계로 운영되던 가축전염병 위기경보단계를 2단계로 간소화하여, 농장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할 경우 바로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한다’는 것도 주요 대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AI 사태에서도 첫 신고 4일 뒤인 6일에 심각단계가 발동됐다. 이 때문에 4일 0시 ‘경계’단계로 위기단계를 상향할 때 바로 ‘심각’ 단계를 발동시켰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文대통령 “고병원성 AI 방역 의례적…근원적 해결방안 검토하라” 질책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고병원성 AI 근본 해결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8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대책이 의례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바이러스 변종이 토착화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기존 관성적 문제 해결방식에서 벗어나 근원적 해결방식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질책과 함께 독려의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으며,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 4월 마련한 종합대책을 여건상 아직 시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연례 대책을 차질 없이 조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가축 방역 조직과 축산업 진흥 조직의 분리다.
현행 가축 전염병 방역 업무는 축산업 진흥을 주요 업무로 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에서 담당한다. 이러다 보니 가축 방역 업무 수행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대책이 어렵다.
축산정책국 산하 방역총괄과·방역관리과가 가축전염병 방역정책을 담당하는 현행 방역조직체계 자체가 고병원성 AI, 구제역 피해가 반복되는 주요 원인이라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시절인 4월 27일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농어업 정책을 발표하면서 “축산진흥과 수의방역 업무를 엄격히 분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가축전염병의 책임 있는 방역 행정을 위해 정부 부처 내 축산진흥정책과 수의방역 업무를 엄격히 분리하겠다”며 방역조직 분리를 공언한 바 있다.
정부 조직 개편이 한창인 가운데, 또 다시 고병원성 AI가 발생했다. 동절기가 아닌 하절기의 시작 시점에 발생했다. 더 이상 근본적인 원인 해결 없이 고병원성 AI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근원적 해결방안 검토’를 위해 가축방역 조직 분리가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