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의 행동문제도 의학이다①]동물행동의학을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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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칼럼]김선아의 행동문제도 의학이다① – 동물행동의학을 시작한 이유

비아와 초롱이는 우리 부모님이 자식처럼 키우시고 내가 여동생처럼 키우는 반려견들이다. 그 중 15살 된 화이트테리어 초롱이는 브리더가 번식을 위해 외국에서 수입해온 혈통 좋은 아이였는데,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브리더가 포기하는 바람에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아이였다.

나는 초롱이의 아토피를 고치겠다는 큰 꿈을 품고, 본과 4학년 여름방학 동안 미국 UC Davis의 피부과로 연수를 가서, 수의대 4학년과 함께 피부과 로테이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WSAVA 전회장님이신 Peter Ihrke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피부과 공부를 했다.

피부과 로테이션을 하던 중, 어느 날 머리 부분을 심하게 긁는 고양이 환자가 내 담당환자가 되었다.

환자를 배정받으면, 보호자를 대상으로 자세하게 병력청취를 한 후에 기본검사를 시행하고, 병력청취 내용과 기본검사 결과를 교수님께 보고한다. 그리고 함께 환자를 보면서 진단을 하게 된다.

그 고양이 환자는 너무 심하게 머리를 긁어서 엘리자베스칼라를 항상 씌워놓은 상태였다. 스스로 그루밍을 할 수도 없으니 환자의 상태는 심각한 편이었다. 그 동안 CT 촬영을 해도 특이사항이 없었고 다양한 피부과적 치료를 해왔지만 좋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루밍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평생 엘리자베스칼라를 쓰고 괴롭게 살아가는 아이의 안락사를 결정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학병원 피부과에 찾아왔다고 하시며 보호자들은 눈물을 흘리셨다. 병력청취 후에 피부과적 기본검사를 시행했으나 특이소견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칼라를 풀러주자 마자 고양이는 뭐가 그렇게 간지러운지 열심히 긁었고 다시 상처가 났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긁으니 바로 피가 맺혔고, 아픈지 괴로운 비명소리를 내면서도 계속해서 긁었다.

피부과 담당이신 Ihrke 교수님은 바로 행동의학과(behavior medicine)로 다시 진료의뢰를 하셨다.

피부과 바로 옆방이라 지나다니면서 항상 궁금했던 행동의학과에 드디어 구경을 가는구나 생각하며, 고양이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교수님과 함께 행동의학과로 갔다. 행동학적인 상담을 하는 것을 처음 보며, 어떠한 검사 없이 상담을 통해서 진단과 치료를 하다니 정말 새로운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담 후에 정형행동 (compulsive disorder)이라고 진단하였고, 행동의학적 약물치료와 환경개선치료 그리고 행동교정치료를 병행하기로 하였다.

피부과 문제로 의심되어 다양한 치료를 시도해왔고, 몇 년째  엘리자베스칼라로 쓰고 살아온 고양이의 문제가  행동의학과 진료를 통해서 ‘정형행동’으로 진단되고 알맞은 치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너무 간지러워서 긁는다고 생각한 문제가  피부과가 아닌 행동의학적 문제라니 신선한 충격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1개월 후의 재진을 약속한 후, 환자는 치료약물을 처방 받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내가 맡았던 환자들에 대하여 소식을 전해주셨는데, 그 중 고양이 환자도 많이 호전되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양한 검사를 통해서도 원인을 밝힐 수 없었던 문제로 안락사 직전까지 갔던 고양이가 드디어 엘리자베스 칼라를 풀게 되었다는 소식은 한참 후에 들었다.

동물행동의학이 고양이를 살린 것이다.

미국과 호주에서 질병이 아닌 사망의 첫 번째 원인은 ‘안락사’라고 한다. ‘안락사’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행동학적 문제’이다. 그리고 동물 유기의 가장 큰 원인도 ‘행동학적 문제’라고 한다.

‘내가 외과와 내과를 공부해서 동물을 살리는 숫자보다 동물행동의학을 공부해서 살리는 동물의 숫자가 많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행동의학에 대해 공부를 할 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동물행동의학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그거 해서 먹고는 살겠니?’라고 말씀하시는 원장님들도 계셨고, 동물행동의학을 공부한다면 ‘망원경 들고 아프리카 가는 거야?’라고 말씀하신 교수님들도 계셨다. 하지만, 이제는 동물행동의학이 수의학의 ‘정신과’라는 것이 많이 알려져 있어 다행이다.

지금까지 동물의 행동문제들을 접하면 무조건 훈련소로 보내왔다면, 이제는 훈련사에게 의뢰하기 이전에 수의사가 진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동의학적 질병이 아닌 나쁜 습관의 문제이거나 예절교육이 필요한 문제라면 훈련소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수의사가 진단과 치료를 해야 할 동물행동의학적 질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물행동의학은 의학이다.

김선아프로필

[김선아의 행동문제도 의학이다①]동물행동의학을 시작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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