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는 동물학대 범죄를 저질러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아도 다시 동물을 키울 수 있다.
피학대동물이 같은 사람에게 또 학대받거나, 학대자가 새로운 동물을 대상으로 동물학대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지만, ‘동물학대자 동물사육금지 제도’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2022년 동물보호법이 전부개정되면서 법 조항이 이전(47조)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101조). 그러나, 법안 초안에 있던 ‘동물학대자의 사육금지처분’은 반영되지 못하고 제외됐다. 민법상 동물의 법적 지위가 여전히 물건이기 때문에 ‘동물(물건)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제한한다’는 지적과 새로운 형사법 체계 도입에 대한 법무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동물복지국회포럼 공동대표인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대 국회 출범 이후 재차 ‘동물학대행위자에게 동물사육금지 처분을 내릴 수 있는 법안’을 대표발의했지만(동물보호법→동물복지법 개정안), 여전히 통과 가능성은 묘연하다.
‘동물학대자의 동물사육금지처분’은 ‘동물의 비물건화를 위한 민법 개정’과 함께 함태성 농식품부 동물복지위원장이 뽑은 22대 국회의 동물복지 관련 입법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권행동 카라(대표 전진경)와 국회의원연구단체 동물복지국회포럼(공동대표 박홍근·이헌승·한정애)이 9월 26일(목) 국회의원회관에서 ‘동물학대자 사육금지제 입법 방안 모색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동물학대자 동물 사육 국내 사례(동물권행동 카라 윤성모 활동가) ▲동물학대자 동물 사육 해외 사례(한국법제연구원 한민지 부연구위원) 2개의 주제 발표와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지정토론자로는 신수경 변호사(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유제범 조사관(국회입법조사처), 임영조 과장(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복지정책과), 박선덕 팀장(서울시 동물보호과)이 나섰으며, 좌장은 한남대학교 경찰학과 박미랑 교수가 맡았다.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변화팀 윤성모 활동가는 최근 발생한 무안군 반려견 무차별 폭행 사건을 언급하면서 발제를 시작했다. 해당 학대자는 강아지를 발로 걷어차고, 철문에 집어 던지는 등 무차별 폭행을 가했지만, 학대자가 피학대 강아지를 다시 못 키우게 하려면 소유권 포기를 설득하고 동물사육 금지 각서를 받아야 한다.
만약, 학대자가 각서를 거부하고 사육계획서를 제출하면서 자기 동물을 돌려 달라고 하면, 법에 따라 긴급 구조·격리했던 동물도 다시 학대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윤 활동가는 이어, 포항, 김해, 서울 노원구 등에서 실제 발생한 개·고양이 학대 사건을 소개하면서, 학대자들이 동물학대범죄로 처벌을 받은 이후 동물을 계속 키우거나 길고양이를 돌보는 등 동물에게 접근하는 게 자유롭다는 점을 지적했다. 윤성모 활동가는 “동물학대자 사육금지제를 이제는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법제연구원 한민지 부연구위원은 독일, 호주 퀸즐랜드·뉴사우스웨일즈, 미국 캘리포니아·테네시·플로리다, 캐나다 등 해외 많은 국가와 주에서 동물학대 행위자의 사육금지처분을 명분화하고 있음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어 ‘학대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사육금지처분을 고려할 수 있는 학대 행위의 규정 검토’ 등을 제안했다.
지정 토론에서 신수경 변호사는 사육금지의 범위를 구체화할 필요성과 함께, 사육금지제 도입 전까지 현행법으로도 ‘특별준수사항 보호관찰 명령’을 통해 동물에 대한 접근 금지 조치를 할 수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제범 입법조사연구관은 ‘동물학대자 사육금지제 도입이 학대자의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는 논리에 대해 “오히려 동물학대 범죄야말로 ‘사회 대다수 사람의 행복추구권’을 앗아가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의 행복추구권보다 사회구성원 다수의 행복추구권에 주목하며 “사육금지제가 입법화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서울특별시 동물관리팀 박선덕 팀장은 ‘마포구 야생동물카페 사건’을 언급하면서 학대자가 징역형을 받아도 동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현실을 토로하며 “동물학대자 사육금지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임영조 과장은 “사육금지처분의 주체, 금지 행위 및 대상 동물의 범위 등을 세밀히 다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물학대자의 동물사육금지가 필요하다’는 큰 틀에 대부분 동의했다.
“법의 보수적 성격 이해하지만 안타까워…사육금지제 도입은 생명 존중 사회에 대한 중요한 기준”
동물복지국회포럼 박홍근 공동대표(더불어민주당 중랑을 국회의원)는 “21대 국회에서 역대 가장 큰 규모의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졌지만, 법무부의 반대로 막판에 사육금지제가 빠졌다. 22대 국회에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다시 발의했으나, 여전히 법무부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며 ” 법의 보수적 성격을 이해하지만, 확대된 동물권에 대한 국민인식과 시대의 변화에 법이 뒤처져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사육금지제 도입은 단지 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생명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며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의 마련을 위해 ‘동물복지국회포럼’은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