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④] 보호자,동료,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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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yechan 300

앞선 글에서는 수의윤리의 영역 중 주로 ‘동물에 대한 윤리’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물론 수의윤리에서 동물에 대한 윤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하지만 실제 진료상황에서 접하는 윤리적 딜레마 케이스들은 대개 동물에 대한 윤리 이외에도 개인의 이익, 직업성에 대한 책임감, 보호자와의 관계, 상사나 동료와의 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수의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윤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측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   *   *   *

수의 체계가 잘 정립된 서구권 국가들의 수의사 윤리강령을 보면, 수의사의 직업적 의무와 책임의 대상으로 ‘동물’, ‘보호자’, ‘전문직업성’, ‘동료’, ‘사회’를 공통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중 ‘보호자(client)’와 ‘동료(veterinary team)’는 수의사의 업무환경에서 형성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다.

수의사의 직접적인 행위의 대상은 동물이지만, 직업적 의무와 책임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한 것이다.

 

1) 보호자(Client)

수의사와 보호자의 관계는 수의사와 동물의 관계와 함께 진료의 한 축을 형성한다.

하지만 동물에 대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막상 수의사와 보호자의 관계에 대해서도 분석적인 질문을 던지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가 수의사라면 직업적 고찰이 들어간 그럴싸한 대답을 하나쯤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에서 정립하고 있는 ‘수의사-보호자-환자 관계(VCPR; Veterinarian-Client-Patient Relationship)’ 라는 개념을 살펴보자.

미국수의사회(AVMA)의 설명에 따르면 VCPR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모두 충족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 수의사가 환자의 진료에 관한 책임을 부여받고, 보호자는 이에 대해 동의한다.

– 수의사는 적절한 진료나 처치가 가능하도록 환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다.

– 수의사는 환자에게 지속적인 수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용이하다.

– 수의사는 치료과정이나 보호자의 환자 관리, 치료 결과에 대한 소견과 정보를 제공한다.

– 환자의 의료 기록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VCPR이 단순히 내원 시에만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관계가 아니라, 환자의 진료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치료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환자에게 지속적이고 적절한 수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수의사와 보호자 간의 관계가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서 VCPR이 필요한 것이다.

VCPR은 수의사와 보호자의 간의 상호 동의로 형성되고, 진료의 시작은 VCPR의 형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진료는 일종의 계약 이행이며, 이 과정에서 VCPR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직과 성실, 존중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수의사의 처치에 대하여 보호자가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사전 동의(informed consent), 진료비용의 사전 고지, 진료기록의 유지와 개인정보의 기밀유지, 이해관계의 공개 등은 모두 진료과정에서 수의사와 보호자 간의 신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2) 동료(Veterinary team)

한편 직장 내에서 수의사들은 동료 수의사 및 타 직종과 협업하며, 근처 동물병원이나 관련 기관의 사람들과도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수의사 역시 노동자로서 고용주가 되기도 하고 피고용인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동료 간의 관계에서 다양한 사회적 측면의 화두들이 발생한다. 수의사의 노동, 직장 내 권리와 평등, 마케팅이나 상업 경쟁과 같은 이른바 상도덕(기업윤리; business ethics), 그리고 조직문화와 조직 내 갈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많은 수의사들이 동료 수의사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개인의 수입과 직결되는 기업윤리에는 매우 관심이 많은 듯하다.

미국의 수의윤리학 교수 역시 저서에서 ‘수년간 강연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수의사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주제는 동물 복지나 안락사가 아니라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인 수의사들의 윤리, 즉 기업윤리라 단언할 수 있다’고 기술하는 것을 보면, 직업이 가지는 일차원적인 역할에 대한 큰 관심은 세계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수의사들도 ‘직업적 삶의 질’을 포함한 직업만족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직업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노동환경이나 복지, 기업윤리가 만들어 내는 기업문화는 직업만족도에 일차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낮은 직업만족도는 결국 질 낮은 수의 서비스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제도적 정립과 상호 존중에 대한 가치관 교육은 필요하다고 본다.

 

3)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관통하는 화두가 등장하는데,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누구와도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진료를 본 적이 있는가? 커뮤니케이션은 모든 진료의 바탕에 깔려 있다.

이때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 의사소통뿐 아니라, 비언어적 메시지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과 상호 소통하는 것을 포함한다.

수의사는 진료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비교적 제한된 시간 내에 보호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상담하고, 교육까지 해야 한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필수적이다.

숙련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환자에 대한 일차적 정보를 얻는 중요한 진료의 도구이자,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설득하여 보호자의 이해도와 만족도를 높이고, 동료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협업을 통해 양질의 수의학적 서비스를 이끌어 낼 수 있게 한다.

또한, 직장 내의 커뮤니케이션 만족도는 직업만족도에도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수의교육학 서적을 참고하면, 수의과대학에서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다른 임상 기술과 동등한 수준으로 중요도를 두고 가르쳐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학에서는 ‘환자 면담’을 대부분의 의과대학이 커리큘럼에 포함하고 있고, ‘의료커뮤니케이션’은 별도의 학회가 있을 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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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인간 관계적 측면의 주제들은 수의학의 울타리 내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이러한 부분을 수의학의 범주로 인식하지 못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연구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개인의 능력에 의해 의례 자연히 습득하고 형성되는 부분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외의 관심사 정도로 다루어지는 이러한 영역은 수의 의료의 질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결국 사람에게 와 닿는 부분이 큰 영역이다.

아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분야는 아니므로, 수의 의료에서 가지는 특수성에 대한 체계적인 고찰과 논의가 점차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 참고자료

■ Tannenbaum, Jerrold. 수의 윤리학. 2/E. Elsevier Health Sciences KR, 2009.

■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의료커뮤니케이션. 학지사, 2012.

■ Hodgson, Jennifer L., and Jacquelyn M. Pelzer, eds. Veterinary Medical Education: A Practical Guide. John Wiley & Sons, 2017.

■ 신호창, 전정미, and 나진균. “조직적 맥락의 커뮤니케이션 만족도와 직업만족도의 관계.” 홍보학 연구 11.2 (2007): 3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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