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강문 서울대 수의대 학장 `역량 중심 수의학 교육으로`
교육 개선에 대학 구성원 다수의 공감대 전제돼야..AVMA 인증은 국제수준 향한 출발선
Q. 서울대 수의대의 AVMA 인증은 10여년의 긴 여정이었다
처음에는 인증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수의학교육을 어떻게 선진화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었다. AVMA 수준에 걸맞은 수의과대학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2005년 양일석 전 학장님이 학사협의회 차원에서 AVMA 인증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권오경 전 학장님이 서울대 수의대의 비전 2020을 만들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2020년 AVMA 인증을 목표로 삼자는 아이디어였다.
당시 미국의 공직에서 일했던 조정연 수의사가 영문 공문 작성을 도와준 것을 계기로 2010, 2011년부터 연례보고서(Annual report)를 만들어 AVMA 교육위원회로 보내기 시작했다.
2011년 류판동 전 학장이 취임하면서 AVMA 인증준비에 불이 붙었다. 당시만해도 인증을 추진하기에는 미흡점이 너무 많았다.
가령 임상로테이션 교육을 1년 이상 하지 않으면 인증신청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곧장 로테이션 교육을 도입했다. 이론교육은 쿼터제에 기반한 본과 3개년으로 조정하고, 본과 4학년은 1월부터 임상로테이션과 외부실습을 돌았다.
로테이션을 도는 재학생들에게 광견병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한 것도 AVMA 인증과 연관이 있다. 학생들의 안전성과 관련한 요구조건 중 하나였다.
2014년 AVMA 교육위원회의 현장자문실사(Consultative site visit)를 받은 것도 이 같은 준비작업이 쌓였던 덕분이었다. 자문실사 전에 최소한 5년간의 연례보고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자문실사 성적표만 보면 AVMA 인증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시설은 있는 것 같지만 핸즈온 교육에도 안전 확보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들 지적사항들만 추려서 개선을 추진했다. 수의학 교육실이 중심이 됐다. 윤정희, 이소영, 이인형 교수와 당시 임용 전이었던 천명선 교수 등이 교육실 멤버로 고생을 많이 했다.
커리큘럼을 바꾸고 수의학교육 시설도 학내외에 대폭 확대했다.
학생과의 접점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커리큘럼 관련해서만 학생대표와 의논했지만, 2017년부터는 학생대표와 집행부의 만남이 월례화되면서 학교 전반적인 개선사항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받고 있다.
Q. 콜로퀴움에서는 학생들의 핸즈온 교육 개선을 특히 강조했다
옆에 서서 보기만 하지 말고 해보라는 것이다. 가령 안과라면 백내장 수술을 시킬 순 없지만 눈물량이나 안압을 측정하는 등 기본적인 술기는 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인쇄된 형태의 로그북을 만들어 체크하게 만들었다가, 벳노트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계속 개선하고 있다. 벳노트 같은 IT 기반 핸즈온 교육체계는 해외에서도 찾기 어려운 성과다.
학생들이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루브릭 기반의 평가체계도 만들었다.
본과 3학년의 경우 외과, 내과 등 과목별로 나뉘어져 있던 임상과목 실습을 통합형으로 교체했다. 붕대, 청진, 채혈 등 졸업생들이 알아야 할 임상술기(Day 1 Skill) 전체를 목록화하고, 이들을 어느 과목 실습에서 다뤄야 할 지 나누는 식이다. 학생들에게도 그 목록을 주고 역량을 갖추도록 했다.
기초 분야에서도 중복되는 실습이 없도록 기본적인 내용은 통합해서 구성해 나가고 있다. 임상에서 시작된 변화가 점차 퍼지고 있는 셈이다.
Q. 2018년 AVMA 교육위원회 본실사를 통과하고 7년의 완전인증을 획득했다. 준비가 길었던 만큼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의 수의학 교육 프로그램이 AVMA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졸업생들이 미국 수의사 면허를 취득하기 간편해졌다는 것은 부가적인 효과일 뿐이다.
한 번 발전한 시스템이 금방 퇴보하지는 않을 것이라 기대한다. 더욱 발전시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이 같은 경험을 국내 다른 수의과대학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도 고민이다.
그래서 AVMA 인증에 대한 백서 편찬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에는 인증 전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관련 정보와 경험을 다른 수의대나 수의 관련 기관에 적극 공개할 생각이다.
Q. 서울대를 포함한 국내 수의과대학은 2년 임기의 학장을 중심으로 집행부가 자주 바뀐다. 이러한 체제 하에서 개선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대학 구성원의 절반 이상에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학장이 바뀌더라도 과반이 찬성하는 목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 구성원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물론 구성원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은 학장단의 리더십이다. 서울대에서도 전임 학장님들의 역할이 컸다.
2018년 현장실사를 앞두고서는 학생들과 교수진, 직원들이 공청회를 계속 열었다. 개선점을 공유하는 기회도 되지만, 이를 통해 교육개선을 대세로 만들고 결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코어그룹도 중요하다. 집행부의 관심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분들이 있고 다수의 공감대가 바탕이 된다면 일은 진행된다. 서울대에서는 소수의 교수진으로 구성된 교육실이 그 역할을 했다.
Q. 10년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결승선을 통과한 셈인데,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할 것 같다
AVMA 인증도 결국 세계적인 수의학 교육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의 하나다. 그 여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제 출발선에 선 셈이다.
인증을 앞두고 집중됐던 교육개선 노력이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AVMA 인증기준도 매년 변화하고, 그 추세를 꾸준히 따라가야 한다.
Q. 이를 위한 개선과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모든 축종을 다룰 줄 아는 졸업생을 만들어내는 것이 초점이다. 아직은 (수의학 교육이) 일부 축종에 치우친 상황이다. 모든 축종 임상에 고루 노출될 수 있는 교육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 졸업생이 수의학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커리큘럼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일단 아직도 이론수업이 너무 많다. 실습교육이 보다 많아질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한다.
전공필수 과목이 너무 많다는 점도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핵심적인 과목만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나머지는 주로 선택(elective course)으로 운영한다.
이를 통해 본인이 구상하는 수의사로서의 진로에 맞춰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래야 기초예방 분야에서도 역량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아직 구상하는 단계지만 수의학 교육실에서는 학생들의 배워야 할 술기에 초점을 맞춘 ‘포트폴리오’ 형태의 관리체계도 검토하고 있다. 4년간 갖춰야 할 역량의 목록을 본과 1학년에서부터 제공하고 이를 개인별로 관리하며 수의대 내·외부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형태다.
Q. 전공선택을 기반한 커리큘럼 확장이나 임상 교육 확대에는 교원 확충이 수반되어야 하지 않나
수의대 교수의 지도하에 진행되는 백신접종이나 중성화수술을 포함한 쉘터 메디슨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수의대에 부속된 교육병원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실제 환자를 맡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인 수의사들을 포함해 부속 동물병원에서 임상 경험을 쌓아야 할 대상이 너무 많다는 것도 어려운 점이다.
장기적으로 임상 교원을 늘려 교육 수요자와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현재 교수는 적고 학생은 많은 정삼각형 구조를 역삼각형에 가깝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서울대 내부적으로 다양한 트랙으로 교수를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동물병원에서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Q. 벌써 재학생들 상당수가 미국 수의사 국가시험(NAVLE)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사항이 있는지
AVMA는 인증 대학에게 NAVLE 합격률 80% 이상을 요구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준비가 미흡한 채 응시해선 곤란한 측면도 있겠지만, 준비를 잘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학생들도 AVMA 인증대학에 걸맞은 자세와 국제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AVMA 인증 대학이다, NAVLE 보겠다라고 하면서 이전 학생들이나 별반 다를 것 없이 수의학을 대해서는 안된다. 교육환경의 개선도 필요하겠지만, 학생들의 노력도 담보되어야 한다.
Q.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10여년전 서울대 수의대가 세웠던 비전 2020은 AVMA 인증을 포함해 대부분 달성하고 있다. 이제는 비전 2030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임기에 주어진 역할은 다시 새로운 발전을 준비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것이라 본다.
국내에 있는 다른 수의과대학도 충분히 AVMA 인증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AVMA가 아니더라도 한국수의학교육인증을 통해서도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본교의 경험도 적극적으로 공유하겠다.
교육인증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지만, 시작을 해야 교육개선도 본격화된다. 인증 그 자체보다 준비과정에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학생들의 만족도를 올리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