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찬의 Good Vet Happy Vet⑧] 상도덕과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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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yechan 300

“야, 그 동물병원은 정말 상도덕이 없는 거 아니냐?”

수의사 지인들과 얘기하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필자가 이번 칼럼 주제로 동물병원의 상도덕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하자,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한 친구는 대뜸 “그거 자칫하면 너 완전 욕먹는 거 알지?”라며 겁부터 주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수입과 직결된 주제들은 수의사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다소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상도덕이 뭘까?

사전적으로는 ‘상업 활동에서 지켜야 할 도덕, 특히 상업자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앞선 칼럼에서 다루었던 과잉진료나 직무태만과 같은 직업윤리가 모두 넓은 범위의 상도덕에 포함되겠지만, 이 글에서는 단어의 뉘앙스가 그러하듯 그중에서도 특히 수의사들 사이의 상도덕과 마케팅의 윤리에 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떤 직업이라도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기능이고, 또한 정당한 방법으로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직업의 숭고한 가치를 퇴색시킨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생명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성을 가진 직업은 수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요구받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 병원에서 암환자 2+1할인과 같은 마케팅을 펼친다고 하면 필시 비난받을 것이다. 이 마케팅은 사람의 생명을 병원의 돈벌이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점에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라는 칸트주의적 도덕원리에 반하게 되고, 이처럼 환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마케팅에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반면, 미용 목적의 시술을 하는 의원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마케팅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별다른 반감 없이 수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물병원, 특히 반려동물에 대한 의료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반려동물 의료시장이 완전한 시장원리에 맡겨져 있느냐는 것부터 살펴보자. 표면적으로 현재의 동물 의료시장은 완전한 시장원리에 맡겨져 있다. 2011년부터 진료비에는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며, 표준수가제는 1999년 폐지되었다. 정책적으로 반려동물 의료는 기호품 혹은 사치품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가가치세 폐지나 표준수가제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시민은 저서에서 의료시장을 완전한 시장원리(의료 자본주의)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로, 의료시장의 불완전성 세 가지를 언급했다. 첫 번째로 건강 앞에서 인간의 판단이 가지는 ‘불합리성’, 두 번째로 의학적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소비자 주권 시장이 아닌 ‘공급자 우위의 시장’인 점, 세 번째로 의료보험 시장의 불완전성을 들었다.

여기서 적어도 첫 번째와 두 번째 측면은 반려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반려동물의 특수한 도덕적 지위가 만들어내는 반려동물 의료의 특수성인 것이다.

수의사 입장에서는 정책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와중에 언제는 사치품 취급하며 관심도 없더니 이제 와서 비싸다며 시장에 개입하겠다고 하는 것이 억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은 어떻게 보면 반려동물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제기될 이슈이며, 반려동물 의료의 특수성 자체는 수의사에게 유리한 것도 불리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특수성’이고, 이것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내는가 하는 것은 결국 수의사들이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추진해야 할 숙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수성은 마케팅에도 반영된다. 예를 들어, 동물에 대한 의료가 기호품으로서 완전한 시장원리에만 맡겨져 있다면, 박리다매 형태의 진료를 비난할 근거는 없다. 우리가 박리다매 형태의 진료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그러한 형태의 진료에서는 ‘적절한 질’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적절한 질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대다수 국가의 수의사 윤리강령에 포함된 기본적인 직업윤리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처럼 적절하지 않은 방식의 마케팅이 가져오는 윤리적인 문제는, 보호자들이 동물병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적절한 질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 이외의 요소를 고려하도록 유도하여 정작 중요한 것을 흐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수의사들은 대략 한두 다리만 건너면 연이 닿아있는 동료이면서, 한정된 시장에서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경쟁자이기도 하다. 아무리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허허벌판에 처음으로 병원이 생기는 것이 아닌 이상 다른 병원의 고객 기반을 일정 부분 가져오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하여야 하므로 어느 정도의 마케팅은 불가피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고려해서 마케팅을 해야 할까?

미국의 수의윤리학자 Jerrold Tannenbaum은 그의 저서에서 동물병원의 윤리적인 마케팅을 위한 세 가지 요소를 제안했다.

1. 품위와 고상함 (Dignity and Tastefulness)

‘품위’라는 단어는 잘못 이해하기 쉬운데, 결코 특권의식이나 비교우위, 혹은 겉치레의 화려함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직업의 품위와 품격은 ‘직업적 자존감’을 의미한다. 마케팅 방법이 수의사의 직업적 자존감을 스스로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가 생각하기에 매우 중요한 핵심이다.

자신의 전문지식과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의 마케팅은 스스로 직업적 자존감을 낮출 뿐 아니라,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거나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린다. 결국, 개인의 직업만족도뿐 아니라 직군 전체의 이미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게다가 대중이 신뢰감을 가지는 수의사나 동물병원의 모습이 요란한 간판에 병원 앞에는 춤추는 바람 인형을 세워두고 1+1 수술 행사를 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 품위와 고상함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결정하는 것은 상당히 모호한 문제이므로, 수의사 사회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기준을 정해야 할 것이다.

2. 고객에 대한 정직함과 존중(Honesty and Respect for Clients)

정직함과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지난 칼럼에서도 이미 여러 번 다뤘던 내용이다. 과장과 허위가 없는 정보를 기반으로 보호자가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의사가 할 역할이라는 것이 두 번째 요소에 대한 설명이다.

3. 다른 수의사들에 대한 공정성(Fairness to Other Practitioners)

이것은 스포츠 경기로 치자면 반칙하지 말라는 것인데, 다르게 말하자면 ‘동료 간의 존중과 상생’을 의미한다. 달리기 시합을 예로 들어보자. 할리우드 액션으로 다른 선수에게 누명을 씌운다거나, 레인을 넘어가서 진로를 방해한다거나, 다른 선수와 담합하여 뒷돈을 준다거나 하는 것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선수들을 관람하는 관중은 그 광경을 어떻게 느낄까? 아마도, 선수들에게 만 정이 다 떨어질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 특히 남을 비방하는 방식의 경쟁은 결국 직군 전체의 이미지를 하락시키므로 제 살 깎아 먹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마케팅을 고민하는 시간은 더 나은 진료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이것이 명확한 문제가 있는 동료까지 감싸준다거나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상도덕은 얼핏 수의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밥그릇 싸움의 문제인 것 같이 보이지만, 분명 그 이상의 지향점이 있다. 수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군으로서 마케팅에서도 지켜야 할 도덕적 선을 요구받고 있으며, 고객(보호자), 환자, 대중, 동료 그리고 수의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 하는 직업으로서 이를 해치는 상도덕을 배척해야 한다.

끝으로, Jerrold Tannenbaum은 가장 이윤이 높고 품위 있는 판촉 기법은 수의사의 ‘좋은 의술(Good Medicine)’이라고 말한다. 다소 원론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그저 고리타분한 윤리학자의 뻔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참고자료

– Tannenbaum, Jerrold. 수의 윤리학. 2/E. Elsevier Health Sciences KR, 2009. chapter18-19

유시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돌베게, 2002. pp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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