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한국국제협력단)는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정부 공인 봉사단체 입니다.
그 중에서도 World Friends Korea는 KOICA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에서 파견되는 해외봉사단을 아우르는 통합 브랜드입니다.
KOICA 해외봉사단은 개도국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교육 및 직업훈련, 농촌개발, 정보통신 등 경제사회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습니다. 2013년 1월 기준으로 46개국 1,600여명이 활동 중입니다.
이 해외봉사단에 참여한 봉사자 중에는 수의사도 있습니다.
KOICA에 따르면 현재 르완다, 네팔, 에콰도르 등지에 총 7명의 수의사가 파견되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개도국의 낙후된 수의환경 개선에 큰 기여를 합니다.
이 중 엘 살바도르 국립대학교에 파견되어 임상기술 전수와 교류에 힘쓰고 있는 박후열 수의사와 데일리벳이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박후열 수의사님은 70년대에 수의과대학에 진학하신 후 대동물 임상분야에 매진하다가 적지 않은 나이에 용기있게 해외봉사활동에 나섰습니다.
Q. 한국국제협력단(KOICA) 수의사로서 엘살바도르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World Friends Korea(한국정부 파견 해외봉사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달라.
KOICA는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의 약자다.
과거 여러 정부 기관이나 단체에서 산발적으로 시행하고 있던 국제 협력 활동을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외교통상부 산하에서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한국 국제 협력단이다.
그 역할 가운데서도 ‘World Friends Korea’라는 대표적인 활동 로고는 개발 도상국의 여러 분야에서 진보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개도국 지역 사회 발전의 매개자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민간 외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한국정부 파견 해외봉사단 활동을 총괄 지칭하는 용어다.
Q. 엘살바도르 국립대학교에 파견되어 있는데,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활동하면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엘 살바도르 국립대학교는 엘 살바도르의 유일한 국립대학으로 수도 산살바도르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특별한 자원도 없고 산업기반이 열악하다. 때문에 교육발전을 위해 타국의 진보된 문화 및 지식 원조에 개방적이다.
KOICA와도 이전부터 호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나는 KOICA의 농업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부속건물 신축 및 전문지식 봉사단원으로 선발됐다. 수의학과가 소속된 농과대학에 파견되어, 수의학과 교수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효율적인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선진 임상 수의 기술의 보급과 교육 임무를 맡고 있다.
여기서 활동하면서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학생과 교수라는 두 부류의 집단 의식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점이다.
현 엘살바도르 국립대학교 수의학과는 6년제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5년제다. 학과 커리큘럼도 확연히 다르고, 학생수도 학년제가 아닌 레벨(니벨라=급수) 별로 제한을 두지 않아 훨씬 많은 수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 많은 학생들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본인과 본인가족들의 사회적 빈곤을 탈출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무한한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오히려 교수진들의 열악한 전문성과 소극적인 교육열이 문제일 정도로 말이다.
모든 학생들이 하나 같이 절대적인 집요함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는 점은 우리나라 수의학도들도 알고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내에서 다섯 종류의 대학과 단체에서 장기간 초청 교육을 수행했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엘 살바도르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향학열이 부족했던 것 같다. 게다가 깨끗하고 화려한 반려동물 분야를 선호할 뿐, 대동물 분야의 힘들고 다소 지저분한 환경, 유동적인 근무시간을 대부분 기피한다는 점을 아쉽게 생각했었다. 1차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산업동물 일익을 담당하는 수의사의 진료 역할이 중요한데도 말이다. 엘 살바도르 학생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반면 현지 교수진들은 의외로 학생들의 교육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강한 열정을 다소 부담감을 가지고 거부하면서 열악한 주변환경 탓으로만 돌린 채 극복의지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더욱이 대부분 중남미 남성들이 갖고 있는 지나친 우월주위와 즉흥성, 그리고 상습화된 무책임이 어우러져 마치 나의 지식교류활동으로 인해 교수 자신들의 위치가 빈약해질까봐 끊임없이 경계했다. 이렇듯 허심탄회한 인간적인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지식 경험을 공유하는 교육 활동의 분야에선 가장 큰 장애였다.
게다가 평소에 생소했던 스페인어의 언어장벽은 더더욱 감정 전달과 입장 표현에 부담감을 주었다.
정말 봉사 활동이란, 봉사자의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우월한 감정과 피봉사자에게 숨겨져 있는 열등감을 잘 조절해 나가면서 신중히 수행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새삼 느꼈다.
Q. 엘 살바도르에는 보건부에 파견된 다른 수의사도 있는데, 하는 일에 차이가 있는지
지금 아우아차반 보건부에 있는 김영재 단원은 봉사단원은 아니고 과거 있던 국가 협력 요원 제도로 군 대체 복무를 하고 있는 수의사다. 나와 달리 소동물 분야에 관심이 있어 일하는 분야가 다르다.
시니어 단원은 우대 단원으로서 일반 단원과 달리 관련 직종 10년 이상의 유경험자를 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봉사활동 현지에서 좀 다른 경제적, 물질적 대우를 받는다. 전에는 연령제한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Q. 엘 살바도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달라. 현지에서 수의사의 지위나 활동은 어떠한가? 반려동물이나 산업동물 임상환경은?
참고로 나는 여기 독특한 중남미 스페인 문화권을 접해 보고 싶은 마음에 타 국가의 여러 지원 분야를 다 마다하고 굳이 1지망, 2지망, 3지망을 모두 다 엘 살바도르로 고집한 사람이다.
중남미에 위치한 엘 살바도르는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의 작은 나라다. 하지만 주변 5개국과는 달리 7백만에 가까운 인구로 인구밀도가 제일 높으며 가장 가능성이 있는 국가다.
미국과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지금도 약 2백만의 국민들이 미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근무 송금액이 국가 자본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기후는 적도지방이지만 크게 덥지는 않으며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수도 산 살바도르는 아주 선선하여 우리나라 늦여름에서 초가을 날씨와 흡사하다. 계절은 여름과 겨울로 나뉘는데 겨울은 단지 비가 매일 밤에 내리는 우기(6월-11월)를 지칭할 뿐이다.
천연자원은 거의 없으며 커피 경작을 포함한 일차산업이 활성화 되어 있고, 모든 공산품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엘 살바도르 경제를 저해되는 요소는 무엇보다 ‘생활의 안전도’다. 지진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천연재해가 잦고, 주변 마약 생산국의 육로수송 루트라서 ‘마라’라고 불리는 갱조직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들은 쉽게 갱조직의 표적이 되며 여러 가지 위험요소로 인해 치안이 불안한 나라로 요주의 여행국가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현재 KOICA 사무소 및 한국 대사관에서는 각종 안전 지침에 따라 모든 단원들이 잘 보호되고 있다.
현지에서 수의사의 지위는 그리 특별하지 않고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워낙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사정이 빈곤한지라 반려동물이나 산업동물을 키우더라도 질환 발생 시 치료나 왕진을 잘 요청하지 않는 형편이다.
더군다나 인의 약품은 물론 수의 약품도 전부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단가 면에서 한국의 4배 가량된다. 때문에 감히 치료 할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 너무나 안타깝다. 이런 이유로 한국과는 달리 유기견의 숫자가 엄청 늘어서 어디서든 어떤 지역이던 주인 없는 유기견을 접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람들에게 질병전파나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수도 산 살바도르에는 소동물 병원이 활성화 되어 있으나 다소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실정이다, 대동물 진료는 개인적인 수의사의 왕진은 드물며 농가들은 대부분 민간 요법이나 자가치료에 의존한 채 국가 연구기관이나 공적인 치료를 원하는 형편이다.
Q. 동물병원을 제쳐두고 적지 않은 나이에 해외봉사에 나선 계기가 무엇인가? 엘 살바도르에 가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지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극히 민감한 개인적인 삶의 부분을 언급 해야 될 것 같다.
나는 다섯 형제의 막내로 가난한 시골 생활을 했다. 그래서인지 박사 학위를 가진 임상수의사로서 진정한 실력을 바탕으로 임상병원을 개원하여 누구보다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전국 제일의 대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2년 반 동안의 교원생활을 박차고 나와 동물병원을 개원했다. 진정한 수의사라면 실제 병원을 오픈하여 치료기술을 활용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평소 호기심과 모험심이 많은 천성도 한 몫 했고. 그렇게 경기도에서 11년을 활동하다가 신도시 확장으로 시장을 잃게 된 후에는 강원도 축산단지에서 다시 14년을 활동했다. 대동물 임상에 인생 전반을 전력질주 한 셈이다.
그러다가 아내를 간암으로 잃고 좌절감에 한 동안 방황했다. 어린 두 딸의 양육을 위해 마음을 다잡고 나의 삶을 던졌지만, 이번에는 생활 전반에 너무나 큰 힘이 되어주셨던 어머님이 내 곁을 떠났다. 어머님 임종 후 예전에 느꼈던 것과 같은 뼈저린 상실감에 한 동안 생활전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그제서야 내 인생을 다시 돌아 볼 시간을 가지게 됐다.
그때 내린 결론이 더 이상 헛되고 세속적인 물질추구에만 남은 인생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더 나이 먹고 내 몸이 늙기 전에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카피라이트가 바로 “새로운 삶의 개척자”라는 KOICA 봉사단원 표어였던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나의 결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루하루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 속에서, 마치 내게 주어진 인생 역전의 감사한 선물로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Q. 어릴 적 수의과대학으로 진학해 수의사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 때 부터 수의사로서 해외활동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는지
내가 수의과대학에 지원 할 1977년 당시에는 오로지 전국 국립대학교에만 수의학과가 존재하고 있을 정도로 아주 생소하고 희소한 분야였다. 본래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우리 집 개를 치료하는 것이 바라는 전부였다.
또한 원래 교육자이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내가 완전히 배워 누구를 가르치는 일이 좋았기 때문에 희소 가치가 있는 수의학과 교단에 서고 싶다는 희망도 있었다.
Q. 수의사로서 해외활동을 꿈꾸는 다른 수의사나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많다. 그들에게 특별히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다면
내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나라에서도 수의사가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추어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좋은 교육을 받은 열정 있는 젊은 수의학도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너무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학업을 위해 해외로 유학 가는 것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실제 직업으로서 해외 활동을 위한 정보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첫째로 우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와 환축 진료의 방향을 정한 다음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뒤, 늦지 않게 그 분야에서 가장 진보된 국가로 Working Holiday 를 시도 하는 것이다.
둘째 방법으로는 전공분야가 발달된 나라의 수의사 면허 시험을 직접 쳐서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다.
셋째로 정말 그 나라에 관심과 애착이 있다면 이민을 시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보통 국가간의 이민은 연령이나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무척 까다로우나, 비교적 기술 이민인 수의사 분야는 그 나라가 수의학에 관심이 많고 진보된 나라라면 아직 제약이 크게 없고 문호가 많이 개방 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저것 여건에 맞지 않지만 꼭 젊은 시절에 관련된 분야에서 수의사 해외생활을 한번쯤 해 보고 싶다면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국가기관을 통한 수의사 해외 봉사활동 (KOICA 가 대표적임) 이다. 2년간의 생활 후에는 언어도 습득하고, 그 문화권을 충분히 알게 되며 본인의 스펙도 좋아져 국내 관련분야 취업에도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허나 이 것들에는 모두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눈물겨운 각오가 필요하다는 점을 당부하고 싶다.
Q. KOICA 해외봉사단 수의사의 구체적인 근무조건에 대해 알려달라. 해외활동을 원하는 다른 수의사들에게 좋은 도움이 될 것 같다.
KOICA 해외봉사단 수의사의 근무기간은 2년이며 본인 희망 시 1년 연장이 가능하다.
각 국 마다 수의분야의 요청에 따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근무지는 옮길 수 없다. 중도에 포기하여 귀국 할 수 있다.
모집은 각국 요청이 있을 때마다 연중 수시로 KOICA 홈페이지를 통해 이뤄진다. 본인이 희망하는 곳, 희망 직종에 따라 배치가 가능하다. 봉사활동은 자기가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이라야 잘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종 시험에 합격 후 신체검사와 약 한 달 간의 국내 합숙 훈련을 마친 뒤 국가별로 출국 한다. 근무지에 도착하면 다시 두 달 간 현지 적응 훈련기간을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현지어를 배우고 해당 국가의 문화를 체험한다.
급료는 각국별로 현지 물가 사정에 따라 주거비와 생활비가 지급되는데, 본인의 경우는 엘 살바도르의 현지 사정에 따라 주거비 최고 570 불 정도, 생활비가 1000 불 정도 지급 받는다.
엘 살바도르의 경우 공산품을 제외한 생활비가 상상외로 저렴한 하기 때문에 급료만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또한 2년의 봉사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국내 정착금으로 한 달에 500 불씩 24 개월 12,000 불을 지급해줍니다. 이외에도 현지 봉사활동 물품 구입비, 현장 사업비등은 따로 주어진다.
수의사는 희소가치도 있고 일도 전문적이기 때문에 KOICA 해외 활동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Q. 수의사 해외활동이 지금보다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수의사 봉사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견해를 말해달라.
우리나라의 수의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개도국 수의학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임상을 꿈꾸는 대부분의 수의학도들이 반려동물 쪽으로만 전공을 국한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개도국에서는 경제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산업동물 분야의 전문성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Q. 엘 살바도르 봉사활동은 언제까지 인가? 앞으로도 해외봉사활동에 계속 참여하시고 싶은지
2014 년 11 월 11일 까지가 2년의 임기지만 봉사 활동의 연장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외봉사활동은 기회가 닿는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하고 싶다.
Q. 수의사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나 꿈이 있다면
이제 과감하고 용기 있게 내디딘 첫 발걸음을 기회로 평생 임상 수의사로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싶다. 전세계를 돌며 봉사하면서 생활해 나가는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