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크 파이퍼 교수가 보는 한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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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역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중 한 명인 더크 파이퍼(Dirk U. Pfeiffer) 홍콩시립대 수의과대학 석좌교수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위험을 경고하고 이에 대비한 위험분석(Risk assessment)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강화도를 중심으로 확산되다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지난 9월 30일 파이퍼 교수에게 국내 아프리카돼지열병 상황과 향후 대처 방안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습니다.

더크 파이퍼 홍콩시립대 수의과대학 교수
더크 파이퍼 홍콩시립대 수의과대학 교수

Q. 우선 한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에 대한 총평을 부탁한다

한국 정부의 수의 서비스(veterinary service)는 동물 질병 발생에 대응하는데 매우 능숙하고 경험이 많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돼지열병(CSF)을 겪어봤다는 사실은 질병 발생 시 대응절차가 잘 준비되어 있다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한국은 강력하고 효과적인 동물보건 관련 규정을 가지고 있어서 축산업의 사양관리나 복지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특히 농장에서 폐사한 돼지에 대한 진단 서비스를 비롯한 예찰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전국적으로 돼지와 축산관계차량의 이동을 전부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Q. 다른 아시아 국가의 ASF 발생은 백야드 농장, 잔반급여 등의 특징으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반면 한국은 산업화된 대규모 농장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한 의견이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타입의 돼지농장이든 (아프리카돼지열병에 걸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농장별로 차단방역 수준이나 돼지 밸류체인 중 다른 부분과의 연관성에 따라 위험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물론 큰 농장일수록 더 나은 사육시설을 위해 투자하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보다 믿을 만한 차단방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농장이 직원이나 방문자 모두에게 차단방역 수칙을 제대로 지키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Q. 한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하기 1주일여 전에 태풍 링링이 지나갔다. 혹자는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태풍을 계기로 북한과 연결된 임진강 수계로 유입됐고 이를 통해 농장으로 확산됐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임진강 인근에 소독을 실시하자거나, 심지어는 수계 인근의 돼지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을 언급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태풍이나 물로 인해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very unlikely).

그러므로 (강변 소독이나 수계 인근의 예방적 살처분 같은) 극단적인 방역조치는 정당화될 수 없다.

Q. 9월 24일부터 27일까지 강화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이어지면서, 방역당국은 강화도 내 모든 돼지를 예방적 살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과도한 조치인지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건에 대한 세부적인 역학조사 보고서를 보지 않고는 뭐라 언급하기가 어렵다.

어떤 동물 전염병이든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를 정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결정 중에 하나다.

만약 감염원이 불분명하고 돼지의 이동제한 전에 얼마나 바이러스가 퍼졌을 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라면, 넓은 범위의 살처분이 예방적 수단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Q.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북한 접경지역 인근에만 집중되는 것이 특이하다. 한국은 모든 축산관계차량의 이동을 GPS로 추적하는데, 이들의 이동은 비단 북한 접경지역 인근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알려졌다. 야생 멧돼지를 의심해보려 해도 한국에서는 아직 야생 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양성 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9월30일 기준).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다른 경로가 있나

어림짐작으로 추측할 수는 없다. 발생농장 각각의 역학조사 결과를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Q. 첫 발생농장을 기준으로 잠복기(4~19일) 만료가 다가온다.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

면밀한 역학조사를 통해 발생농장의 바이러스 유입원과 발생농장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수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경로를 추적해야 한다.

발생농장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살피는 동시에, 같은 지역에서 발생농장과 비발생농장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돼지의 이동은 발생지역 내부로 제한되어야 한다. 이동제한은 아주 강력하고 중요한 대응수단이다. 다만 한국 양돈산업의 경제적 기반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제한 범위를 합리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발생농장 주변으로 예찰지대(surveillance zone)를 설정해 운영해야 한다.

효과적인 예찰을 통한 조기 검출이 핵심이다. 도축장에서의 검사, 농장의 돼지 폐사에 대한 모니터링과 함께 감염 위험이 높은 농장은 직접 방문해서 점검해야 한다.

다만 사람의 이동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방역업무로 인한 방문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아주 강력한 세척·소독 프로토콜을 적용해야 한다. 언제든 돼지가 전염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불필요한 방문은 삼가야 한다.

또한 양돈업계와 매우 긴밀하게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

방역조치로 인한 손실에 대한 보상책(compensation)은 업계의 이해관계자들이 의심신고를 접수하고 차단방역 수칙을 따를 수 있도록 유도하기에 충분할 만큼 제공되어야 한다.

Q.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야생 멧돼지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수렵을 장려해야 하는가?

혹자는 멧돼지 수렵을 늘리는 것이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이 이어지고 있는 북한 접경지역의 멧돼지 수렵을 늘려도 ‘진공효과’로 인해 개체수가 금방 회복될 것이며, 수렵이 멧돼지 이동을 늘려 오히려 위험하다는 얘기다.

야생 멧돼지 개체수는 한국의 생태계에 적합한 서식밀도를 갖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멧돼지 수렵도 일정 정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멧돼지의 이동을 증가시키지 않는 선에서 진행돼야 한다. 특정 지역의 멧돼지 개체수가 너무 많이 제거돼 주변의 고밀도 서식지역으로부터 멧돼지를 끌어들이는 현상(dispersal sink)은 피해야 한다.

또한 사냥꾼(hunter)들이 멧돼지에 대한 아프리카돼지열병 예찰에 기여해야 한다. 진단검사에 필요한 샘플을 반드시 제출하도록 규정해야 한다. 또한 야생멧돼지의 사체가 발견되면 반드시 신고하고 검사하도록 해야 한다.

Q.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환경 저항성이 강하다 보니 ‘재발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곧 바이러스 확산을 멈추는데 성공한다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

한국의 양돈업계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를 차단방역 행동(biosecurity behavior)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재발뿐만 아니라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PRRS), 돼지써코바이러스(PCV) 등 양돈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전염병의 발생위험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항생제 사용량을 줄여 내성문제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 주변국가로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재유입될 위험은 얼마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러한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한국 내로, 농장 안으로 바이러스가 들어온 경로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Q. 마지막으로 첨언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보다 크게 보면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를 돼지 사육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는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기후변화를 고려할 때 인류는 돼지고기를 포함한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향후 30~50년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늘어날 중산층은 엄청난 양의 고기를 소비하려 할 것이다. 선진국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결국 조류인플루엔자나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전세계적인 확산이 세계화와 경제발전으로 인한 육류소비 증가, 축산물 교역 확대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뷰에 협조해주신 김연중 수의사에게 감사드립니다-편집자주>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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