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노벨 생리의학상, 세포의 산소농도 반응기전에 주목
카엘린·랫클리프·세멘자 공동 수상..빈혈·암 치료 전략 제시
‘세포의 산소 가용성을 감지하고 그에 적응하는 능력’을 규명한 윌리엄 카엘린 미국 하버드대 교수, 피터 랫클리프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그렉 세멘자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2019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했다.
이들은 세포가 변화하는 산소 가용성(oxygen availability)을 감지하고 그에 적응하는 기전을 발견했다. 변화하는 산소 수준에 따라 유전자 활성을 조절하는 분자시스템(molecular machinery)을 확인한 것이다.
노벨상위원회는 7일 “산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수 세기 동안 이해되었지만, 세포가 산소 수준에 적응하는 기전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들의 발견은 빈혈, 암 등의 질병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HIF의 등장
진화 과정을 거치며, 우리 몸은 저산소 수준(hypoxia)에 대응해 조직과 세포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하는 기전이 발달했다.
호흡을 빠르게 하는 것 말고도, 우리 몸은 에리스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EPO는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의 생산을 촉진한다.
이러한 호르몬 효과는 20세기 초에 이미 밝혀졌지만, 구체적으로 이 과정에 산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렉 세멘자 교수는 저산소 상황에서 EPO 발현 증가를 매개하는 DNA가 있음을 밝혀냈으며, 이 DNA에 결합하는 단백질 복합체를 발견했다. 그는 이 복합체를 저산소유도성인자(HIF: hypoxia-inducible factor)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산소 농도가 낮은 상태에서 반응하는 세포 속 물질이 무엇인지를 밝혀낸 것이다.
이 HIF는 HIF-1α와 ARNT(aryl hydrocarbon receptor nuclear translocator, HIF-1β)라는 두 DNA 결합 단백질로 구성되었다.
피터 랫클리프 교수는 ‘산소의존성 EPO 유전자 조절’을 연구했으며, 두 연구팀 모두 HIF가 거의 모든 조직에서 기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PO는 일반적으로 신장세포에서 생성된다고 알려져 있었음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견이다.
뜻밖의 VHL
산소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HIF-1α가 생성되고 보호된다면, 산소수준이 높을 때 HIF-1α는 분해되고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프로테아좀(proteasome)은 HIF-1α를 분해하는 세포기구이다. 이때 유비퀴틴(ubiquitin)이라는 표지가 HIF-1α에 붙고, 프로테아좀은 이 표지가 붙은 단백질을 분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산소 수준이 낮을 때 유비퀴틴이 HIF-1α에 결합하는 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암 연구자인 윌리엄 카엘린 교수는 VHL(Von Hippel–Lindau) 유전병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VHL 단백질이 저산소 상태에 대한 제어반응에 관여함을 밝혀냈으며, 추가적으로 VHL이 단백질에 유비퀴틴을 부착하는 복합체의 일부임을 증명했다.
피터 랫클리프 교수는 더불어 ‘VHL은 HIF-1α가 정상적인 산소수준에서 붕괴될 수 있도록 물리적으로 결합함’을 밝혀냈다.
HIF-1α, BICD1과 cPIP
대부분의 암세포들은 산소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성장한다. 초기 암 조직은 분열이 왕성해 모세혈관으로부터 떨어져,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윌리엄 카엘린 교수는 VHL 유전자가 망가진 암세포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의 HIF-1α을 발현함을 밝혀냈다. 암세포는 산소가 낮은 상태에서 생존을 돕는 HIF-1α 발현을 증가시켜 혈관이 연결될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다.
이식된 줄기세포 또한 암세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 처음 이식된 줄기세포는 혈액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암세포와 마찬가지로, 줄기세포 또한 HIF-1α을 통해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서울대 수의대 한호재 교수팀은 지난 10여년간 생리적 허혈 상태(physiological hypoxia)에서 HIF-1α가 세포 및 생체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다. 최근 HIF-1α를 핵 안으로 이동하도록 돕는 단백질과 그 단백질을 조절하는 물질을 밝혀냈다.
미세소관을 따라 이동하는 운반단백질 복합체의 일부인 BICD1(Protein bicaudal D homolog 1)이 낮은 산소 수준에서 HIF-1α가 핵 안으로 이동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진이 개발한 cP1P(O-cyclic phytospingosine 1-phosphate) 물질이 BICD1의 생성을 촉진하고 BICD1이 HIF-1α와 결합하는 것을 돕는다는 것을 밝혔다.
한호재 교수는 “유전자 편집과 cP1P를 이용한 BICD1 매개 허혈 적응 조절은, 장기 또는 줄기세포 이식 생착률과 치료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바이오치료제 개발 전략이 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 외에도 분화세포의 이식, 암세포의 허혈 작용 조절을 통한 항암제 개발, 미세소관 네트워크 조절이 중요한 신경퇴행성 질환 연구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참고
Lehninger, Albert L, David L. Nelson, and Michael M. Cox. Lehninger Principles of Biochemistry. New York: Worth Publishers, 2000. Print. p.546
Ryu et al. Regulation of stem cell fate by ROS-mediated alteration of metabolism. International Journal of Stem Cells (2015) 8(1):24-35
Lee et al. Role of HIF1α regulatory factors in stem cells. International Journal of Stem Cells (2019) 12(1):8-20
Lee et al. “O-cyclic phytosphingosine-1-phosphate stimulates HIF1α-dependent glycolytic reprogramming to enhance the therapeutic potential of mesenchymal stem cells”, Cell Death and Disease (2019)10:590
Lee et al. “BICD1 mediates HIF1α nuclear translocation in mesenchymal stem cells during hypoxia adaptation”, Cell Death&Differentiation (2019) 26:1716-1734
Press release: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2019. NobelPrize.org. Nobel Media AB 2019. Sun. 13 Oct 2019.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2019/press-release/>
박진혁 기자 brianjing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