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치는 동물병원 이름, 후발주자가 바꾸라고 요구한다면

‘D동물병원’ 상표권 등록하고 기존 병원에 상호변경·사용료 요구 논란..선사용권 인정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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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상호를 가진 동물병원 사이에 ‘이름을 바꾸든지 사용료를 내라’며 상표권 분쟁이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상호를 쓰는 동물병원 중 한 곳이 상표권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출원 전부터 통상적으로 운영하던 병원에게는 해당 상호를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같은 상호를 쓰는 동물병원이 전체 병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은만큼 주의가 요구된다.

 

전국에 D동물병원은 저희 병원 한 곳이면 좋겠다’ 기존 병원에도 상호변경·사용료 요구

대한수의사회 홈페이지와 국내 최대 임상수의사 커뮤니티 ‘대한민국수의사[DVM]’에는 6일 상표권 분쟁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었다.

‘D동물병원’으로 6년째 영업 중인데, 작년에 개업한 동일한 상호명의 ‘D동물병원’으로부터 ‘특허청에 상표를 등록했으니 상표권 침해가 없도록 상호명을 변경하든지, 아니면 연 300~500만원의 사용료를 내라’는 통보를 이메일로 받았다는 것이다.

상표권 사용계약을 맺더라도 세종D동물병원 등 지역명을 추가하는 형태로 상호를 일부 바꿔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해당 글에 공개된 통보 이메일에는 ‘전국에 D동물병원은 저희 병원 한 곳이면 좋겠다’며 ‘상호명 선사용을 주장하는 원장님은 상표권 침해 형사고소,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경고성 문구도 포함됐다.

이 같은 분쟁에 대해 임상수의사 커뮤니티에서는 비판 여론이 거세다.

이미 D상호를 쓰는 동물병원이 많았는데도 해당 상호를 따라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표권을 먼저 확보했다는 이유로 이미 영업중이던 동물병원의 상호까지 강제로 바꾸게 만드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D상호를 사용하는 동물병원은 포털 사이트 등록을 기준으로 전국에 10여개로 확인된다.

현행 상표법도 선사용권을 인정하고 있다

선사용권’ 상표등록출원 전부터 사용하던 경우는 계속 사용할 권리가 인정된다

개별 병원에게 선사용권 해당되는지 검토 후 대응해야

이처럼 상표권자가 상호변경이나 사용료 지급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해당 상표 출원 전부터 운영해온 경우라면 이에 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영두 특허법인 인벤싱크 변리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아주 전형적인 상표권 분쟁”이라며 “그래서 상표법이 ‘선사용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목했다.

현행 상표법은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하더라도 ▲부정경쟁 목적 없이 타인의 상표등록출원 전부터 국내에서 계속하여 사용하고 있고 ▲타인의 상표등록출원 시에 국내 수요자 간에 그 상표가 특정인의 상품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 있다면 해당 상표를 계속 사용할 권리(선사용권)를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다(제99조).

D동물병원의 상표등록출원 시점으로 알려진 2019년 4월 이전부터 운영되던 동물병원은 D상호를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출원시점 이후에 신설된 D동물병원의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영두 변리사는 “해당 상호를 최초로 사용한 자만 상표권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상표권 형성) 이전부터 사용하던 경우에는 선사용권 제도를 통해 (계속 사용할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라며 “변리사를 통해 선사용권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그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동물병원 개설 신고확인증 등 해당 상표의 출원시점 이전부터 동물병원을 운영했다는 증빙을 포함해 변리사로부터 검토를 받고, 회신여부나 내용을 판단하라는 것이다.

김영두 변리사는 “돈을 뜯어내겠다는 등의 부정한 목적이 다분하고 업계에서 이미 많이 통용되는 상호라 상표권을 특정하기 어렵다면, 최악의 경우 해당 상표등록의 무효심판을 청구할 수도 있다”면서도 “선사용권과 달리 무효심판의 요건이 복잡한만큼 개별적으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정 상호로 동물병원을 검색해보면,
전국 각지에서 같은 이름의 동물병원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동물병원 3분의1이 중복 상호..가이드 만들어야

D동물병원의 상표권 분쟁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동물병원 상당수가 겹치는 상호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수의사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을 기준으로 같은 상호를 2개 이상의 동물병원이 함께 사용하는 경우는 1,567개소에 달했다. 당시 전체 동물병원의 35%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상표권이 등록된 동물병원 명칭은 많지 않다. 특허정보넷 키프리스에 따르면 동물병원, 동물메디컬센터, 동물의료센터 등의 명칭으로 출원되거나 등록된 상표는 112건에 그친다.

하지만 이미 출원·등록된 동물병원 명칭을 모르고 사용했다가 상표권 침해에 해당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개원을 준비하는 예비원장이라면 구상 중인 상호가 이미 상표로 등록되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다.

아직 상표권이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겹치는 상호를 사용 중인 병원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영두 변리사는 “앞으로도 해당 상호로 동물병원만 운영하려면 선사용권 인정 여부만 확인해 두셔도 좋다”면서도 “해당 상호로 다각도의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면 먼저 상표권을 취득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번 정한 동물병원 상호가 갑자기 바뀌면 고객관리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회원 단합을 저해하는 상표권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임상 원장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두 변리사는 “상호를 둘러싼 상표권 분쟁이 자영업에서 종종 발생한다”며 개별 병원단위로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상표권을 등록했다고 기존 동물병원에게 상호명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변호사 자문을 통해 대응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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