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파랑 (지은이 천선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과학소설이 다루는 것은 인간의 삶이다. 과학기술이 깊이 들어와 나의 모든 것과 닿아 있는 지금의 환경에서,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과학소설의 “쓸거리”를 찾을 수 있다. 작가는 그 쓸거리를 사회 속 마이너리티와 비인간 존재, 그리고 그들의 연대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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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가까운 미래의 어느 시점, 경주마의 기수로 “쓰이는” 로봇 콜리에서 시작한다. 생산 단계에서 사고로 필요 없는 칩이 장착된 콜리는 그 여파로 질문이 많다.
이 휴머노이드는 경마가 없을 때 작동을 멈추고 접혀서 작은 공간에 보관된다. 콜리에게 허용된 환경은 한 조각의 하늘뿐이다. 하늘 조각을 보면서 지내다 경주가 있을 때만 나와 경주마인 투데이와 함께 달린다.
콜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투데이가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콜리는 투데이와 달릴 때 함께 “호흡”한다고 느낀다. 둘이 함께 달리는 것은 이들을 생산한 인간들에게 이들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혹사당하고 병이 나서 더 이상을 달리기 어려워진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콜리는 스스로를 망가뜨려 질주를 멈춰 버린다. 이렇게 고장난 로봇과 말은 폐기처리와 안락사를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이들과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영리한 중학생들, 장애인 소녀, 정이 많은 사육사, 젊은 수의사, 말단 기자가 로봇을 고치고, 말을 구하는 일에 차례대로 동참한다. 이들 각각은 다양한 편견과 그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소녀는 로봇으로 인해 아르바이트 일을 잃게 된다. 첨단 수술비가 없어 장애를 치료하지 못한 소녀의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의 장애가 버거워 떠났다.
사육사와 수의사는 자신들의 마음과는 다르게 동물을 돌볼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고 있다. 경마와 관련된 비리를 쫓고 있던 기자는 겨우 그 증거를 잡은 참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나마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말을 구하는데 기꺼이 써 버린다. 힘없고 약한 누군가에 대한 본능적인 보호 행위이자,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세상의 잔인함에 대한 도전이다.
빨리 뛰어야 하는 경마에서 홀로 천천히 완주하는 투데이는 거창한 설명 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물론, 경주마 투데이를 구한 것이 이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들은 성장했고, 세상은 조금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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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수의사인 복희의 입을 빌어 우리가 동물을 보며 종종 느끼는 무력감과 책임감이 섞인 복잡한 심정을 잘 표현해 준다.
경주마들이 잘 달리지 못할 때 안락사당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복희는 말한다.
“저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무턱대고 반대하는 건 결국 그 아이들에게 알아서 죽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미 이 행성은 인간 중심의 행성이 됐잖아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느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소설에서 약간 아쉬운 점은 다른 존재들과 다르게 경주마인 투데이는 생존의 욕구만을 가진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동물에 대한 배려를 한답시고 이들의 능력을 과도하게 의인화해 그리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우리가 동물을 이해할 수 있는 정직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드러내는 탐욕뿐인지도 모르겠다.
휴머노이드를 고치며 어린 소녀는 이렇게 가르친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바람과 하늘과 행복과 반가움 같은 개념이 로봇의 질문으로 인해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휴머노이드인 콜리에게는 생산 당시 천 개의 어휘가 주어졌다. 그 어휘가 콜리의 세상을 만든다. 그가 그에게 허락된 작은 하늘의 색, 마지막 순간에 말에서 떨어지면서 바라보는 그 하늘의 색, 파랑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어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느낀다. “천 개의 파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이라고 콜리를 표현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를 돌아볼 때 “인간적인”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폭력과 혐오를 쉽게 학습하는 AI 프로그램이 인간의 생각과 언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최근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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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 아닌 기계 또는 인공지능과 생물의 소통은 어느 정도 가능할까?
이 책의 인간들은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갖지 않은 로봇과 대화하며 인간과 같은 고통을 겪는 동물에 공감한다.
어쩌면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를 연결하는 데는 이성의 기반이 되는 언어나 학습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극단의 사고와 학습의 끝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연결과 연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속도에 의해 누군가가 피해 받지 않아야 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작가의 따뜻하고 올바른 의도가 소설 속 모든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에게 투영된 작품이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 교실)
한국수의교육학회가 2021년을 맞이해 매월 수의사, 수의대생을 위한 추천도서 서평을 전달합니다. 다음 서평은 3월에 게재됩니다.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