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AI 백신 놓고 찬반 평행선 지속‥전문가 의견은
구제역 백신 교훈 되새겨야 ‘준비는 필요하다’ 10개월이면 산란계·종계 전두수 접종분 생산가능
고병원성 AI 백신 도입을 두고 민관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학계·업계에서 도입론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방역당국은 입장변화는 없다며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원장 김재홍)은 21일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고병원성 AI 백신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AI 백신에만 초점을 맞춰 본격적인 전문가 간담회가 열린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고병원성 AI 백신의 필요성과 도입 방법론, 정부 입장 등을 나누어 소개한다.
차단방역만으로 AI 발생 못 막는다? 엇갈린 진단
이날 발제에 나선 송창선 건국대 교수는 “고병원성 AI의 출발점인 중국 재래시장과 철새는 어차피 없앨 수 없다. 철새에서 가금으로의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해보려고 했지만 2003년부터 2021년까지 계속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16-17 대규모 AI 피해 이후 농장의 차단방역 인프라가 상당히 향상됐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겨울 H5N8형 고병원성 AI 원발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 지목됐다.
권혁준 서울대 교수은 “농장 간 전파를 막는데는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지만, 결국 원발 발생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질병관리등급제를 한다면 등급이 높았을 농장 상당수가 이번에 발생했다”며 차단방역에 더해 가금개체의 면역력(백신)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역당국의 입장은 달랐다. 고병원성 AI 방역정책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정책국 황성철 서기관은 “지난 겨울 (시설이 잘 갖춰진) 큰 가금농장에서도 방역조치 관련 지적사항이 없는 곳은 없었다. 현장점검에서 관리 미흡이 적발된 곳이 꽤 많았다”고 말했다.
‘농장의 차단방역만으로는 고병원성 AI를 막을 수 없다’는 현장 시각과 ‘아직 더 개선해야 한다’는 방역당국의 시각이 엇갈리는 셈이다.
차단방역 선수들 모두 번아웃..살처분 동물복지 피해도 방역 지표 삼아야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고병원성 AI를 막는 수의사 측면에서 보면, 지방공무원부터 연구자까지 모두 번아웃됐다. 반면 임상수의사는 일이 끊겨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의사들도 살처분 정책을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발생시 이동제한, 살처분은 물론 지역의 방역초소·소독시설 운영, 출하·입식마다 따라붙는 예찰·정밀검사, 특정 지역의 가축·분뇨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 오히려 늘어나는 예외적 이동승인 관련 업무 등 방역업무는 쌓여만 간다. 가축방역관이 부족한 가운데 이런 조치들을 제대로 하려면 엄청난 과로를 감수해야 한다.
대규모 살처분·도태로 질병 확산을 막는 것을 ‘성공’이라 보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지목했다. 과거 살처분 정책을 평가할 때 동물복지는 고려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동물의 피해도 평가지표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염되지 않은 가축을 살처분하는 정책보다, 백신을 접종해 살리는 쪽이 동물복지 측면에서는 월등하다.
상시백신+살처분 병행 정책, NDV 벡터 백신 거론
현재 정부는 1천만수 규모의 긴급백신 접종이 가능한 항원뱅크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살처분정책만으로 컨트롤이 불가능해진 대규모 감염상황에서 사용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인데, 이미 그 시점에서 사용하기엔 1천만수분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백신접종 후 면역형성기간까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송창선 교수는 “AI 백신을 쓴다면, 상시백신과 발생시 살처분을 병행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백신으로 피해를 줄이면서,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것이다.
송 교수는 “현재도 조리된 가금산물은 수입하고 있다. 백신접종 청정국 지위만 유지하면 (냉장·냉동 계육 등의 수입 방어에)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뉴캐슬병바이러스(NDV)에 기반한 벡터백신 활용 방향도 거론됐다. 조선희 ㈜바이오포아 대표와 송창선 교수 모두 자체 개발한 고병원성 AI 벡터백신에 기대를 걸었다.
조선희 대표는 “직접 주사해야 하는 불활화백신(오일백신)과 달리 NDV 벡터 백신은 분무접종이 가능하고 생산·접종 비용이 낮아 경제적”이라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활용될 정도로 NDV 벡터 백신의 안전성은 검증됐다. 기술 검토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벡터백신으로 면역을 유도한 후 오일백신으로 부스팅하는 방법으로 산란계·종계에서도 면역력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10개월이면 전국 산란계·산란종계 접종 분량 백신 생산 가능
경기도 산란계·종계 시범도입 제언도
이낙형 고려비엔피 전무는 “5~6개 동물백신제조사가 참여하면 산란계·산란종계 전두수를 2회 접종할 분량의 고병원성 AI 백신(오일백신)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비엔피는 현재도 정부의 고병원성 AI 백신 항원뱅크를 운용하고 있다. 운용기간은 2022년까지다.
다만 시간 여유와 사용 보장을 백신생산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종란을 활용해서 백신을 제조하려면 종란을 확보하는 시간부터 필요하다. 수개월 후 사용할 백신을 미리 대량생산하는 만큼 갑자기 사용하지 않게 되어 버리면 업체는 큰 손실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산란계·산란종계는 고병원성 AI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크면서 사육기간이 길어 백신접종의 우선 대상으로 꼽힌다.
이낙형 전무는 국내 산란계·산란종계 7천만수가 2회 접종할 1억4천만수분의 백신을 만들기 위해 종란 확보에 5개월여, 백신 생산에 5개월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사람에서 계절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드는 것처럼, 연초에 백신 타입을 결정해 생산에 돌입하면 다음 겨울에 돌입하는 시기에는 백신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병원성 AI 피해가 큰 경기도에서는 경기도의 산란계·종계 만이라도 백신을 시범도입하자는 입장이다.
안길호 팀장은 “경기도는 제한적으로 산란계·종계의 백신 시범도입을 원한다”고 말했다. 윤종웅 회장도 “당장 전두수에 백신을 도입하기보다 경기도 등 현장에서 시범도입해 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제역 백신의 교훈, 사전 대비·농가 교육 강조
고병원성 AI 백신과 관련해 구제역 백신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는 지적도 거듭됐다. 백신 도입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은 갑자기 찾아오고, 백신 도입 후에도 물백신 등 논란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연철 사무총장은 “(구제역처럼) 정치적으로 백신도입을 결정해 갑자기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AI에서 오지 말란 법이 없다”며 “당장 쓰지 않더라도 AI 백신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창선 교수도 “살처분에 투자하는 예산의 100분의 1만이라도 (백신 관련) 업계와 연구를 지원한다면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농가 교육의 중요성도 지목됐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변이가 활발한데다 백신을 하기 어려운 축종도 있는만큼 백신을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농장 발생 가능성이 있지만, 가금농장이나 외부에서는 ‘백신을 썼는데 왜 발생하느냐’며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제역 백신도 도입 후 발생이 거듭되며 농가의 접종기피현상, 물백신 논란 등이 가중됐다.
김재홍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은 “백신을 도입하면 농장이 차단방역에 소홀해질 우려가 크다. 굉장히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政 ‘기본적으로 백신정책 변함없다’ 신중론 여전
황성철 서기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기본적으로 백신정책은 변함없다”고 선을 그었다.
오리에서 백신접종이 어렵고 양계협회는 찬성, 오리협회는 반대 등 업계의 의견도 갈린다는 점을 지목했다.
경기도에서 제안한 일부 지역 대상 시범사업 접근법에도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어느 농가가 시범사업에 참여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병원성 AI 발생이 심해진 프랑스에서도 백신도입을 고려치 않는다는 점을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 백신을 사용하지 않는) 선진국 사례를 그대로 국내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목했다.
송창선 교수는 “전세계적인 AI의 진원지(epicenter)는 중국 산둥성이다. 화약고를 옆에 두고 거의 매년 발생하는 우리나라와 프랑스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안길호 팀장도 “프랑스가 중국 바로 옆에 있었어도 백신을 고려하지 않았을 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백신접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좌장을 맡은 김재홍 원장이 “전문가들이 모두 (백신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는 오해하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김재홍 원장은 “개인적으로도 백신하지 말자는 입장이었지만, 최근에는 다시 논의해봐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며 “철새에 의한 직접 전파로 3천만수의 가금을 살처분하는 상황이 거듭된다면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도 “백신을 접종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면 되는 거 아니냐는 농가들도 나올 것”이라며 “수의사회도 백신에 대한 입장을 바꾸어 가고 있다. 정부도 무조건 안된다는 생각만 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