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가축방역심의회 서면심의 일변도‥일방통행 지적
공익법률센터 농본 ‘2019년 이후 가금분과 심의회, 모두 서면으로 대체’
지난 겨울 H5N8형 고병원성 AI 사태로 3천만여수의 가금이 살처분됐지만,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축방역심의회는 서면심의로만 진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하승수)은 농식품부로부터 2019년 이후 중앙가축방역심의회 심의자료를 받아 9일 공개했다.
중앙가축방역심의회(이하 심의회)는 고병원성 AI,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 주요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방역정책을 결정하는 심의기구다.
일시이동중지명령(스탠드스틸)을 발동하거나,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조정하는 등 중요한 정책변경은 대부분 심의회 의견을 수렴해 결정된다.
심의회는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을 위원장으로 16명의 공직자와 학계, 축산단체, 민간 전문가 등 총 92명으로 구성된다.
농본은 “지난 겨울 AI로 (발생농장) 반경 3km 예방적 살처분을 강행하면서 2,800만수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농식품부는 살처분을 밀어붙였다”면서 “심의기구 역할을 해야 할 중앙가축방역심의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농본이 농식품부로부터 공개 받은 2019년 이후 심의회 심의자료를 검토한 결과, 고병원성 AI를 다루는 가금분과는 20차례 심의를 벌이면서 모두 서면심의로 대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서면심의에서 농식품부가 제안한 안건은 모두 그대로 통과됐다. 심의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한 셈이다.
농본은 “코로나19 등의 상황이 있었다고 해도 줌회의 한 번 열지 않았다”며 “3km 예방적 살처분의 타당성에 대해 전문들이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지적은 업계에서도 나왔다.
지난 2월 대한수의사회와 한국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이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개최한 고병원성 AI 방역정책 토론회에서는 ‘심의회가 일방통행식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거듭됐다.
각 위원에게 별도로 서면을 보내 찬반만 묻다 보니 심의회에서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수 없고, 현장에서 겪는 문제가 제대로 수렴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그나마 법에 의해 구성된 심의기구조차 형식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기존의 가축전염병 대책은 사실상 관료들이 결정했다고 봐야 한다”며 “말로만 전문가 참여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앙가축방역심의회가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