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학 A to Z] School:소동물 임상실습 [2부] 임상 로테이션
로테이션 만족도 다양..대학원·전문의 진로 희망은?
[1부] 실습 교과목(보러가기)에서 이어집니다
임상 로테이션 만족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학교에서는 임상 로테이션이 없었지만, 현재는 모든 학교에 도입됐습니다.
로테이션 시기는 다르지만 절반 이상의 대학에서 두 학기 동안 진행됩니다. 강원대, 경북대, 전남대, 충남대 응답자들은 한 학기만 로테이션을 돈다고 답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로테이션이 일주일에 며칠동안 진행되는지, 하루에 몇 시간을 수행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별로 배정된 임상 로테이션 실습시간을 산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같은 학교 내에서도 응답이 달랐지만, 가장 많이 나온 공통된 응답 위주로 계산했습니다).
처음 설문을 만들 때는 ‘임상로테이션 시간이 많을수록 만족도도 높을 것이고, 적을수록 낮을 것이다’라고 가정했습니다.
위 그래프를 보면 전반적인 경향은 그러했지만, 모든 대학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습니다.
실습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서울대와 건국대의 만족도는 각각 4점, 3.63점으로 평균보다 높았습니다.
반면 제주대는 3번째로 실습시간이 많음에도 만족도는 2.8점으로 낮은 편이었고, 전북대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런 학교의 학생들은 개선점으로 “체계적인 시스템의 부재로 다양한 경험을 하기 힘들다”, “아무것도 안하고 버려지는 시간이 아깝다”, “케이스 발표의 의미를 모르겠다. 한다고 해서 질병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부담감만 높고 입원부터 퇴원까지 다 보지도 않는데 왜 하는지 모르겠다” 등을 지적했습니다.
로테이션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경북대와 충북대는 각각 2.6점, 2.5점으로 낮았습니다.
전남대의 경우 로테이션 시간은 평균이었지만 만족도는 1.5점으로 최하위였습니다. 다만, 전남대는 응답자가 총 2명으로 매우 적었기 때문에 다소 예외로 봐야 할 듯합니다.
수백시간의 임상 로테이션을 돌면서 얼마나 진료에 참여하는지를 물었습니다.
67.2%의 학생들이 TPR 측정 등의 비침습적인 검사를 진행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환자를 그냥 보기만 한다는 응답도 21.9%에 달했습니다.
반면 채혈과 주사 등 침습적인 행위를 하는 학생들은 단 5명에 불과했습니다.
환자가 처치실에 들어오기 전, 학생들이 보호자와의 상담을 직접 진행하는 학교는 단 하나, 서울대였습니다. 그 외 학교들은 진료실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대학원생 선생님의 문진을 참관만 하고 일부 학생들은 문진마저 참관하지 못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의과대학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 수의대의 커리큘럼에 ‘보호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스킬’ 수업이 있습니다. 국내 수의대 역시 적어도 소통 관련 수업을 듣거나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등의 실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의대에서 환자 전문 배우를 섭외해 ‘진료 수행 평가(CPX)’를 진행하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조선일보 20216년 2월 20일자 ‘[Why] 의대생 잡는 환자? 의대생 돕는 배우!’ 참고)
서울대, 건국대, 충북대에서는 임상 로테이션을 외부 병원에서 진행하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저희 학교(전북대)도 이를 도입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학교가 있는 지역을 생각하면 충북대처럼 주변에 큰 도시에 제2동물병원을 짓지 않는 이상 힘들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를 진행할 인프라가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외부 로테이션에서 실제 현장의 업무와 분위기를 알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반면 형식적인 외부 실습일 뿐이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혹평도 나왔습니다. 로컬 동물병원에서는 사실상 보정 이상의 것을 실습하기 어렵고, 오히려 대학에서 이론적인 내용에 기반해 실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습니다.
전반적인 임상 로테이션의 개선점 역시 교과목 실습과 마찬가지로 ‘직접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늘려달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보호자와 문진을 직접 한다거나, 개개인이 진료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이 밖에도 외부 로테이션 도입, 비임상 희망자에게는 실험실 체험 기회 제공, 본과 1학년부터 외부 실습 기회 제공 등의 의견도 나왔습니다.
진로 및 기타
졸업을 앞둔 요즘, 하루가 갈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은 깊어져만 갑니다. 소동물 임상과 관련한 졸업 후 진로에 대한 질문도 설문에 포함했습니다.
64명의 응답자들 중 76.6%가 소동물 임상을 졸업 후 진로로 꼽았습니다. 이 중 절반이 조금 넘는 학생들이 졸업 후 인턴을, 나머지는 곧장 대학원 진학을 예정했습니다.
로컬 동물병원 인턴으로 시작하려는 학생들도 추후 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응답이 71.4%에 달했습니다. 나머지 28.6%는 대학원에 아예 진학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대학원 진학 희망자의 대부분(86%)이 석사학위까지만 진행할 예정으로 응답했습니다.
전문의과정은 공론화가 될 때마다 항상 큰 이슈가 되곤 하는데요, 학생들 역시 의견이 절반씩 갈렸습니다.
절반은 전문의 과정이 도입된다면 대학원 진학 여부와 상관없이 할 것이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만약 의대처럼 전문의과정이 정착이 된다면, 이미 필드에서 일하고 있는 수의사 선생님들과 곧 필드에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고민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이번 설문조사의 한계점
▶ 코로나19로 인한 실습시간 부족
올해는 작년에 비해 조금은 나아졌지만, 작년 한 해는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기 때문에 대부분의 실습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거나 아예 하지 않은 학교가 대부분이었습니다(본지 2020년 9월 18일자 ‘비대면 수의학교육 실습 부족 `코로나 학번 낙인 찍힐까` 걱정’ 참고)
때문에 작년에 본3이었던 올해 본4 학생들은 임상과목 실습의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 역시 설문조사에서 코로나로 인해 실습시간이 예년보다 많이 제한적이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미 1학기에도 전체 대면수업을 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섞여 있습니다.
향후 백신 접종 혹은 코로나19 종결로 예전처럼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할 때 실습 만족도 조사를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학교별로 천차만별인 커리큘럼
모든 학교들이 수의학교육인증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각 학교마다 진행되는 커리큘럼이 전체적으로 완벽히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과목별 만족도는 평균 점수를 내긴 했지만,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에서는 외과실습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지만, 다른 학교에서는 외과실습의 만족도가 낮았습니다.
▶ 많지 않은 표본 수
각 학교마다 적게는 2명, 많게는 12명까지 총 64명이 설문에 참여했습니다. 500명이 넘는 전국 본4 수의대생의 수를 생각하면 일부 학교에서는 설문에 참여한 의견이 소수의 의견일 수 있습니다.
과거 전국수의학도협의회나 수의교육학회에서 진행한 설문은 수백명에 달할 정도로 표본이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기에 신뢰도가 다소 낮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정규교과목 실습과 임상 로테이션 모두 “직접 해볼 기회가 부족하다”는 의견에 대부분의 본4 수의대생들이 공감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의과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설문참여자의 절반은 ‘실습견의 처우개선을 전제로, 실습견으로 실습시간에 직접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실습시간에는 모형을 활용한 시뮬레이션 교육을 중심으로, live practice는 로테이션에서 실제 환자로 확보’라고 응답한 학생들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최근 서울대에서 학생들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시뮬레이션 랩을 자체적으로 만들었는데, 이 같은 시설이 다른 학교에도 도입된다면 적어도 정규교과목 실습에 대한 대부분의 불만족스러운 의견들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본지 2021년 7월 22일자 ‘`채혈·삽관부터 내시경까지 자율실습` 서울대 수의대 시뮬레이션 랩 개관’ 참고).
물론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인 여건이 마련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학교들이 많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들었던 모든 수업, 실습들은 개선해야 할 점이 있거나 불합리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의평가에서 5점을 주지 않은 적이 손에 꼽았습니다. “그래도 교수님들 고생하셨는데..” 라고 생각하며 매 학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막상 이제 필드에 던져지는 제 자신을 생각하면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설문조사를 통해 저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학교 본4 학생들도 동일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부 선배 수의사 선생님들은 “학교의 환경과 상관없이 본인이 열심히 공부하고 로컬 실습도 열심히, 많이 하면 된다”, “인턴 때 열심히 구르거나 대학원 가서 열심히 배우면 된다”, “학교가 떠먹여주길 바라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아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하는 임상실기를 하지 못하는 수의사들이 계속해서 배출되는 것은 개인의 노력 여부를 떠나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수의사를 양성하는 수의과대학의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100점의 수의사들이 100명 배출되는 것보다 Day 1 skill을 가진 60점의 수의사들이 500명 배출된다면, 수의사를 고용하는 원장님들도, 진료에 임하는 수의사들도, 진료를 받고자 하는 보호자들과 환자들도 모두 윈-윈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수의교육학회를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께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수의임상기본실기’를 비롯한 가이드라인을 제작하고 있으며 올해는 진료수행에 초점을 맞춰 교육 개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본지 2021년 4월 15일자 ‘수의학 교육 개선 연구, 올해는 진료수행에 초점 맞춘다’ 참고).
교육과정 개편이 하루이틀만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조급하게 도입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눈앞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적어도 학교에 다니고 있는 동안 변하지 않거나, 변하더라도 체감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불만이 다소 있어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교수님들 간의 수많은 회의를 통해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학생들이 그 커리큘럼에 맞춰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하향식 접근법(Top-down approach)가 정석이지만, 이 과정 중에 전국수의학도협의회나 각 학교마다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 학생들의 의견을 통해 이를 조정하는 상향식 접근법 (Bottom-up approach)을 혼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도입하고자 하는 개편된 커리큘럼을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처럼 특정 학교에서 먼저 도입하고,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2~3년간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수정하여 모든 학교에 도입하는 것이 괜찮지 않을까 제안해봅니다.
그러나 이미 서울대 같은 경우에는 AVMA 인증을 받은 만큼 커리큘럼의 탄탄함은 이미 증명되었고 학생들의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기 때문에 공통 가이드라인을 만들더라도 각 학교의 상황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단순히 학교와 교수님들을 비난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저희(본4)야 이제 곧 졸업하기 때문에 졸업하면 어떻게 되든 관심을 안가지는 분들도 많을 것 같지만,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후배들, 그리고 곧 학교에 들어올 예비 수의대생들이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쓰게 됐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임상실습의 불만족에 대한 기사가 나오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설문조사에 임해주신 64명의 본과 4학년 학생분들에게 설문에 응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텐데도 열심히 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성주 기자 elijahlee.ve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