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97. 최성호(崔成浩, 1913~1980). 이리농림학교 수의축산과 1회 졸업, 전라북도 보건후생국 수의과장, 전라북도 초대 축정과장, 가축보건조합 활성화, 전라북도수의사회관 마련, 전라북도수의사회 사단법인화 주도 및 초대 회장 추대, 대한수의사회 상임이사, 농협중앙회 특수영농부장, 남양유업 전무이사.
1913년 11월 13일 전라북도 정읍군(현 정읍시) 옹동면 산성리에서 최영우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태인공립소(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29년 4월 13일 이리농림학교 농과에 입학하였다. 3학년이 되던 해인 1931년 수의축산과가 인가되어 학급이 신설됨에 따라 전과하여 수의축산과 제1회 졸업생(27명)이 되었다. 이들은 일본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조선총독부) 면허 수의사로 활동하였다.
이리농림하교 졸업(1934) 후 고향인 정읍군에서 공직을 시작하여 군 축산주임을 역임하였다. 해방과 더불어 미 군정기 초대 전라북도 보건후생국 수의과장을 역임하였는데, 서울대학교 수의학부에서 수의장교 벤저민 블러드(Benjamin Donald Blood) 등이 진행한 산업(농장)동물과 반려동물을 위한 임상 강습회에 참석하는 열정을 보였다.
정부 수립과 함께 농림부로 소속이 변경되어 전라북도 초대 축정과장을 맡았다. 한국전쟁 중에는 인민군에 의하여 투옥되기도 했으며, 건강이 악화되어 1950년 12월 31일 공직을 떠났다. 이 당시에는 육종, 사양을 바탕으로 하는 축산은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자연히 방역 위주의 축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축병원을 개원하는 수의사가 드물어 경상남도에서는 도립가축병원(1947)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1947년 돼지열병이 전국적으로 크게 창궐하였는데, 전라북도에서는 미 군정청에 돼지열병 피해 보상을 신청(시기적으로 보아 보상 결정은 미 군정기, 지급은 정부 수립 후에 이루어진 듯함)하여 보상금 3,600만 원(현 물가 기준으로 10억 원 정도)을 수령하였다.
이를 모든 피해 양돈 농가를 찾아 공정하게 지급할 수가 없어 축정과 직원이 양돈 농가를 방문하여 피해 보상금 포기 각서를 작성하고 보상금을 가축보건조합에 찬조하여 방역 사업에 사용하게 허락하도록 설득하였다. 축산 농가들은 자신들이 직접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동의하여 주었다. 가축보건조합은 일제강점기 조선농회에서 운영한 일종의 공제조합이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최성호와 이휴(李休)가 제창하고 남궁욱(南宮彧) 등 여러 사람이 수고하여 얻은 결실로, 전북수의사회를 굳건히 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 무렵 UNKRA(유엔한국재건단) 원조 사업(『전라북도 수의사회 창립 60년사』 103쪽에는 CAC[국제기독교봉사단] 원조 자금으로 기술됨)의 일환으로 들여온 가축 진료 약품이 각 도에 배분되자 축정과에서 무상으로 공급할 수 없으므로 가축보건조합을 통하여 분배하도록 하였다. 또 필요에 따라 공수의를 선정하고 이들이 원조 사업용 진료 약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돼지열병 피해 보상금으로는, 당시에 헐값으로 불하하던 전주, 이리, 군산, 김제, 장수, 무주 등 각지의 귀속재산(과거 일본인 소유의 적산가옥)을 구입하여 각 지역 가축병원 개업 수의사에게 무상 대여해 진료업무에 이용하도록 하였다(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7~8개 시, 군으로 추정).
가축보건조합 상무를 맡았던 이휴가 전주를 떠나고 그 기능이 약화되어 가축보건조합이 해체될 처지에 이르자, 무상 임대하였던 가축병원을 사용자에게 싼값으로 불하하고 회수한 자금으로는 혜택받지 못한 일부 타 지역 가축병원에 병원 구입 자금으로 지원해 주었다. 그 나머지 자금으로 1960년 9월 30일 전주시 중앙동1가의 대지 33평 위 2층 건물(23평)에 전라북도수의사회관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보상금, 가축보건조합, 무상 진료 약품, 공수의 같은 일련의 발상과 사업들을 전북수의사회가 전국 처음으로 주도하였고 사단법인 등록(1952. 10. 8.)까지 하였다. 그는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제5대까지 10년 동안 남궁욱, 이방환, 최성훈 등과 더불어 전북수의사회를 이끌었다.
1961년 상경하여 대한수의사회(회장 이남신) 상임이사(1961~1964)를 맡아 4년 동안 중앙회 살림을 책임졌다. 그 후 농협중앙회 특수영농부장과 남양유업 전무이사를 역임한 후 1980년 10월 14일 서울에서 타계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백영기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