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수의사에 관심을 갖는 수의사, 수의대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미국수의전문의를 취득하거나 전문의 과정 중인 한국 수의사도 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얼마 전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 출신의 장지훈 수의사님이 미국수의내과전문의(DACVIM) 시험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전남대 수의대 출신 중 최초의 쾌거입니다.
데일리벳에서 장지훈 수의사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수의사 공통 질문입니다. 어떻게 수의사가 되셨나요?
진로 결정을 할 즈음에 가족들과 상의하던 중 수의사 선배이신 작은 형부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문직이라는 점도 좋았고, 중, 고등학교 때 생물, 화학 등의 과목을 좋아했어서 적성에 잘 맞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어렸을 때 집에서 키웠던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어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수의대에 들어와서 배운 과목이 재미있었고 계속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전남대 졸업 이후 한국에서 임상의 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규모의 병원에서 어떤 임상수의사로 생활을 하셨나요?
임상수의사로 일을 시작했던 곳은 대구의 황금동물병원이었습니다. 저 포함 세 명의 수의사가 있었는데, 진료에 있어 기초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일했던 곳은 청주 고려동물병원으로 제가 일할 당시 저 포함 수의사 세 명이 일했습니다. 다양하고 많은 케이스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미국에 갈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미국은 우연한 기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임상수의사로 지내면서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 일단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호주에 있는 동안 미국 미주리 주립대학 교수님들께서 저의 모교인 전남대학교 수의과대학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미주리 주립대학 수의과대학으로 전남대를 졸업한 수의사를 일 년 동안 보내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에게 그 기회가 주어져서 일 년 동안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Q. 미국수의사 준비가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어떤 준비를 하셨고 어떤 점이 힘들었는지 알려주세요.
한국에 있을 때는 미국수의사가 막연히 어렵게만 생각됐고, 미국에 처음 올 때만 해도 미국수의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주리 수의과대학 소동물병원에서 여러 과를 돌면서 그들이 진료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고, 미국수의사가 된 한국 수의사들을 만나보면서 나도 한번 도전해볼 만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의사가 되겠다는 결정을 하고 난 후, 미주리대학 교수님들께 부탁해서 수의학과 3학년들이 듣는 임상 강의를 청강하고 4학년의 병원 로테이션을 따라다니면서 배우고 시험 준비를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우지 못한 내용이 많다 보니 혼자서 공부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노력하면서 시험 준비를 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시험 준비 과정에서 영어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제가 ECFVG를 할 때는 지금보다 높은 말하기 점수를 요구해서 토플 시험을 10번 이상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시험 점수를 얻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영어로 말하는 실력을 높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임상을 경험해보셨습니다. 한국의 임상 현장과 미국의 임상 현장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국에서는 일차 병원에서만 진료해 보았고, 미국에서는 대학병원에서만 진료를 해서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진료했던 게 너무 오래전 일이라 요즘 한국의 동물병원 진료와는 많은 차이가 있을 테니 장단점을 비교하기는 어렵고 제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차이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반려동물 양육문화 및 여러 가지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꼭 미국이 좋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님을 전제로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수의테크니션인 것 같습니다. 한국도 동물보건사라는 전문직이 생겨서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운용하는 면에서 아직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동물병원은 아무리 작은 병원이라도 테크니션을 고용하고 테크니션들이 많은 일을 합니다. 제가 경험한 대학병원을 예로 들자면, 보정, 채혈, 주사, 수술 준비, 마취, 내시경 등 여러 가지 시술 보조를 전부 테크니션이 합니다. 미국 대학병원에서는 보호자에게 일반적인 설명을 하는 업무는 주로 로테이션을 도는 4학년 학생들이 하기 때문에 테크니션들이 보호자와 대화 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적인 일차, 이차 동물병원에서는 간단한 병력 청취, 업데이트나 퇴원 후 체크하는 것은 수의사 대신 테크니션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테크니션의 도움이 있기에 수의사들은 병력 청취와 신체검사 후, 일차적으로 필요한 오더를 내리고 (주로 혈액검사, 혈압측정, 심전도, 엑스레이 등) 다른 진료를 볼 수 있어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의 경우, 4학년 학생들이 각 과를 로테이션하는 동안 보정, 채혈, 주사, 혈압측정, 심전도검사, 엑스레이 촬영 등의 테크닉은 대부분 테크니션들에게 배우게 되며, 경험이 많은 테크니션들은 학생 및 인턴에게 여러 가지로 좋은 선생님이 됩니다.
한 가지 인상 깊은 점은 숙련되고 경험이 많은 테크니션이 인턴 등 임상경험이 적은 수의사보다 아는 것이 많을 때도 있는데, 절대 수의사의 영역(필요한 검사 오더나 치료 선택)을 함부로 침범하는 경우가 없다는 점입니다.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면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화입니다. 물론 수의사도 테크니션을 같이 일하는 동료로 여기고 서로 예의를 지키려 노력합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전문의 제도와 진료 범위라고 생각합니다(한국에서도 전문의 제도를 시작했거나, 시작하려고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한국은 일차 병원들의 규모가 꽤 크고 많은 장비를 갖추고 진료를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미국의 일차 병원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 편이고 장비도 한국만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 대신 어려운 시술이나 수술, 24시간 ICU에서 치료나 모니터링이 필요한 경우, 내시경 등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경우, 또는 혈액 투석이 필요한 경우, 그리고 노령견들이 주로 겪는 여러 가지 질병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경우 등은 전문의가 있는 이차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 대신 이차병원이나 대학병원은 예방접종 등 기본적인 진료를 보지 않습니다(대학병원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학교 병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일차 진료를 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전문의의 수술이나 의견이 필요한 케이스인데도 일차 병원 수의사가 보호자와 상의 없이 전문의에게 보내지 않고 스스로 수술이나 치료를 하다가 잘못되면, 보호자가 소송을 했을 때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전문의에게 환자를 적절히 보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Q. 미국수의내과전문의가 될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미국에서 임상을 처음 접한 곳이 대학병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 과의 전문의들을 보게 되었고, 그들의 학생들에 대한 열정, 광범위하고 깊은 지식, 무엇보다 계속 노력하며 발전하려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미국전문의 과정은 매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수의내과전문의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일단 미국 수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일 년의 로테이팅(rotating) 인턴십을 거쳐야 합니다. 로테이팅 인턴십은 전문의가 상주하는 이차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하게 되는데 소동물 전공의 경우 응급실에서의 진료가 가장 많고(학교마다 다르지만 일 년의 절반 정도는 야간 근무를 포함한 응급실 진료를 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여러 소동물 진료과를 각각 2~3주 동안 로테이션합니다.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내과, 종양과, 신경과, 심장과, 영상진단과, 일반외과, 임상병리과, 마취과, ICU 로테이션은 필수이고, 인턴십 후 진로에 따라서 2~3개의 로테이션은 원하는 과로 선택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로테이팅 인턴십 후에 바로 레지던쉽 가는 경우도 있고 몇몇 학교나 이차병원에서 제공하는 스페셜티 인턴십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레지던트를 지원했다가 안 되었을 경우나, 본인이 레지던트를 하기 전에 일 년의 수련 과정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지원하는 경우도 있는데, 스페셜티 인턴십은 본인이 원하는 과에서 주로 일하게 됩니다.
그다음은 레지던쉽입니다. 미국의 수의과대학과 몇몇 이차병원에서 할 수 있는데, 일부 큰 대학병원을 제외하고는 각 과에서 일 년에 한 명씩만 뽑게 됩니다. 각 과의 전문의 숫자에 따라서 어떤 과는 레지던트를 2~3년에 한 명만 뽑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과의 경우 레지던쉽은 대부분 3년 과정이고 2년차가 끝나갈 때 일차 전문의 시험이 있는데 이 시험은 넓은 의미에서 내과의 범주로 보는 내과학, 심장학, 종양학, 그리고 신경학 전공하는 레지던트들이 같은 시험을 봅니다(면역학, 독성학, 약리학, 임상병리, 생리학 등 임상에 관련된 기초 과목 위주의 시험입니다).
3년차가 끝나갈 시점에는 이차 전문의 시험을 보게 되는데 이 시험은 각 과마다 다릅니다. 제가 시험 본 내과의 경우 실제 진료를 보는데 필요한 내용과 최근 5년 간의 주요 논문을 4가지 파트로 나누어서 이틀 동안 시험을 보게 됩니다.
일, 이차 전문의 시험 외에도 전문의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1저자로 쓴 논문 한 편을 정해진 학술 잡지에 발표하고, 최소 일 년에 한 번 학술대회에서 (교내 세미나 포함) 구두 발표를 해야 합니다.
3년의 레지던쉽 기간 동안 주치의로서 진료를 보게 되는데, 1년차에는 전문의의 지도를 많이 받고, 2~3년 차에는 전문의와 상의는 하지만 레지던트 본인 스스로 진단, 치료방법 등을 판단해서 진료하도록 훈련받으며, 로테이션을 도는 4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일도 같이하게 됩니다. 레지던쉽 기간 동안 전공 분야의 과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지만, 내과를 전공한 저의 경우에는 내과와 연관 있는 다른 과(ACVIM 규정에 따라서 심장과, 종양과, 신경과, 임상병리과, ICU, 영상진단과를 일 년에 2주씩 로테이션)와 본인이 관심 있는 다른 과 (안과 등)의 로테이션도 돌면서 진료를 보게 됩니다.
Q. 한국의 수의사, 수의대생 중에 미국수의사·미국수의전문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영어’와 ‘약간의 도전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전문직인 수의사로서 생활하려면 영어가 필수인 것은 다들 아시겠지만,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 수의사는 다양한 사람들(보호자, 테크니션, 수의대생, 동료 수의사 등)과 소통하는 것이 일과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듣기, 말하기, 쓰기를 포함한 영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시험을 잘 봐서 미국수의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진료수의사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을 테니까요.
또 한 가지는 도전 정신인데, 이것은 전문의를 목표로 하시는 분들에게 좀 더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의 수의사로서 미국수의사가 되는 길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고 공식적인 과정(ECFVG 또는 PAVE)이 있지만, 미국 전문의가 되기 위한 공식적인 과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로 인턴십, 레지던쉽을 하고 전문의가 되는 것이 현실 인지라, 본인이 원하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전문의가 된다는 보장이 없고, 된다고 해도 그 과정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물론 노력하고 길을 찾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이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그 과정이 오래 걸리고 그 기간 동안 심리적,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약간의 도전 정신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수의사로서 살아갈 마음이 있다면 짧더라도 미국에서 수의사의 생활을 실제로 경험해보시고 결정하시기를 권합니다. 미국에서의 수의사 생활이 좋은 면도 많이 있지만, 문화와 언어가 다른 곳에서 매일매일 생활하는 것이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Q. 앞으로의 계획과 꿈은 무엇인가요?
단기적인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박사과정을 마무리하고 박사과정 졸업 후에는 진료와 연구를 같이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수의과대학을 다닐 때 막연히 진료와 연구를 모두 잘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었는데, 졸업 후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꿈을 이루기가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는 두 가지 모두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매일매일 조금씩이나마 노력하고 발전해 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제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한국에 있는 수의사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도 한 가지 바람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에 있는 수의사, 수의대생분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수의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수의사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것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고, 그 역할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꼭 미국이 아니더라도 좀 더 넓은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을 가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이 있겠지만,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고 노력한다면 어려움을 겪어내고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모두 더운 여름 건강 유의하시고 파이팅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