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분에 남은 항생제가 계란 잔류 사고로‥대법 `제약사가 손해 배상해야`

간접 노출 언급 없어, 표시상 결함 인정..처방한 수의사까지 손해배상 피소된 사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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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분에 남아 있던 항생제가 닭에 노출돼 계란에까지 항생제가 잔류됐다면, 해당 가능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약품 제조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만약 수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할 때 이러한 가능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면, 제조사와 마찬가지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달 14일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은 계분 등을 통해 휴약기간(12일)이 지나도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할 수 있다’는 취지의 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표시상의 결함에 해당한다며 약품 제조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계분이 아래로 떨어지는 케이지 사육(왼쪽)과 달리
평사 사육(오른쪽)에서는 계분에 섞인 항생제 성분이 남아 지속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사진 : 국립축산과학원)

중추 때 먹인 항생제가 반년 넘어 계란에 잔류했다

농장 측, 평사 사육 시 노출 가능성 알리지 않은 제조사 책임 주장

제조사에 손해 배상 2억원 청구

평사에서 산란계를 사육하는 A농장은 2012년 3월과 7월 중추를 입식했다. 각각 중추 입식 직후 1~2개월에 걸쳐 수차례 엔로플록사신을 투약했다.

A농장은 I조합에 계란을 납품했는데, 2013년 3월 11일 조합 측으로부터 ‘납품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고 납품이 중단됐다.

A농장이 당시 계란을 생산하던 산란계에게 엔로플록사신을 마지막으로 투약한 것은 전년 9월경이다. 투약 후 6개월 이상 경과했음에도 항생제가 잔류한 셈이다. A농장은 곧장 노계를 처분했지만 이후로도 계속 계란에서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됐다.

‘계분 섭취로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한 것 아닌가’ 의심한 A농장이 계분을 치운 후 검사하자 더 이상 검출되지 않았다. 결국 2개월여가 지난 2013년 5월부터 계란 납품을 재개했다.

A농장은 위 사고에 의한 피해에 엔로플록사신 제품 제조사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약품 사용에 있어 주의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제조물 책임법상 ‘표시상의 결함’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닭은 계분을 섭취하는 습성이 있는데, 엔로플록사신을 투약한 시기에 배설된 계분에 약물성분이 남아 있었고, 평사형 축사에서 닭이 해당 계분을 섭취하며 엔로플록사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제조사가 이 같은 가능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고, 제품에 기재된 ‘닭의 휴약기간 12일’에만 맞춰 사용했다가 잔류 사고가 발생했다는 취지다.

A농장은 2014년 제조사 B업체에게 납품 중단으로 인한 피해보상과 위자료 등 2억여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엔로플록사신 제품의 설명서에 ‘평사 닭에게 먹이지 말라’는 취지의 문구를 넣어줄 것도 요구했다.

하지만 B업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긴 법정다툼으로 이어졌다.

법원 ‘계분 통한 간접섭취 가능성 표기 안 한 것은 결함’

업체 측 손해배상 책임 인정

1심 전주지법은 B업체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은 농장 측의 일부 승소로 뒤집혔다. 이에 불복한 B업체가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결국 기각됐다.

광주고등법원(전주)은 B업체 엔로플록사신 제제의 표시상의 결함과 그로 인한 A농장의 피해를 인정했다. 계분을 매개로 엔로플록사신에 지속 노출됐다는 A농장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다.

광주고법은 “약품의 소비자는 약품에 표시된 내용을 신뢰하고 그에 따라 약품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통상의 소비자로서는 케이지형 축사에서 사육하는 닭이든, 평사형 축사에서 사육하는 닭이든 휴약기간 12일만 지키면 된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업체 측이 ‘평사형 축사에 사육되는 닭에게 투여하면 계분을 통해 12일이 지나더라도 체내에 약물이 잔류될 수 있다’는 취지의 표시를 했다면, 계란 항생제 잔류와 납품 중단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지목했다.

해당 표시가 없었던 것은 ‘표시상의 결함’인 만큼 B업체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B업체 측은 ‘흡수되지 않은 약물성분이 배설물을 통해 배출되는 것은 상식이며, 계분을 통해 엔로플록사신이 잔류하게 된 것은 사육관리상의 문제’라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도 이 같은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사육업자(농장) 또한 표기된 휴약기간 준수 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의의무를 인정하면서도, B업체가 간접섭취에 따른 휴약기간의 변동(조정) 가능성을 전혀 언급하지 아니한 것은 표시상의 결함이자 B업체의 책임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2심은 B업체의 배상책임을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B업체 측이 평사 관련 문제를 조사할 필요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상당하고, A농장 측도 재입식 시기를 앞당기거나 거래처 납품을 조정하는 등 항생제 잔류 관련 사고로 인한 손해 일부를 줄이는 것이 가능했던 점 등을 감안했다.

엔로플록사신 제제의 표시결함으로 인한 A농장의 손해액은 6,273만원으로 평가하고, 이중 60%를 B업체의 배상 책임으로 인정했다.

 

산란계 사용 금지 모르고 처방한 수의사에게도 함께 손해배상 소송

몰랐다’는 해명으로는 책임 회피 어려워

현재 엔로플록사신은 산란계에서 일령 여하를 막론하고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사용금지 처분을 잘 준수한다면, 위 사건과 같은 잔류 사고도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여전히 산란계 농가에서는 겐타마이신, 아프라마이신 등 다양한 항생제를 사용한다. 이들 모두 수의사 처방대상이다.

항생제 잔류 사고로 농장이 피해를 입을 경우 수의사의 책임으로 연결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엔로플록사신 제재의 표시사항과 계란 항생제 잔류 사고를 둘러싼 또 다른 법정 다툼에서 엿볼 수 있다.

평사에서 산란계를 사육하는 C농장은 2019년 엔로플록사신 제조사 D업체와 해당 제제를 처방한 수의사 E원장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7년 5월 농식품부가 당초 산란 중에만 사용을 금지했던 엔로플록사신을 산란계 모든 일령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지만, 2017년 10월부터 12월에 걸쳐 수의사 E원장 처방 하에 D업체산 엔로플록사신을 사용했다가, 이듬해 9월 계란에서 잔류 엔로플록사신이 검출돼 폐기·납품 중단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2017년 당시 D업체 엔로플록사신에는 산란중추를 포함한 산란계 전체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해당 ‘표시상의 결함’이 C농장의 잔류 사고로 이어진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일견 위 A농장-B업체의 사례와 비슷해 보이지만, 법원은 D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C농장이 잔류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 2017년 10~12월 항생제 사용과 잔류검출 시점(2013년 9월) 사이에 C농장이 엔로플록사신을 또 사용한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C농장의 손해배상청구는 기각됐지만, 만약 C농장이 승소했다면 함께 피소된 수의사 E원장도 함께 배상 책임을 지게 될 상황이었다.

D업체를 대리한 이형찬 변호사(법무법인 대화)는 “수의사는 동물용의약품의 용법·휴약기간·준수사항 등을 준수해야 하고, 자주 사용하는 동물용의약품은 용법·주의사항의 변경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목했다.

재판에서 E원장 측은 ‘제조사 D업체 측이 별도로 알리지 않아 ‘산란계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지 못한 채 처방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통상 법원이 전문가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만큼 손해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용의약품 제조사가 사육환경(평사)에 따른 휴약기간 변동 가능성을 면밀히 살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한 대법 판례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제조사도 수의사도 ‘몰랐다’며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형찬 변호사는 “실제로 축산농가에서 동물용의약품이 용법에 맞지 않게 사용돼 피해가 발생한 경우, 수의사와 동물용의약품 업체를 상대로 동시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선 수의사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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