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제한 어겨 구제역 퍼졌지만, 원인제공 농가에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

철원군, 이동제한 위반 농가·거래상에 살처분보상금 구상권 청구..1·2심 이겼지만 대법서 파기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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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제한 명령을 어기고 타 지역에 판매한 돼지로 인해 구제역이 확산됐지만, 그로 인해 지출한 살처분보상금을 해당 위반농가에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순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강원도 철원군이 이동제한 위반 농장주와 거래상 등을 상대로 낸 방역소요액 구상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농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세종철원’ 이동제한 명령 어기고 판매한 돼지로 구제역 확산

철원군, 세종 위반농가에 살처분보상금 배상 청구 소송

세종시에서 돼지를 키우는 A농장은 2015년 1월 8일 이동제한명령을 받았다. 주변의 다른 돼지농장에서 구제역이 발병하면서다.

하지만 A농장은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해 2월 7일 강원도 철원군의 B농장으로 돼지 260마리를 판매했다.

그 직후 B농장의 돼지 일부가 구제역 의심증상을 보였고, 이틀 뒤인 9일 살처분됐다. 살처분된 돼지들 중에는 A농장에서 B농장으로 판매했던 돼지 260마리도 포함됐다.

그에 따라 철원군의 예산도 들어갔다. 살처분·매몰비용과 살처분보상금, 생계안정비용을 지급하면서다.

철원군은 2015년말 세종 A농장과 거래상을 상대로 이 같은 방역소요액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A농장이 이동제한명령을 위반해 구제역을 확산시켰으니, 그로 인한 예산상 손해를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다.

방역당국도 처벌의지를 보였다. 당시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이 국회에서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했을 정도다.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이동제한 명령을 위반한 농가를 엄벌하지 않으면 방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1·2심을 담당한 의정부지방법원은 모두 철원군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 ‘이동제한 위반과 살처분보상금 사이에 상당인과관계 없다’

별도 법령 근거 없이는 살처분보상금 손해배상 구할 수 없어

대법원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려면 위법한 행위와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면서 A농장의 불법행위(이동제한명령 위반)와 피해자가 입은 손해(철원군의 살처분보상금 등)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정한 이동제한명령은 가축전염병이 발생하거나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일뿐, 지자체가 살처분보상금 손해배상을 구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발생농장) 가축 소유자에게 살처분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것은 가축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는 지자체의 의무”라며 “살처분보상금을 지급하는 지자체가 이동제한 규정을 손해배상을 구하는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가축전염병 확산의 원인이 피고들(A농장과 거래상)의 이동제한명령 위반 때문이라 하더라도, 살처분보상금 지급이 이동제한명령 위반과 인과관계가 있는 손해라거나 다른 법령상 근거 없이 곧바로 살처분보상금 상당을 손해배상으로 구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가축전염병예방법상 방역조치를 위반한 행위가 악성 가축전염병을 확산시켰을 경우 그에 따른 방역소요액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법령 근거가 없는 한, 위반행위 자체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살처분보상금 등에 배상책임까지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국내 우제류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살처분이 진행된다. 현행 구제역 방역실시요령은 시장∙군수가 발생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감수성 동물에 살처분을 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규정은 어디까지나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다. 살처분보상금은 정부 정책에 따른 발생농장의 손실을 보전하는 장치다.

다른 농장(이 사건의 경우 세종 A농장)이 발병 원인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정부 정책으로 생긴 손실보상분까지 책임져야 할 만큼의 상당한 인과관계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가축전염병예방법의 입법취지와 관련 규정 등을 종합하면, 지자체는 다른 법령상 근거 없이 직접 피해자로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을 설시한 최초 사례”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케이디에이치 이상민 변호사(수의사)는 “지자체가 지급한 살처분보상금을 그대로 원발농장의 법령 위반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로 의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지출된 살처분보상금을 원발농장으로부터 보전받으려던 지자체의 행보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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