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의 다양한 활동과 삶을 조명하기 위해 데일리벳 학생기자단 9기가 “아무튼, 수의사생활”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프로젝트는 [학교생활, 병원생활, 회사생활, 사회생활]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의대에 입학하고 한 명의 수의사가 되어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겪는 중요한 이벤트와 활동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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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병원생활]에서는 특정 진료과목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들을 취재해보았습니다. 영상의학과, 치과, 재활, 외과, 특수동물 순으로 5편의 기사가 연재됩니다.
반려동물이라고 하면 흔히 개·고양이를 떠올리지만 기니피그, 고슴도치, 앵무새, 도마뱀과 같은 조금은 특이한 동물을 반려동물로 키우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유튜브만 봐도 그 인기는 상당하죠.
하지만 국내에서 특수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는 드뭅니다. 10년 넘게 특수동물을 진료하고 있는 에코특수동물병원 김미혜 원장(사진)을 만나 특수동물 수의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와 병원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2009년부터 13년째 에코특수동물병원의 대표원장을 맡고 있는 김미혜 수의사입니다.
우리 병원은 다양한 동물을 진료합니다. 처음에는 기니피그, 고슴도치를 위주로 진료하다가 나중에는 보호자들이 토끼, 햄스터까지 데려오시고 앵무새, 파충류까지 자연스레 영역이 확장됐어요.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진료하는 병원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요(웃음).
현재 병원에는 저를 포함해 4명의 수의사가 있습니다. 각각 전문분야도 나누어져 있어요. 외과 박사 선생님 한 분, 파충류를 주로 진료하시는 분, 설치류를 주로 보시는 분이 한 명 계시죠.
수의사 선생님들이 각자 본인의 전문 동물이 있는 방향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는 앵무새를 공동으로 진료하고 있지만, 앵무새 내원도 점점 많아지면서 앵무새를 전문으로 진료할 수의사 분을 양성할 생각도 하고 있죠.
Q. 어떻게 특수동물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수의사가 되셨나요
임상 자체는 학부생 때부터 무조건 임상을 하겠다고 생각하며 본과 1학년 때부터 방학마다 동물병원 실습을 다녔죠. 20년 가까이 제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사부님 김종렬 원장님도 그때 처음 뵈었고요.
학생 때의 실습 경험이 임상가의 길을 걷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수동물 수의사가 되겠다’고 언제 딱 마음을 먹은 적은 없어요. 처음 개원했을 때는 개·고양이를 주로 봤죠. 그러다 고슴도치나 햄스터 같은 다른 동물들이 조금씩 왔는데, 전원할 곳도 마땅히 없었어요. 멀리 보내기엔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도 심하고요.
그래서 어렵더라도 직접 공부하기 시작했고, 하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했죠.
Q. 배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는 특수동물 임상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없었어요. 그래서 외국으로 많이 갔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특수동물로 유명한 병원에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학회도 많이 다녔어요. 제 사부님이 일본을 자주 왔다 갔다 하셔서 일본에서도 배우기도 했습니다.
가령 고슴도치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생태계 교란종이라 임상도 크게 발달하지 않았어요. 반면 한국과 일본에서는 유독 인기가 많죠.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해외 학회에 종종 갔어요. 가면 한국사람이라고는 저와 미국수의사인 친구밖에 없었죠(웃음).
하지만 일본 수의사들은 이미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있더라고요. 도쿄에 있는 병원들이 한국보다 좀더 앞서가고 있는 거죠. 우리나라도 특수동물 임상이 더 빨리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더 열심히 파고들었어요.
Q. 어떤 동물들이 ‘특수동물’로 내원하나요?
사실 ‘특수동물은 어떤 동물이다’라고 딱 정의하는 것은 어려워요. 미국에서는 동물원 동물(Zoo animal) 수의사와 반려특수동물 수의사를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 병원은 반려특수동물만 진료하는 셈이죠.
고슴도치, 햄스터, 기니피그, 토끼, 친칠라, 미니피그, 앵무새, 도마뱀, 거북이 등을 진료하고 있습니다.
Q. 그 중에서도 가장 진료하기 어려운 동물이 있을까요?
돼지 쪽이 60kg가 넘게 나가기도 하니까 힘들죠. 라쿤은 손을 너무 잘 쓰고 잘 물어서 조금 어려워요(웃음).
라쿤은 5년 전만해도 엄청나게 유행했어요. 그런데 키우는 게 매우 힘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기르는 분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Q. 동물마다 주로 내원하는 이유가 다를 것 같아요
질환은 아주 다양하죠. 진드기나 피부질환, 식욕부진 등이 흔해요.
앵무새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 털을 뽑는 자해나 골절 등 외상 환자가 많아요. PDD(선위확장증)나 바이러스 질환도 있고요.
토키나 기니피그는 이빨 질환이나 고창증으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죠.
도마뱀도 염증성 질환이 많아요. 식욕부진, 거식증, 알막힘 등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빈번하죠. 거북이도 그와 비슷한데 결석, 종양 환자도 많이 옵니다.
요새 미니픽를 키우시는 분들이 은근히 늘어나고 있는데, 80kg까지 나가는 암컷을 중성화하기도 하고 발굽갈이나 이갈이, 관절염 진료까지 봅니다.
Q. 그만큼 다양하다 보니 특수동물병원을 잘 운영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특수동물병원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말 다양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단 각 동물별로 아는 것이 많아야 해요. 단순히 수술하고 진료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동물별로 특성, 환경, 먹이, 생활, 핸들링 방법을 보호자분들께 잘 안내해드려야 하거든요.
가령 기니피그의 경우에는 국내외 먹이 브랜드의 특성부터 어떤 베딩(bedding)이 좋은지까지 자세히 상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특수동물은 마니아층이 있는데, 그 분들끼리 쓰는 은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도 매우 중요해요.
동물마다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천차만별이에요. 반려동물화되어있는 파충류의 종류만 3천 종인데 종마다 스팟존이 달라요. 적절한 스팟존으로 온도를 끌어올려야 항생제가 효과를 나타내요. 종별 특성 공부가 많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죠.
한 분야(동물)만 열심히 파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기에 분야별 선생님들을 잘 트레이닝해서 오래 함께 가고 싶어요.
특수동물의 영양관리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4년 전에 ‘오로시’라는 영양제 브랜드를 따로 런칭했을 정도죠. 미국에는 특수동물 전용 영양제·처방식 업체가 따로 있는데 국내에는 없거든요.
현재는 기니피그 영양제만 판매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다른 특수동물의 영양제나 처방식을 계속 개발할 생각입니다.
Q. 일반적인 동물병원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네요
우선 저희는 연락해온 보호자에게 어떤 동물인지부터 물어봐요. 동물마다 미리 준비해야 할 게 다르기 때문이죠.
병원도 특수동물 진료공간은 2층으로 따로 분리했습니다. 강아지 소음 등의 스트레스에 민감하거든요.
‘응용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죠. 개·고양이의 치료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수술기구부터 개·고양이용과 달라요. 더 얇고 더 작은 도구가 필요하죠. 미국에서 살 때도 있고, 새로 만들어 쓰기도 합니다.
특히 특수동물은 시간이 생명입니다. 수술을 한다면 20~30분 내에는 끝내야만 살 수 있습니다. 마취를 오래하기 어렵거든요. 9g부터 80kg까지 다양한 동물을 다 살려야하는 만큼 마취에 대한 노하우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병원은 수의사에 비해 테크니션이 더 많아요. 수의사가 4명인데 테크니션은 16명이거든요. 그만큼 서포트 조직이 튼튼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수의사 1명에게 간호보조인력이 최소 3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자가 우리 병원에 처음 오면 바로 수의사를 만나지 않습니다. 우선 테크니션들이 먼저 체크해죠. 수의사는 진료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죠. 제가 용산 미군부대 동물병원과 미국 시카고에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의 영향이 커요.
Q. 진료비 측면에서도 개·고양이와 차이가 있을까요?
대체적으로 특수동물의 진료비는 개·고양이 진료비보다 더 비싸요. 수의사마다 실력이 다르니 정확한 금액은 병원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저희 병원은 2배 정도 차이나요.
병원을 13년 정도 운영하면서 중간에 비용에 대한 컴플레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요.
우리 병원에서는 수의사가 아닌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비용 조율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병원비를 사전에 알려주는 경우가 매우 흔해졌지만, 저희는 그 전부터도 그렇게 해왔거든요.
미국에서는 ‘어떠한 검사가 필요한데 보호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동물의 상황이 악화하면 보호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항까지 명시되어 있어요. 이러한 중간 장치를 미리 해 놓으면 결국에는 수의사와 보호자 양쪽이 다 편해요.
Q. 특수동물 임상시장은 앞으로 점점 커질까요?
수의사들이 따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기보단 이미 특수동물 시장은 상당히 커졌어요. 그래서 특수동물 수의사에 대한 수요도 큰데,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그래도 보호자의 필요에 응하기 위해 수의사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의사분들이 특수동물 진료를 어렵게 시작했다가도, 비난을 받고 그만두는 경우가 은근히 있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특수동물 마니아층에서 소문이 금방 퍼지기도 하고요.
사실 수십여 마리씩 기르는 마니아 분들을 이끌어나간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충분한 공부와 정신력이 뒷받침되어야 특수동물 수의사를 오래 할 수 있어요.
Q.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정보 교환이 활발하면 좋을텐데, 노하우를 서로 잘 공유하지 않으려 하거든요. 이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도 미국에서 앵무새에 대해 배울 때 자료는 많은데, 정작 어떻게 앵무새를 컨트롤하고 보정할 지는 배우기 쉽지 않았어요.
저와 친한 미국수의사 선생님을 통해 앵무새 진료를 오래 보던 원장님을 소개 받아 어렵게 배웠죠. 이렇게 알음알음 뚫어내야 하는게 특수동물 쪽에서 흔한 일인 것 같아요.
Q. 특수동물을 진료하면서 힘들기도 하고 보람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사실 보람은 매우 많죠. 남들이 많이 안 하는 분야를 제가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죽을 확률이 높은 아이들을 살렸을 때 보람되고, 살 것 같았는데 죽는 아이들을 볼 때 가장 힘들어요. 그럴 때는 생명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죠.
저는 수의사로서 아이가 살아있을 동안에 도와주는 서포터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동물을 100%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해요. 제가 알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으로 아픈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저의 주된 역할이죠.
그래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잘 살아날 때 가장 기쁘죠.
Q. 마지막으로 특수동물에 관심 있는 수의대생과 수의사에게 조언을 전해주신다면
특수동물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는데 대부분의 수의사 분들이 이 분야에 선뜻 발은 담그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학부생 때부터 개, 고양이 위주로 배웠는데 이걸 버리고 특수동물을 하면 망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특수동물 쪽으로 넘어가면 내 경력에 어떠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특수동물 진료를 보려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해서 오히려 경력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돈을 잘 못 번다는 편견 등으로 주저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실력이 있다면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것은 뱀, 햄스터 등 특수동물이 본인과 잘 맞는지 여부입니다.
또한 특수동물을 진료함으로써 본인의 삶의 질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개, 고양이를 진료하실 때보다 더 올라갈 수도 있어요.
조금 더 많은 분들이 특수동물 분야에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수의대생과 수의사님들의 관심이 개, 고양이 쪽으로 90% 가까이 몰려 있다면 다른 다양한 곳에도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후배들에게는 우리나라에 있는 특수동물병원 모델뿐만 아니라 외국에 있는 모델도 직접 찾아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어요.
가령 일본의 경우 설치류 쪽이 엄청 발달되어 있어요. 일본에는 토끼, 슈가글라이더, 앵무새 등 한 동물씩만 진료하는데도 잘 운영되는 병원도 있어요.
수생동물부터 앵무새, 파충류까지 다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수의사로서 저희에게만 주어지는 역할임을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본인의 적성과 재능을 잘 파악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가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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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취재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병원을 찾았는데도 앵무새, 기니피그, 도마뱀을 등 다양한 동물을 데리고 병원을 방문하신 보호자들을 보면서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원장님을 뵙기 전까지는 특수동물 수의사의 수요가 그렇게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인터뷰 직전에는 부리에 종이가 낀 앵무새가 응급하게 내원하여 원장님이 급히 진료를 보고 오시기도 했습니다.
많은 보호자가 믿고 찾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독학뿐만 아니라 해외에 계신 특수동물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어렵게 요청하면서까지 다양한 특수동물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원장님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원장님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원장님의 작지만 특별한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예린 기자 juliek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