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주는 서비스, 괜찮은가요?

함께 고민하는 수의 윤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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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찬 박사/연수연구원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실/수의과학연구소)

수의사 A씨는 소도시의 한적한 외곽에서 개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한 반려동물 장례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뇨가 있는 고양이를 키우는 보호자가 더는 고양이를 돌보기 어려워서 안락사를 원하고 있는데, 안락사를 해 줄 동물병원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안락사부터 장례 화장까지 ‘올인원 패키지’를 런칭할 예정인데, 앞으로 협력병원으로 계약하여 연결해주는 동물들의 안락사만 잘해준다면 건당 20만원의 수수료를 떼줄 것이며 매월 일정 수입이 보장될 것이라 하였다.

수의사 A씨는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될 것이라는 말에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실제 사례에 기반해 각색한 케이스입니다

 

찝찝함.

윤리는 항상 왠지 모를 찝찝함과 함께 우리의 내면에서 그 존재감을 알린다.

그래도 일단 찝찝한 마음이 시작되었다면, 윤리 문제의 절반은 성공이다. 찝찝함은 일종의 경미한 도덕적 손상에 대한 우리의 임상증상 같은 것이다.

때문에 그 찝찝함의 병변을 자세히 들여다봐야지만 문제의 원인을 알고 해결할 수 있다. 만약 찝찝함이 찾아온다면,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딪혀야 한다.

*   *   *   *

본론으로 들어가자. 위 케이스에서 수의사는 무엇 때문에 찝찝함을 느꼈던 것일까?

아마 어떤 사람들은 보자마자 단박에 “딱! 보면 모르느냐, 생명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생명경시 아니냐!”라고 할 것이다. 그 말이 맞다. 이 케이스의 가장 직관적인 윤리적 문제점은 생명을 그 자체로 존중한 것이 아니라 돈벌이를 위한 도구, 그것도 안락사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생각보다 윤리를 많이, 그리고 잘 배운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또 동네 어른들에게서, 초등학교 ‘바른 생활’ 교과서부터 도덕·윤리를 거쳐 사회생활을 하며 각자가 나름대로 체계화한 윤리 규범을 내재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내재화한 사회적 직관으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대부분의 윤리 문제에 대해 1초도 걸리지 않는 윤리적 의사결정을 하고 있지만, 큰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직업윤리의 영역으로 오게 되면 이러한 직관만으로는 제대로 된 윤리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한다. 혹은 직관적으로 판단은 했는데, 그 이유를 합당하게 설명하지 못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저마다 다를 것이 아니라 수의사라는 직업적 정체성 안에서 모든 수의사가 공통으로 추구하고, 일관되게 보여줘야 할 도덕적 가치관 역시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수의사 직업의 윤리적 상황을 단순히 직관이 아니라 조금 더 분석적이고, 이론에 근거해서 볼 필요가 있다.

수의사는 부여된 직업의 역할에 안락사 수행을 포함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다. 그리고 다른 진료 행위와 마찬가지로 안락사를 수행하고 보호자에게 비용을 청구한다.

그렇다면 병원마다 특정 수술이나 특정 질환 진료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것처럼, 안락사를 주력 서비스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괜찮은 것일까?

 

우선 안락사의 특성 측면에서 살펴보자.

안락사가 일반적인 의료 서비스의 성격과 동일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의료는 숙고된 서비스여야 한다. 의료는 마냥 돈과 상호교환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아니다.

예를 들어, 보디빌더가 근육량을 늘리고 싶어 의사를 찾아가 스테로이드를 달라고 했을 때, 보디빌더가 원하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테로이드를 처방해 주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미용실에 찾아가 미용사에게 무지개색 바가지머리를 해달라고 한다면, (한 번쯤 말릴 수도 있겠지만) 반신반의하면서도 결국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를 해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용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의료 서비스의 구매자는 제공자의 합리성과 올바른 가치판단에 어느 정도 의존해야 한다.1)

그런데 안락사는 그 판단을 수의사에게 더 많이 의존해야 하는 서비스이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정보를 수의사가 절대적으로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판단의 결과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일 경우에는 더더욱 정보를 가진 쪽의 영향력이 커진다. 그런 점에서 안락사는 일반적인 의료 서비스와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안락사를 결정하는 것은 수의사에게 늘 어려운 일이다.

안락사의 판단에서 이익과 손해의 당사자(이해당사자)는 보호자, 수의사, 그리고 동물 환자이다. 수의사는 이해당사자들의 이익과 손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윤리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안락사 결정 상황에서, 임상에 종사하시는 독자 중에는 가장 큰 이해당사자가 보호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큰 이익과 손해가 오가는 상황에 놓인 이해당사자는 바로 생사의 기로에 선 동물이다.

그런데 만약, 이 상황에서처럼 보호자가 돌봄에 대한 회피의 수단으로 안락사를 선택하는 경우(편의를 위한 안락사, Convenience euthanasia) 수의사는 보호자와 동물, 누구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직업적 책임이 있을까?2)

 

흔히 이것을 소아과 의사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부모로부터의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이 환자로 오는 경우, 소아과 의사는 보호자가 아닌 아이를 위해 학대 신고를 할 직업적 책임을 가지고, 필요한 경우에는 법원에서 아이의 입장을 대변해서 전문적 소견을 증언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 역시 소아과 의사가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수의사도 마찬가지다. 동물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동물의 입장을 궁금해한다. 그리고 동물의 입장을 대변해 줄 전문가를 찾는다.

그런데 수의사의 경우에는 단순히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만 아니라 그들을 옹호해 주는 역할까지 하도록 기대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의사에게 바라는 역할은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는 옹호자의 역할이지, 그저 돈을 받고 동물의 죽음을 집행하는 단순 기술자의 역할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3)

 

안락사와 같은 전문가적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작년 세계적 히트를 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면 장기밀매를 하는 진행요원들과의 뒷거래를 통해 탈락자들의 장기를 적출해주고 다음 게임의 정보를 얻는 외과의사 ‘병기’ 캐릭터가 나온다.

거래이긴 하지만, 진행요원들에게 장기밀매는 부수입의 수단인데 반해 병기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니 동등한 위치에서의 거래라 할 수 없겠다.

병기는 장기밀매단에게 그저 장기를 떼어내는 도구 정도의 취급을 받고, 심지어 그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알려 달라는 풍자 섞인 조롱까지 받는다. 같은 행위임에도, 무엇이 의사로서의 행위와 도구로서의 행위를 구분 짓는 것일까?

전문직의 특성으로 ‘자율성(professional autonomy)’이 있다. 수의사 개인에게 있어 자율성이란, 동물을 치료하기 위한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의 독립적 판단 이외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치료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 수의사는 외부의 영향력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회는 수의사가 동물 환자와 보호자에게 무엇이 최선일지 오직 그 가치에만 따르는 것을 바라 자율성을 쥐여줬다.4)

그럼에도 수의사가 외부의 영향력에 의해 금전 혹은 그 외에 다른 이익을 좇는다면, 그것은 바로 전문직의 자율성에 대한 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율성이 없이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수의사의 행위는 의술이 아닌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위의 케이스에서 안락사 수행 여부는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장례업체가 결정했다. 계약에 따라 움직이는 수의사는 장례업체의 안락사 도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경제적 이익의 추구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수의사는 동물 진료에 대한 독점권과 그 행위에 대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분명 안락사를 수행하며 비용을 보호자에게 청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비용에 포함된 가치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아마 ‘원가’를 고려할 것이다. 안락사에 필요한 의약품, 주사기나 카테터와 같은 소모품, 소요 시간과 노동력, 안락사 지식 습득에 대한 비용 등 안락사의 수행에도 현실적으로 소요되는 비용은 있기 마련이다.

또한, 안락사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수의사에게도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므로 그 과정에서 오는 슬픔이나 스트레스, 죄책감 같은 것들을 감당하는 것에 대한 보상적 비용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안락사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비용도 책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락사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보호자와 환자를 만나고, 동물의 상태와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을 고민하고, 치료를 시도하고,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보호자와 상의하여 안락사를 결정하기까지 그 일련의 관계 형성과 의사소통 과정 전체에 대한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안락사 역시 진료 과정의 일부이고, 진료는 수의사가 보호자와 함께 환자에게 최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다.

미국수의사회의 수의윤리원칙(Principles of Veterinary Medical Ethics)에서는 이것을 반영하여 수의사-보호자-환자 관계(Veterinarian-Client-Patient Relationship;VCPR)의 형성 아래에서 진료가 이루어지는 것의 중요성을 명시하고 있다.5)

위의 케이스에서, 장례업체에서 보내주는 동물을 안락사만 하게 되면 보호자나 환자와 관계 형성 자체가 아예 없다.

그렇다면 수의사는 누구와 무엇을 고민할 수 있는가? 수의사는 그저 장례업체와의 관계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형태의 진료 아닌 진료기록만 남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에는 동물 환자의 최선을 고민하고 안락사를 판단하는 과정에 대한 금액을 포함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생명의 어떤 부분까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가 흔히 미용을 목적으로 하는 의원에서 “1+1시술”이라던지, “피부 미백 패키지” 같은 마케팅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투석-수혈 패키지 할인권”이라던지, “뇌경색 환자 1+1” 패키지 같은 것은 본 적이 있는가? 생명을 대상으로 이익을 취할 때에는 그 정도가 있는 법이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고, 오늘날 이 철학은 동물에게도 상당 부분 적용되어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6)

위의 사례에서, 장례업자는 죽음을 상품화해서 마케팅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생명의 상업적 이용에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같은 의료행위라고 하더라도, 안락사 역시 그런 측면에서 생명을 거두는 의료행위로써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수단인 것이다.

*   *   *   *

정리하자면, 안락사는 수의사의 영향력이 크므로 직업적 자율성을 가지고 수의사의 올바른 가치판단 하에서 숙고하여 제공되어야 하는 의료행위이다.

안락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의사는 여러 이해당사자의 이익과 손해를 고려하여야 하고, 특히 동물의 옹호자로서 이익을 대변하는 직업적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이 케이스에서 장례업체는 이러한 과정을 모두 생략해버렸고, 수의사에게 도구로써 안락사의 약물을 주입하는 행위만 남겨놓았다.

경제적 이익의 추구 측면에서 볼 때, 이 안락사는 애초에 진료관계(VCPR)가 성립하지 않았으므로 유효하다고 볼 수도 없겠지만, 설사 비용을 청구한다고 해도 그 책정 근거에 대한 타당성이 부족하다.

또한, 생명을 거두는 행위인 안락사를 수의사가 상업적인 수단으로만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 역시 적절하지 않다.

 

1) Main, D. C. “Offering the best to patients: ethical issues associated with the provision of veterinary services.” The Veterinary Record 158.2 (2006): 62-66

2) [더 읽을거리] ”Convencience euthanasia” Mullan, Siobhan, Anne Quain, and Sean Wensley. Veterinary ethics: Navigating tough cases. 5M Books Ltd, (2017): 89-94.

3) Kipperman, Barry. “Veterinary Advocacies and Ethical Dilemmas.” Ethics in Veterinary Practice: Balancing Conflicting Interests (2022): 123-144.

4) 한희진, et al. “의료전문직업성의 역사와 철학: 자율성과 자율규제의 의미.”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보고서 (2016): 1-186.

5) 미국수의사회(American Veterinary Medical Association; AVMA) 수의윤리원칙(PVME) : https://www.avma.org/resources-tools/avma-policies/principles-veterinary-medical-ethics-avma

6) Mullan, Siobhan, Anne Quain, and Sean Wensley. Veterinary ethics: Navigating tough cases. 5M Books Ltd, (2017): 44-47.

<수의 윤리 라운드토론은 대한수의사회, 서울대 수의대 수의인문사회학교실과의 협의에 따라 KVMA 대한수의사회에 게재된 원고를 전재한 코너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아래 QR코드나 바로가기(클릭)로 보내주세요-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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