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동물병원 17년 하고 47살에 미국수의사 된 이유는요…”

김태환 수의사에게 듣는 미국수의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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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수의사(사진)는 1999년 반려동물 임상을 시작해 2001년 동물병원을 오픈했습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서울시수의사회 홍보이사, 관악구수의사회 회장을 역임하고, <딩동~ 개 도감>, <딩동~ 고양이 도감>, <야옹냐옹, 길고양이> 등의 책을 썼습니다. 데일리벳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죠.

수의사가 동물병원을 개원하고 몇 개월~몇 년이 지나면 “동물병원 자리 잡았어?”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요, 김태환 수의사는 흔히 말하는 ‘자리 잡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던 원장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2018년 8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47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5년 차 미국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김태환 원장을 만나 미국 상황, 한국과 미국 임상의 차이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Q. 원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5년 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미국에 간 뒤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오지 못하다가 이제야 오게 됐다. 미국으로 떠난 뒤 5년 만에 처음 한국에 온 것이다.

우선, 서울이 역시 큰 도시라는 점을 느꼈다(웃음).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끼며, 현대화된 도시에 살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온 김에 동물병원 몇 군데를 가봤는데, 5년 전보다 훨씬 발전했더라. 장비와 시설은 물론이고, 진료의 질과 수준도 많이 향상됐다. 한국 수의학은 발전이 빠르고, 수준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한다.

Q. 미국에 가신 게 2018년인데요, 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2014년 가족과 함께 몇 달간 미국에서 생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미국 생활을 해보고 동물병원도 몇 군데 가보면서 미국수의사가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하지만, 막상 ‘미국 수의사가 되어야지’라고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

가족들도 미국 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먼저 미국으로 갔고, 나도 한국에서 미국수의사를 준비한 뒤 가게 됐다.

미국수의사가 될 수 있는 2가지 경로(ECFVG와 PAVE)를 같이 준비했었는데, ECFVG도 실습시험 전까지 합격했지만 최종적으로 PAVE 과정을 선택했다. 52주간 미국 수의대 4학년 학생들과 함께 동물병원 로테이션을 돌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는 개인 동물병원, 예방의학 중심 동물병원, 응급의학전문 동물병원, 기업형 동물병원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동물병원에서 일했다.

Q. 한국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임상을 하고, 동물병원도 17년이나 운영하다가 많은 걸 내려놓고 미국으로 가셨는데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고, 수의사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대우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몇 달 동안 미국에 있을 때 느낀 점이 많았다.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했지만, 그래도 도전했다.

Q. 미국수의사 준비 과정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영어가 가장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한 세대가 아니다 보니 Reading, Writing은 거의 만점이 나왔지만, Speaking 때문에 고생했다.

수의학 공부의 경우, 임상을 오래 했음에도 다시 기초부터 공부하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수의사로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동물병원을 운영 하면서 준비했기 때문에 그룹 스터디는 하지 않고 혼자 준비했다.

Q. PAVE 과정은 어떠셨나요? 한국에서 임상을 경험했으니 조금 더 수월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오클라호마주립대(Center for Veterinary Health Science of 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PAVE 과정을 했다.

아무래도 임상경험이 있으니 검사나 치료가 왜 이렇게 진행되는지 조금 더 잘 이해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수의대를 졸업한 지 20년 이상 지났고, 그 사이 수의학도 많이 발전했으며,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했던 수많은 케이스를 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정말 교과서에서만 보던 케이스가 오더라.

그래서 ‘이 시스템에 녹아 들어가서 더 배우고, 노력하고, 새로운 이론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나를 더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52주 동안 각 과를 돌면서 ‘각 수의과대학이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미국수의사는 어느 정도 실력을 다 갖추고 배출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겪은 과정을 다른 수의사도 경험했을 테니 자연스레 다른 수의사를 믿고 신뢰할 수 있게 된다.

미국에서는 (물론 현장 적응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의사가 되면 바로 수의사로서 역할을 충분히 한다.

아무래도 동물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기존에 하던 것만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PAVE 과정을 거치면서 새롭게 수의학 공부를 다시 한 것 같다.

Q. 현재는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요?

지금은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다. 주4일 일 하면서 충분한 여유시간을 가지고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다. 또한, 개원을 준비 중이다.

Q. 우리나라와 미국의 반려동물 임상을 모두 경험하셨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우선 수의사의 처방권, 진단권이 잘 보장된다는 점이 큰 차이인 것 같다. 법적인 것을 떠나 미국에서는 사회적 분위기나 보호자, 테크니션과의 관계에서 ‘수의사’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수의사의 권리가 잘 보장된다.

테크니션이 동물병원의 중추적인 허리 역할을 하는 점도 다르다. 보호자 상담, 약물 교육, IV, 주사 등을 테크니션이 담당하기 때문에, 테크니션이 잘 훈련되어 있고 협력이 잘 되면 수의사 한 명에서도 많은 진료를 담당할 수 있다. 물론, 진단과 처방은 꼭 수의사가 한다.

현재 내가 근무하는 병원도 수의사는 1명이지만, 테크니션이 8명, 리셉셔니스트가 4명, Practice Manager가 1명 있다. 한국에서 임상을 했을 때는 흔히 말하는 1인 동물병원도 했었는데(원장 1명+테크니션 1명) 큰 차이가 있다.

처방전을 발급하는 경우도 많다. 동물병원에서도 약을 판매하긴 하지만, 온라인을 포함해 약 구매처가 다양하므로 처방전을 발급할 때도 많다. 약 판매처에서 약을 보호자에게 판매하기 전에 내가 발행한 처방전이 맞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 그 정도로 수의사의 처방권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병원 내 검사가 적은 점도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엑스레이는 촬영만 하고 판독은 외부에 의뢰한다. 보통 판독에 하루 정도 걸리고 급하면 몇 시간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혈액검사도 채혈을 해서 외부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병원이 바쁘기 때문에 엑스레이 판독이나 혈액검사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 외부에 판독·검사를 의뢰하는 것이 낫다. 전문의가 판독하기 때문에 결과도 더 정확하다. 동물병원 입장에서는 효율이 높아지고, 검사 결과의 정확성도 보장된다. 미국 보호자들은 검사 결과가 하루 이틀 걸리는 것에 익숙하다.

Q.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컴플레인은 없나요?

없지는 않지만, 한국보다는 적은 것 같다. 미국은 워낙 사람진료비가 비싸다. 그러다 보니 동물진료비에 대한 저항도 적은 것 같다.

Q. 최근 미국 수의업이 굉장히 호황이고, 미국수의사도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상황이 어떤가요?

그렇다. 미국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수의사가 호황인 상황이다.

원래도 수의사가 부족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동물병원과 수의사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진료나 수술을 받기 위해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한다.

미국은 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드 동물병원이 많은데, 수의사를 구하지 못해 지점을 운영하지 못할 정도다. 내가 있는 동물병원도 수의사를 한 명 더 채용하려고 했지만, 결국 뽑지 못했다.

수의사가 부족하다 보니 연봉과 대우도 좋아졌다. 주 5일 근무하는 수의사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주 4.5일이나 주 4일 근무를 한다. 근무 시간도 한국보다 적고 연봉이 높기 때문에 수의사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Q.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이 AVMA 인증을 받았습니다. 서울대 수의대를 졸업하면 바로 NAVLE 시험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미국수의사가 되기 위해서 몇 년간 많은 노력을 하며 힘든 과정을 겪었다. 따라서 서울대 수의대의 AVMA 인증은 엄청난 가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수의대를 졸업함으로써 미국수의사 시험을 볼 기회를 바로 얻는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바꾸기 어려운 혜택이다.

그만큼 그동안 선배 수의사들이 많은 노력을 했고, 우리나라의 수의학이 발전했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미국수의사에 관심이 있는 수의사, 수의대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다. 새로운 문화와 사회에 적응 해야 하고, 친구나 선후배 등 커뮤니티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환상’만 가지고 접근해서도 안 된다.

우선 미국수의사가 되고 싶다면, 영어부터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 영어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될 만큼 준비하길 바란다.

몇 년간 어려운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과 각오도 필요하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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