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의인물사전 113] 가축위생연구소 기술고문 ‘나카무라 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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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의인물사전 113. 나카무라 준지(中村稕治 1902~1975). 도쿄제국대학 수의학과 졸업, 조선총독부 수역혈청제조소 기수, 가축위생연구소 기술고문, 일본생물과학연구소 소장 및 이사장, 우리나라 돼지열병 방역에 기여

1902년 4월 23일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때부터 도쿄에서 생활하였으며 1926년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수의학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 「우역에서의 보체결합반응」으로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평생 수의바이러스 분야의 일을 하였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조선총독부 수역혈청제조소(부산 가축위생연구소의 전신) 기수(현 연구원)로 들어가, 기사(연구관)를 거쳐 1938년 사업부장이 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함에 따라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도망하다시피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미군정청의 요청으로 오치 유이치[越智勇一]와 함께 미 군정청 관리 하의 가축위생연구소 기술고문으로 남았다. 지휘감독권은 없었지만 해방 전과 같이 바이러스(병독) 과장실을 사용하면서 일하다가 1946년 5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귀국에 즈음하여 패전 직후의 혼란기였지만 연구를 지속하기 위하여 민간 연구소 설립을 주장하고 뜻을 규합하였다. 육군수의자재본창공원(陸軍獸醫資材本廠工員) 기숙사로 사용하였던 장소(東京都 立川市 소재)의 한쪽 구석에 비교병리학연구소를 설립하였는데, 1947년 일본수의사회연구소가 해체되자 이를 흡수통합하여, 일본수의사회 연구소장을 역임한 곤도 쇼이치[近藤正一, 1886~1967]와 함께 사단법인 일본생물과학연구소로 발전시켰다(이 연구소는 1978년 靑梅市로 이전됨). 초대 이사장 마쓰바 시게오[松葉重雄, 1947~1948 재임], 제2대 이사장 곤도 쇼이치(1948~1951 재임)에 이어 1951년 제3대 소장 및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일본으로 귀국한 후 작고할 때까지 28년 동안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각종 인수감염병의 병원, 병리, 진단, 예방을 중심으로 우수한 업적을 이룰 수 있게 지도하였다. 실험동물에도 관심을 가져 야마나시[山梨]현에 부속실험동물연구소를 설립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수의학과 출신의 동기생으로 함께 부산 가축위생연구소에서 근무하였던 오치 유이치와 나카무라 두 사람은 성격이나 인간관계 그리고 학문을 추구하는 방식과 사회활동이 서로 달랐다. 오치는 이상론자여서 연구 구상과 설계는 자신이 하고 실험은 제자에게 시켜 그 결과를 관찰하고 분석하여 결론을 얻은 다음 새로운 단계를 추구하였다. 이에 반해 나카무라는 현실론자이자 실천적 연구자여서 실험도 남에게 의뢰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하였다. 이러한 성격의 차이 때문인지 한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한 후 오치는 대학으로, 나카무라는 현장(연구소)으로 향하였다.

우역 방역 자문 지도를 위해 FAO(UN 식량농업기구)의 기관(技官, 연구관)이나 촉탁(囑託, 1957~1962)으로 나이지리아, 캄보디아. 베트남, 대만, 이집트에 파견되었으며, 방콕(1954)과 도쿄(1956)에서 개최된 OIE(세계동물보건기구) 아시아 지역 회의에 일본 대표로 참석하기도하였다.

일본 내에서는 문부성, 농림성의 각종 정부 위원(1947~1965), 도쿄대학 강사(1947~1957), 일본수의학회 이사, 일본바이러스학회 간사 및 총무간사(1953~1971) 등을 역임하였다.

뉴캐슬병, 우역, 일본뇌염, 돼지열병, 광견병, 디스템퍼, 인플루엔자 등 가축과 가금의 인수공통감염병 바이러스의 감염증 진단과 예방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다. 우역의 가토화 바이러스(L)주(1938), 가토화 계태화 바이러스(LA)주(1953)로 만든 우역 백신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소에 많이 이용되었고(2001년 지구상 종식 선언됨), 사람용 일본뇌염 백신을 발명(1963)하여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일본뇌염(사람) 방역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돼지열병 방역에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50년대의 돼지열병은 우리나라 축산의 큰 고민거리였다. 당시 돼지열병 예방약은 돼지열병에 감염시킨 돼지의 간장과 비장을 이용하는 장기예방약으로 제조되었는데 생산 원가가 높고 예방 효과가 완벽하지 않은 것이 큰 문제였다. 안양가축위생연구소 지소장(한국전쟁 중이라 부산에서 근무함) 김영한은 이러한 형편을 UNKRA(유엔한국재건단) 축산고문인 로버트 라이징거(Robert C. Reisinger)에게 털어놨으며, 라이징거는 일본 출장 중에 일본생물과학연구소를 방문하여 나카무라 소장에게 ROVAC(가토화 약독 바이러스 생백신)의 분양을 부탁해서 우리나라에 가지고 왔다. 이렇게 들어온 ROVAC이 기초 실험과 야외 실험을 거쳐 현장에 사용됨으로써 돼지열병 방역의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로버트 라이징거’ 편 참조).

1975년 1월 4일 향년 73세에 도쿄에서 작고하였다. 글쓴이_양일석, 백영기

*이 글은 한국 수의학 100여년 역사 속에서 수의학 발전에 기여를 한 인물들의 업적을 총망라한 ‘한국수의인물사전’에 담긴 내용입니다.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수의사학연구회(회장 신광순)가 2017년 12월 펴낸 ‘한국수의인물사전’은 국내 인사 100여명과 외국 인사 8명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요, 데일리벳에서 양일석 전 서울대 수의대 교수를 비롯한 편찬위원들의 허락을 받고, 한국수의인물사전의 인물들을 한 명 씩 소개합니다. 

– 한국수의인물사전 인물 보기(클릭)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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