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명 뽑는데 4명 지원’ 원로들도 걱정하는 공직 수의사 외면
대한수의사회 명예회장·고문 간담회 개최
수의사의 공직 외면 현상이 중앙정부와 지자체를 가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수의계 원로들도 공직 수의사 부족을 우려하며 처우개선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한수의사회(회장 허주형)는 8일 성남 수의과학회관에서 명예회장 및 고문 간담회를 개최했다. 김옥경 명예회장과 주영환 고문 등 수의계 원로 16인이 자리했다.
지방 수의직 공무원, 현직은 이탈하는데 지원자도 없다
강원·충남·충북·전남·전북·경북, 208명 뽑는데 단 29명 지원
대한수의사회 고문은 국가수의자문위원과 함께 대한수의사회장의 직속 자문기구다. 지부수의사회 및 중앙회 추천으로 원로 20인을 고문으로 위촉했다.
이길재·이우재 전임 대수회장을 비롯해 전직 지부수의사회장, 검역원장 등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고문의 절반 이상이 수의대 교수를 포함한 공직 출신이다. 자연히 공직수의사 부족 문제에 관심이 집중됐다.
공직 출신으로 전북수의사회장을 역임한 도홍기 고문은 공직수의사 기피현상에 대한 현황자료와 건의사항을 직접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도 고문은 “현역 수의사의 20%가량이 공직에 종사하는데도 기피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 비상근무가 연중 이어지는데다 임상 등 타 직역 대비 처우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있던 공무원 수의사들은 이탈하고, 새로 뽑으려 해도 지원하지 않는다.
도홍기 고문의 자료에 따르면, 전북도의 수의직렬 공무원은 정원 120명 중 22명이나 결원됐다. 이중 12명이 2022년 한 해 동안에만 이직·퇴직했다.
결원을 채우기도 여의치 않다. 올해 전북도가 수의직 공무원 41명의 선발계획을 공고했지만 지원자는 4명에 그쳤다. 필기시험 없이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선발하는데도 그렇다.
도 고문의 자료에 따르면 타 지자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원(선발계획25, 지원자3), 충남(선발계획33, 지원2), 경북(선발계획41, 지원9), 전남(선발계획55, 지원4) 등 축산 규모가 큰 지자체의 2023년도 수의직 공무원 임용지원 접수율은 10~20%대에 그쳤다.
승진환경·임용직급·수당 처우개선 촉구
이날 원로들은 수의직 공무원이 승진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지목했다. 중앙정부 수의조직의 고위급 인선에서부터 드러난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방역정책국이 출범했지만 오순민·김대균 전 국장을 끝으로 수의사 방역국장의 명맥이 끊겼다. 수의연구관·연구사가 많지만 정부 수의연구를 총괄해야 할 검역본부 동식물위생연구부장도 수의사가 아니다.
조직은 그대로인데 인사 적체가 지속되니 아래로도 승진이 어려워진다. 검역본부에도 결원이 늘고, 공중방역수의사조차 미달사태를 맞았다.
우연철 대수 사무총장은 “공중방역수의사는 올해 20명 넘게 미달됐다. 검역본부도 결원 규모가 40명이 넘는다”며 “지자체 공직수의사의 결원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옥경 대수 명예회장은 “예전에는 검역본부가 양성한 인재가 농식품부에서 활약하는 구조가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체됐다”고 말했다.
결국 처우개선책이 필요하다. 임용직급 상향, 수당 인상 및 지급대상 확대, 승진 환경 개선을 위한 동물위생시험소 조직승격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축산물위생관리법 관련 업무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법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수의직도 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임용직급을 현행 7급에서 6급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위생시험소 조직을 3급으로 승격해 승진 적체를 완화하는 것도 과제다.
김옥경 명예회장은 조만간 진행될 예정인 신임 검역본부장 인선을 계기로 공직·수의사회의 현안 대응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장은 “공직 수의사 처우개선을 위한 특별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 주도 방역으로) 민간 동물병원의 역할이 억제되어 있는데 정작 공직수의사를 외면하다 보니 가축방역에 허점이 생기고 있다. 거점 동물병원 체계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