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상국립대학교 수의과대학 건물에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바로 졸업생 조민희 수의사의 변호사시험 합격을 축하하는 플래카드인데요, 두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일에 도전하고 꿈을 이뤄낸 조민희 수의사를 데일리벳 학생 기자가 만나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먼저 변호사시험 합격 축하드립니다. 수의사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축하 감사합니다. 저는 경상국립대학교 수의예과 05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제가 입시를 준비할 때 한창 황우석 박사가 유명했고, 그 영향을 받아 생명공학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어 수의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Q. 그렇다면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사실 생명공학의 꿈을 가지고 수의대에 입학했지만, 막상 진로를 고민하다 보니 기초나 연구 쪽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의사 면허가 있으니 특허를 다루는 변리사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변리사의 경우 지적재산권, 그중에서도 특허 분야만 다루어서 좋게 말하면 전문성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선택의 폭 자체가 좁은 느낌이라 기왕 공부하는 김에 다양한 분야의 법률문제를 다루고 해결할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자 로스쿨에 지원했습니다.
Q. 로스쿨 준비를 위한 기간과 비용도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공중방역수의사 생활을 하면서 리트 시험과 영어 성적, 입학을 위한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3년이라는 기간 동안 꽤 여유롭고 마음 편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죠. 리트 시험의 경우, 모의고사나 기출문제를 풀고, 인강을 들으면서 준비했습니다. 비용의 경우, 다행히 제가 차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에 많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Q. 수의대와 로스쿨을 모두 다녀보셨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수의대의 경우, 보통 6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착실히 하면 국가시험에 합격하고 면허를 받을 수 있으니 학점에 대한 경쟁이 상대적으로 치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반면 로스쿨은, 학점이 좋을수록 기회가 많기 때문에 경쟁이 좀 더 치열합니다. 특히 1학년 1, 2학기 때 학점으로 실습 로펌이 정해지고, 거기서 합격 후의 회사가 결정되니 학점 경쟁이 치열한 편이죠.
또한, 수의대와 로스쿨 학생들의 연령대가 다르다 보니 과 안에서 놀거나 함께 하는 행사도 로스쿨이 좀 적은 것 같습니다.
Q. 변호사시험 준비가 힘들지 않았나요?
변호사시험은 사람을 괴롭히려고 만든 시험인 것 같습니다(웃음).
일단 시험을 총 5일 동안 치르는데, 3일차는 휴식일이고 나머지 4일 동안은 아침 10시부터 5시 반~7시까지 계속해서 쉬지 않고 시험을 봅니다. 거의 체력과 엉덩이로 보는 시험인 셈이죠. 공부하는 것도 그렇지만 시험 치르는 것 자체를 견디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론 공부량도 많습니다. 변호사시험은 총 7개의 법(헌법,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 상법, 행정법, 선택 법)으로 과목이 구성되어 있어서 공부할 분량 자체가 매우 많은 게 사실입니다.
Q. 시험 준비는 어떤 식으로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변호사시험은 사교육이 없다면 통과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저도 신촌의 유명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했고,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은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했습니다. 집에서 거의 눈만 붙이는 수준으로 잤던 것 같아요.
Q.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시험 준비 과정에서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었나요?
저는 초시에 바로 합격하지 못하고 조금 늦게 합격한 케이스인데요, 결혼기념일 때 제주도로 놀러 갔다가 아내와 함께 불합격 발표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억에 남네요.
Q. 지금은 아내 분과 함께 합격을 온전히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은 어느 곳이고 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워라밸도 궁금합니다.
지금은 의사 출신 변호사께서 운영하는 로펌에서 수습 기간을 거치고 있습니다. 주로 의료 소송 및 여러 가지 의료 관련 행위들에 대한 법적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로펌 대표님께서 병원 경영도 해보셨던 분이라 의료 소송에서 어떤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의료 소송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료 관련 여러 법적 문제들(부정수급, 면허취소 등)과 교통사고 사건 및 일반 민·형사 사건도 같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워라밸의 경우, 지금은 제가 수습 기간이라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일하는 정식 변호사분들을 보면 워라밸이 좋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업무량 자체가 많고, 자기가 맡은 사건은 끝까지 책임져야 해서 보통 주 2~3회 정도는 기본으로 야근을 하는 것 같아요.
Q. 현재 로펌에서 동물병원 및 수의사법과 관련된 법률문제도 다루시나요?
아직 수의사법이 의료법보다 체계화되어 있지 않아서 의료법보다 문제의 소지가 적은 것 같습니다. 또한, 아무래도 아직까지 반려동물의 생명 및 건강에 대한 인식이 사람과 다소 차이가 있어 소송 자체도 적은 편입니다. 그래서 아직 관련 소송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반려동물 의료 소송도 사람의 의료과오소송과 그 구조 및 법리가 유사하고, 동물병원에 대한 행정소송도 본질적으로 사람에 대한 소송과 기초적인 법리는 유사하므로 의료 소송 분야에서의 경험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수준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아마 장기적으로 케이스가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수의사 면허 소지자로서 변호사로 근무할 때 장점이 있나요?
제가 지금 있는 로펌에 한정해서 생각한다면, 의료 사건 소장이 왔을 때 상대적으로 쟁점을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쪽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잘 이해하지 못할 의료 용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사건은 케이스의 사실관계 자체가 중요한데, 수의학을 전공한 사람이 비전공자보다 유리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회사 면접을 볼 때도 수의사 면허가 있기 때문에 이력서를 보지도 않고 뽑으시더라고요(웃음).
Q. 변호사가 된 후 생긴 새로운 목표가 있나요? 1년 후와 10년 후로 나누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년 후에는 어디든지 채용되어 자리를 잡는 게 제 목표고요, 10년 후에는 저만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개업을 해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수의대 졸업 후 변호사를 꿈꾸는 사람들과 수의대 학부생에게 조언을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로스쿨 입학과 변호사는 수의대 졸업 후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전하고 진입 가능한 분야입니다. 수의학과 법학 분야는 응용학문으로 방법론적인 부분에서 생각보다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법학이든 수의학이든 고객에게 답을 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답을 이론과 기존 사례들을 참고해서 찾아내고 밝히는 것이 주된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수의학과 법학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학부생들에게는 학생이라는 시기는 도전할 수 있는 기회 및 가능성이 많은 것이 장점이니, 가능하면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맞는 진로를 학부생 때 꼭 찾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졸업 후에도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찾고 진로를 바꿀 수 있으니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시간이 있을 때 많은 것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안세정 기자 dkstpwjd40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