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에 판매한 인체약 전산보고 의무화 눈앞
약사 출신 서영석 의원 대표발의한 약사법, 국회 법안소위 통과
약국이 동물병원에 판매한 인체용의약품 내역의 전산보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지역 약사회 회장을 역임한 약사 출신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사진, 경기 부천정)이 지난해 12월 발의한 약사법 개정안이 18일(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것이다.
의약품 유통관리체계를 강화한다는 취지의 법이지만, 동물병원으로의 인체용의약품 공급이 줄어들어 동물 환자의 복지가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동물병원에 판매한 인체용의약품 내역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보고 의무화
이번 법안은 약국개설자가 동물병원 개설자에게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판매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물병원의 명칭, 연락처, 의약품 명칭, 수량, 판매일 등을 제출해야 한다.
현재도 약국개설자는 ‘약사법’에 따라 동물병원에 인체용의약품을 판매하면 동물병원 명칭, 연락처, 의약품 명칭, 수량, 판매일을 ‘의약품 관리대장’에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불대장으로는 판매내역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서 의원의 판단이다.
서영석 의원은 “약국개설자가 동물병원 개설자에게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의약품관리종합센터에 판매 내역을 보고하도록 함으로써 의약품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유통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공포 후 1년 6개월 뒤 시행된다.
동물병원의 인체용의약품 구입 힘들어져 동물복지 저해 우려
도매상에서 바로 인체약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제 개선 필요
현재 동물병원 수의사는 동물을 진료할 목적으로 인체용전문의약품을 약국으로부터 구매해 사용한다. 새로운 동물용의약품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약은 인체약이 동물약보다 많다.
문제는 약국에서 인체용의약품을 구매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인체용의약품 도매상에서 직접 약을 공급받는 병의원과 달리, 동물병원은 소매상(약국)을 통해서만 인체약을 구매해야 하는 불합리한 규제를 적용받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약국이 동물진료에 필요한 약품을 모두 구비하고 있지 않아 문제다. 전국 12개 시도의 약국을 조사한 결과, 동물진료에 흔히 사용하는 수액 주사제를 보유한 약국이 단 3%에 그쳤다는 통계도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동물진료에 필요한 의약품을 갖춘 소수의 약국이 전국 동물병원에 인체용의약품을 공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도 동물진료에 필요한 약품을 갖춘 약국이 극히 드문데, 판매내역을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까지 생기면, 동물병원으로 인체용의약품을 판매하는 약국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대한수의사회 역시 “약국에서 동물병원으로 인체용의약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약국에 의무를 부과하면 약국에서 해당 인체용의약품 판매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며 법안에 반대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일선 동물병원에서 인체용의약품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물환자가 입게 된다. 동물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서 동물복지가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병원에서 인체용 의약품을 약국이 아니라 (병·의원처럼) 인체용의약품 도매상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
대한수의사회도 “동물병원에서 진료에 사용하는 인체용의약품의 경우, 약국뿐만 아니라 인체용의약품 도매상에서 공급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17대,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됐었지만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도매상에서 동물병원으로의 인체용의약품 공급을 허용하는 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대한약사회는 “의약품오남용 방지를 위해 약국에서만 구입을 허용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약국에서 동물병원으로 인체약을 공급하나, 도매상에서 동물병원으로 인체약을 공급하나 관리자는 모두 ‘약사’이기 때문에 오남용이 우려된다는 약사회의 설명은 약사회 스스로 회원 약사의 의약품 관리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발의된 수의사법은 과연?
한편, 서영석 의원은 지난해 약사법 개정안과 수의사법 개정안을 동시에 발의했다.
수의사법 개정안은 수의사가 동물을 진료할 목적으로 인체용 전문의약품을 사용할 때마다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eVET)에 사용내역 입력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도 일선 동물병원은 인체약을 구입해 사용할 때 ‘인체용의약품 출납대장’을 비치하고 출납 현황을 기록해 1년간 보존해야 한다. 서 의원 법안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인체약 사용 내역을 처방관리시스템에 의무적으로 입력하고, 「약사법」에 따른 의약품유통정보와 연계하도록 했다.
더욱 강력한 규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수의사회는 “동물의료체계에 과도한 규제를 하는 법안”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동물병원에서 사용하는 인체용의약품의 사용량과 재고량을 모두 입력하는 것은 현장의 수의사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할 뿐 아니라 진료행위에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인체용의약품 출납대장 작성도 규제인데, eVET에 의무적으로 입력하게 하는 것은 과하다는 게 대한수의사회의 입장이다.
실제, 미국(extra label), 호주(off label) 등 선진국 대부분이 동물진료에 인체용의약품을 사용하고 있으나 별도의 전산관리는 하지 않는다. 게다가, 애초에 수의사처방관리시스템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의 사용내역을 파악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인체용의약품 관리에 사용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법적으로 의약품 구매·사용·재고량 기록을 의무화하는 것은 면허자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심한 규제라고 생각한다”며 “(의약품 유통관리는) 판매기록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영석 의원의 수의사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농해수위에 계류 중이다. 대한수의사회는 이 법안이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어 논의될 경우 강력하게 반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