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에서 이어집니다
▶ Exotics를 좋아하는 덕후들의 모임
나 홀로 미국행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것도 Exotics Conference와 Cornell University Externship까지 해서 총 한 달 가까이 미국에 체류해야 했기에 덜덜 떨면서 입국심사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오랜 기다림 후, 입국심사에서 위 두 가지 목적으로 입국했다고 말하니 담당자가 웃음을 참으면서 “What’s an Exotics Conference?”라고 물어봤습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Exotics Conference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이상한 학회(?)”가 되니, 웃길 수도 있겠구나 싶어 담당자와 함께 웃으며 스몰 토크를 하고 입국심사를 마쳤습니다.
아무래도 강아지와 고양이에 비해 앵무새, 도마뱀, 토끼와 같은 특수동물은 키우는 사람도 적고, 당연히 연구하는 사람도 적기에, 다수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반려 앵무새를 키운다고 주변에 말하면 “앵무새가 주인을 알아봐?”라고 물어보는 수의대생들도 많아서, “특수동물”은 일반인은 물론,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도 생소한 분야임을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번 실습에서는 숨기지 않고 특수동물에 대한 애정을 뽐내는 사람들을 잔뜩 만날 수 있었기에 개인적으로 정말 행복했습니다.
예를 들면, Exotics Conference의 첫날, plenary session에서 행동풍부화의 일환으로 멀리 있는 앵무새들끼리 자발적으로 화상통화를 할 수 있게 훈련하는 연구에 대한 발표가 있었는데, 그 큰 연회장을 꽉 채운 사람들 모두가 단전에서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가방에 파랑새 키링을 달고 다녔던 것이 우스울 만큼 머리 색깔부터 모든 옷과 착장에 도마뱀 또는 앵무새로 도배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또 코넬대학교 엑스턴십에서도, 교수님과 수의사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특수동물을 좋아하시고 이해하시는 분들이었기에 보호자와 특수동물 토크를 주고받느라 상담이 길어질 때도 많았습니다. 한 달간 홀로 지내서 외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같은 관심분야를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행복을 쌓아 올 수 있었습니다.
▶ 힘들었던 만큼 얻어간다!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겠지만, 2주간의 실습은 제가 얻어가는 것만큼이나 정말로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초반에는 처음 보는 차트 프로그램에, 한글로도 작성해 본 적 없는 차트를 영어로 작성하고, 보호자들과 영어로 문진을 하는 것은 물론, 아침저녁으로 통화도 해야 했고, 영어 라운딩을 준비해야 했던 것도 정말 큰 부담이었습니다.
수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로테이션 도는 학생들이 진료 시스템 관련해서도 친절하게 가르쳐주긴 했지만, 처음에는 매일 차트에 고치고 추가해야 할 내용들이 산더미였기에, 케이스 공부는커녕 밤을 새우며 차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첫 며칠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아 그냥 교수님께 공부만 하고 싶다고 말할 걸…’하고 살짝 후회도 했지만, 다행히도 일적인 부분은 금세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문진부터 맡아서 하고, 차팅을 위해 모든 진료와 진단, 처치 과정을 이해하고, 흐름을 확인해야 했기에, 저에게 주어졌던 케이스들만큼은 그 어떤 실습에서보다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테이션을 도는 코넬대학교 학생들과 동일한 부담을 지게 되면서 일종의 동료애가 생겨(?) 짧은 기간 동안 보다 친해질 수 있었던 점도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실습 중반부 이후에는 케이스 공부를 할 여유도 생기고, 로테이션을 도는 학생들은 물론, 특수동물과 선생님들과도 많이 친해져서 실습이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쉽기까지 했습니다.
▶ 질문 방식의 차이
실습 초반에 당황스러웠던 점 중 하나는,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서로 질문을 정말 많이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 교수님께서는 단순히 지식을 묻는 질문이 아닌, 학생들과도 환자의 상태에 대해 논의하며 “그래서 앞으로 너의 진료 계획은 어떻게 돼?”식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기에 “음…”하고 대답을 하지 못했고, 같이 로테이션 돌았던 학생이 “그럼 A를 해보는 건 어떤가요?”라고 대답을 했으며, 교수님께서 “A도 좋은 생각이지. B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답변을 하셨습니다.
제가 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완벽한 진료 계획을 작성해서 발표해야만 할 것처럼 생각해서 우물쭈물 대답을 못했던 것에 비해, 현지 학생들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을 표현하고 질문하는 데 익숙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매일 있는 라운딩에서는, 인턴선생님들은 물론 학생들도 교수님들과 ‘수평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게 많이 느껴졌기에 매번 새롭고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 적는 것과, 현지 학생들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비교하였을 때, 어떤 자세가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가 능동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2주간 교수님께서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제 어떤 처치를 해야 하지?’와 같이 생각하고 공부하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 광활한 학교와 협진의 끝판왕
코넬대학교 동물병원과 수의과대학의 규모는 정말 컸습니다. 실습 초반 4-5일까지도 제가 학교 내에서 길을 잃을 정도였죠. 그만큼 과가 세분화되어 있었고, 각 과마다 전공 수의사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특수동물과는 특히나 타과와 협진을 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다양한 과의 선생님들을 직접 만나서 의견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제가 실습을 하는 기간만 해도, 포유를 하는 토끼에서 새끼들에게 영향을 덜 줄 수 있는 약물을 모색하기 위해 산과 전문의에게 자문받고, 부정맥 의심 썬코뉴어의 ECG를 확인하기 위해 심장 전문의에게, 신장 종양 토끼에서의 항암과 예후에 대해 종양 전문의에게, 다리 기형 에뮤에서의 의족 제작 관련하여 재활의학 전문의에게 자문을 받으러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전문의들에게 쉽게 자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실습의 큰 매력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 특수동물 진료에 대한 사고방식 변화
특수동물은 개와 고양이에 비해 개체수가 적고, 반려동물로서 받아들여진 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와 고양이보다 수의학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연구가 덜 되어있어서 특수동물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도 많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Exotic Conference에 참가하고, 코넬대학교에서 실습을 하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적은 분야가 아닌, “얘네를 위해서 연구할 거리가 많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은 분야!”라고 생각의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제가 만났던 교수님들처럼, 더 많은 종의 동물들이 의학적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이 분야를 연구하는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와, 이런 실습을 어떻게 찾았어?”
위 질문은 놀랍게도 Exotics Conference 첫날에 wet lab에서 만났던 영어권의 수의대생에게 받은 질문입니다. 제 주위에 코넬대학교 엑스턴십을 준비해서 다녀온 사람이 없었기에, 위 질문을 한국에서도 정말 많이 들었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수의대생에게도 동일 질문을 들어서 다소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제 경험을 자세하게 알리기 위해 ‘이번 연도 데일리벳 실습후기 공모전에는 꼭 참가해야지!’라고 다짐했습니다.
미국 대학 실습에 관심은 있지만, 직접 연락을 하기 무섭거나, 신청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찾기 어려워서 신청하지 못했던 분들은 지원절차 체계화가 비교적 잘 되어있는 코넬대학교 엑스턴십에 꼭 지원해 보시길 바랍니다!
또 Exotics, Sports Medicine Rehabilitation, Oncology와 같이 특수한 분야의 대학병원 로테이션을 경험해보고 싶으신 학생분들께 이 실습을 강력 추천합니다! 굉장히 크고 유명한 대학인 만큼, 분과가 정말 잘 되어있고, 유명하신 교수님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특히나 제가 다녀온 “특수동물과” 교수님들도 Exotics Conference에서 가장 많은 강연을 준비하신 분들 일 정도로 유망하신 교수님들이고, 외부 실습생인 저를 포함하여 학생들의 교육에 진심이셨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제가 공부하고 싶어서 교과서를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직접 사용하는 강의자료도 함께 주며 공부하라고 하셨고, 코넬대학교 3학년 학생들의 특수동물과 수업이 일주일에 4시간 정도 진행될 시기였는데, 시간 되면 강의실에 들어와서 수업도 같이 들으라고 먼저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구강 편평 세포암종 앵무새의 실리콘 이식물 삽입”으로 케이스 리포트를 낼 생각이 있으면(!) 도와주시겠다고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입원환자가 많을 때였기에 너무 바빠서 수업도 참관하지 못했고, 로테이션 업무만으로도 벅차서 흔쾌히 케이스 리포트를 준비해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제가 적극적으로 공부를 하고 실습을 하는데 교수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고, 이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딱히 특별한 분야에 관심이 있지는 않아도 PAVE 과정을 통해 미국 수의사에 도전할 의향이 있거나, 특정분야에 전문의 과정을 생각하고 계신 학생분들께도 해당 실습을 추천합니다.
짧은 기간, 그리고 한 과 만을 선택하여 실습했지만, 현지 학생들의 로테이션을 경험할 수 있었고, 교수님들과 과에 계셨던 인턴 선생님들께 전문의 과정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참고
① 저는 같은 기간에 UC Davis Externship도 알아보고 준비했습니다. 참고로, 코넬대학교보다 실습 비용이 절반으로, 훨씬 저렴하기에 둘 다 같은 기간에 붙는다면 UC Davis Externship에 다녀오고자 했습니다.
다만, 코넬대학교와 다르게 학생비자 발급이 필요하여 이와 관련하여 4개월 이전에 연락을 해야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아서 지원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UC Davis는 코넬대학교와 다르게 “공인영어성적”과 “추천서”를 요구하니 참고하세요! 또한, 사이트에 전화번호가 있으나 전화통화가 불가능했고, 어렵게 이메일smehrlich@ucidavis.edu을 받아 문의 사항을 해결했습니다.)
② 정확한 절차나 충족 요건은 잘 모르지만, AAV에서 저처럼 조류를 보는 동물병원에 실습을 가고자 할 때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해 주는 장학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저는 너무 급하게 신청하느라 준비하지 못했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