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과대학도 통합 6년제 논의..통합교육과정 개편 병행돼야
임상 노출 빨라야 기초 교육도 효과..나선형/Z형 커리큘럼 하려면 통합 학제 선행
6년제 학제 개편을 자율화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이 예고된 가운데 수의과대학 사이에서도 통합 6년제 전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22일 서울대 수의대에서 열린 한국수의과대학협회(한수협) 심포지움은 통합교육과정과 학제 개편에 주목했다.
통합 6년제 개편이 단순히 본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초과목을 내려 보내는 식으로 흐르면 곤란하다. 기초-임상-전문직업성을 연계하는 통합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커리큘럼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거기반의료에 익숙한 졸업생 배출하려면
기초-임상 연계 저학년부터 보고 느껴야
Z형 커리큘럼 제시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수의대·의대‧치대‧한의대의 학제를 예2+본4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이 같은 강행규정을 삭제하고 각 대학이 학칙에 따라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1+5로 하든, 통합 6년제로 하든 각 대학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교수에게 요구되는 교수시간도 자율화한다. 4년으로 한정된 본과 기간과 교수별 책임시수에 막혀 있던 커리큘럼 개정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이날 심포지움은 통합교육과정을 주로 다뤘다. 근거기반수의학(evidence-based veterinary medicine)을 잘 펼치는 수의사를 양성하려면 기초-임상-전문직업성 교육을 통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 수의과대학 교육은 전통적 형태에 머무르고 있다. 각각을 따로 가르치면 학생들이 알아서 연계시키길 기대하는 방식이다. 기초수의학을 배우는 학년, 임상수의학을 배우는 학년이 따로 있다.
이를 두고 이기창 전북대 교수는 “21세기 학생들을 20세기 교수들이 19세기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명선 서울대 교수도 “일제시대에 시작된 교육과정과 큰 차이가 없다”고 꼬집었다.
수의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로선 기초과목이 후에 어떻게 연계될지 알기 어렵다. 동기부여가 떨어지기 쉽다. 임상과목을 배우면서는 ‘그 기초과목이 이래서 중요했구나, 열심히 할 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후다.
이날 초청 특강에 나선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이지현 교수는 “성인학습자는 ‘이걸 왜 배워야 하지’ 이해할 때 잘 배운다. 교육 필요성에 대한 맥락(context)을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조기 임상노출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과 3~4학년이 되어야 병원에 가는 대신, 입학 직후부터 임상현장에 노출되어야 기초과목이나 전문직업성(행동과학)을 배우는데 동기부여가 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Z형태의 커리큘럼을 제시했다. 나선형 교육과정과도 유사하다. 저학년에서는 기초 위주로 가르치지만 임상도 일부 포함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임상 비중을 늘리되 기초도 함께 가르치는 형태다. 전문직업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과목은 1학년부터 졸업년도까지 지속적으로 다룬다.
이미 의학교육은 물론 해외 선진 수의과대학에서는 교과목의 틀을 없앤 통합형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위트레흐트 수의과대학 1학년의 과목(block)명은 ‘From organism to tissue’, ‘From cell to molecule’ 등이다. UC DAVIS 수의과대학 1학년의 과목은 장기별로 구성된 데다, 전문직업성 교육과 동물병원 로테이션까지 포함하고 있다.
천명선 교수는 “교과목의 틀이 사라진다는 공포만 극복하면, 학생들의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지목했다.
이지현 교수는 “(보건의료계열) 졸업생은 환자 진료에 기초과학 지식을 적용하는데 능숙해야 한다. 이를 위한 나선형 교육과정, 임상조기노출, 임상표현 중심의 통합은 국제적으로도 권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움도 있다. 통합교육과정을 도입하려면 달성해야 할 목표(학습성과)가 명확해야 한다. 통합의 당사자인 교수진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소통해야 한다. ‘내 과목이 중요하다, 내 시수(강의시간)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상섭 수의교육학회장은 “수의학교육의 통합 학제 논의가 진행돼 다행”이라면서 한수협을 중심으로 수의학교육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제경 서울대 수의대 학장은 “수의학 교육체계를 전국단위로 논의해야 한다”며 “통합 6년제로 개편하면서 공통적인 교육 모듈을 만들 필요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