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와의 행복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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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실습후기 공모전 [최우수상] 충북대 수의대 민승희

어렸을 때부터 코끼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좋아했다. 평균 IQ지수가 70정도로 매우 영리하고 모계사회를 이루는 포유류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특히 코끼리는 무리생활을 하고 인간이라도 동료로 받아들였다면 장례식을 치러줄 정도로 인간과의 깊은 정서적 교감이 가능하고 사회성이 뛰어난 점이 인상적이었다.

지능이 뛰어나고 몸집이 커 인간이 강아지를 보듯 코끼리가 인간을 본다는 말에 코끼리를 직접 보고 교감하고 싶었다.

이런 와중에 Southern Thailand Elephant Foundation(STEF)에서 veterinary volunteer program을 진행하여 코끼리 병원에서 실습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어 지원하게 되었다.

STEF의 홈페이지에서 veterinary volunteering program으로 지원한다. 프로그램 지원 시 cover letter와 재학증명서 등 수의대생임을 증명할 수 있는 영문서류를 제출한다.

프로그램에 참가요건은 3학년 이상의 수의대생 또는 수의사다. 태국의 수의과대학은 수의예과와 수의학과가 나뉘어 있지 않은 6년제 학교이므로, 3학년 이상을 한국 수의대에 맞춰 생각하면 본과 1학년 이상으로 해석된다.

영문 재학증명서에서는 본과 1,2학년이 수의학과 1,2학년으로 표기되어 지원 요건을 만족하지 못했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한국 수의대의 구조에 대한 메모를 남겨놓으면 좋다.

프로그램 참가를 승인받으면, 서류 제출 시 함께 제출한 Email 주소로 코디네이터가 연락을 준다. Email을 통해 실습의 상세 일정을 조율한다.

(실습처 담당자 연락처: coordinator@stefthailand.org)

코끼리에게 이버멕틴을 투여하는 모습

일주일 동안 실습하면서 3가지 케이스를 봤다. 첫 번째 케이스는 elephant park에 살며 관광객들을 태우는 코끼리 3마리에게 생긴 외부기생충이었다. 외부기생충 감염이 심해 이버멕틴(ivermectin)을 주사했다. 가장 심한 코끼리는 2차감염까지 일어나 항생제를 투여하였다.

코끼리의 외부기생충은 귀 뒤쪽이나 꼬리 쪽에 주로 기생한다. 이번 케이스도 귀 뒤에 기생하는 경우였다. 항생제로는 페니실린(penicillin)과 에리스로마이신(erythromycin)을 혼합하여 투여했다. 코끼리는 피부가 2.5cm 정도로 두껍기 때문에 귀 바로 뒤 피부가 얇은 곳에 투약한다.

외부기생충 검체를 채취해 현미경으로 관찰하면서 종 동정을 시도했지만 채취 과정 중 외부기생충의 trunk가 부러져 아쉽게도 벼룩 종류라는 것 까지만 알 수 있었다.

Dechpan과 함께

두 번째 케이스는 짐을 끄는 코끼리였다. 이름은 Dechpan이었다. 왼쪽 귀 말단에 생긴 상처 부위 밑으로 괴사가 진행돼, 입원하여 괴사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Lidocaine으로 국소마취를 하고 괴사 조직을 제거한 후 povidone으로 소독하여 마무리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혈액검사 결과 빈혈이 있어 iron sulfate도 처방되었다.

혈액검사를 하고 남은 혈액으로 도말검사를 해보기도 했다. 코끼리는 다른 동물에 비해 eosinophil이 많고 혈액 내 존재하는 monocyte가 드물다.

경구약으로는 Ibuprofen과 cimetidine이 처방됐다. Ibuprofen은 염증 억제를 위해, cimetidine은 식욕증진을 위해 사용되었다.

코끼리는 자신의 체중 10%이상을 섭취해야 하는데, 아프면 식욕이 가장 먼저 떨어지고 식사량이 줄어 위궤양이 오기 쉽다. 평소보다 식사량이 줄면 위산으로 인한 불편함이 생기고 식욕은 더 떨어진다. 때문에 위산분비를 줄이기 위해 cimetidine을 처방한다.

Dechpan은 4일간의 괴사조직 제거를 잘 버텨내고 무사히 퇴원했다. Dechpan이 병원에 있는 동안 재밌는 일도 있었다. Dechpan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수의사팀 티셔츠를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싫어했다. 처치를 위해 밟고 올라가려고 놔둔 의자를 코로 잡아 던지기까지 했다. 의자를 집어 던지는 모습을 보며 코끼리의 지능을 실감했다.

Dechpan의 괴사조직을 제거하고 소독하는 모습
호기심 넘치는 코끼리 Bai boon

세 번째 케이스는 Elephant Endotheliotrophic Herpes Virus(EEHV)에 걸린 4년령 코끼리 Bai boon이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코끼리다.

EEHV는 0~9세의 성 성숙 이전 어린 코끼리들에게 주로 발병한다. 면역력이 약한 새끼 코끼리라면 2~3일 내에 사망할 수 있는 질병이다.

주된 증상은 고열, red eye, depress, diarrhea, swollen face, red tongue이다. Bai boon의 식욕은 계속 부진했다. 얼굴도 붓고 38도의 고열이 나타났다. 사탕수수를 거부할 정도로 식욕이 없었다.

우선 EEHV가 의심되어 선제적으로 항바이러스인 aciclovir를 투여하였다. 탈수를 막기 위해 수액처치를 시작했고 식욕증진과 해열을 위해 cimetidine과 tolfedine을 투여하였다.

Cimetidine 투여 이후 식욕이 조금 돌아와 먹기 시작했지만 열이 여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acetylcysteine, enrofloxacin, dexamethasone을 투여했지만 여전히 열은 떨어지지 않고 swollen face가 심해졌다. 결국 끄라비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Bai boon을 이송 후 설사와 빈혈 증상이 나타났지만 수혈을 받으며 버텨 무사히 퇴원했다.

Bai Boon이 있던 elephant park에는 다른 새끼 코끼리가 있었다. EEHV의 전파를 막기 위해 새끼 코끼리에게 면역력 증진을 위한 vit C를 처방하였다.

Bai Boon은 4살로 코끼리의 평균 수명이 80세라는 것을 고려하면 정말 어린 나이였다. 열이 심했고, 코끼리들이 정말 좋아하는 사탕수수까지 거부할 정도로 아픈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한지 코로 여기저기 탐색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큰 병원으로 옮긴 후에 직접 볼 순 없었지만 무사히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온을 측정하고(왼쪽) 수액 처치를 받는 코끼리(오른쪽)

임상 실습은 처음이었는데 약리시간에 배웠던 약물들이 실제로 적용되어서 신기하면서도 즐거웠다.

처음 코끼리를 봤을 때 상상 이상으로 커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코끼리병원이다 보니 아프고 예민한 코끼리들이 와서 교감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코끼리를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점은 수의사님들이 인식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고 계신 점이었다. 실습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수의사 Dr. Cookie는 “mahout(코끼리와 함께 생활하며 사육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태국어)는 코끼리를 아끼는 마음은 있지만 그 방식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Dechpan은 mahout가 상처를 자가치료하기 위해 benzene같은 물질을 상처에 부었다. 잘못된 행동이긴 했지만 코끼리를 아끼기 때문에 한 행동이기도 했다.

Dr. Cookie는 “적절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코끼리를 위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임을 알고 올바른 처치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인식개선과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유독 기억에 남는다.

태국에 코끼리를 학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코끼리를 아끼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이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는 말씀을 듣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도 막연히 태국의 코끼리들에 대한 대우가 나쁘고 학대가 많이 일어난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코끼리들의 생태와 행복을 우선한 elephant park도 많이 있었고 코끼리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한국도 동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최근 한국에서 동물의 비물건화를 이루기 위한 민법 개정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이번 실습에서 태국도 조금씩 동물 복지를 위해 나아가는 게 보였다.

함께 동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가혹한 시선보다는 따스한 시선으로 이들이 나아가는 길과 방향성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코끼리를 좋아하고 해외에서 실습하고 싶으신 분이라면 추천합니다.

코끼리와 코끼리를 치료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실습 기간 안에 입원하는 코끼리가 있다면 하루 종일 코끼리를 볼 수 있습니다.

실습생을 일주일에 2명만 받기 때문에 수의사님께 궁금한 것을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고 신경을 많이 써 주십니다. 임상 실습이 처음이신 분들도 어려움 없이 실습하실 수 있습니다.

데일리벳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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